18 day.
모든 인간에게는 교육이 필요한 때가 있다. '질투는 어리석음이고 모방은 멸망'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신의 몫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드넓은 우주는 좋은 것들로 가득하지만 자기 몫으로 주어진 땅에서 직접 밭을 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는 옥수수 낟알 하나도 절대 얻을 수 없다는 확신에 이를 때가 바로 그때이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또한 자기 자신도 스스로 도전해 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자기 신뢰철학/영웅이란 무엇인가. 랄프왈도 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
정작 마음이 목말라했던 공부를 이제야 시작한다.
책상 앞에 앉아 수동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삶이 불러내는 나만의 배움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내 몫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
세상이 아무리 풍족해 보여도, 내가 받은 땅을 온전하게 갈지 않으면
어느 무엇도 수확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때.
그때, 진정한 배움이 시작된다.
철없던 시절에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였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잦았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비교와 경쟁에서 홀가분하지 못했다.
더 좋은 것, 더 괜찮아 보이는 것들이 품위를 격상시켜 주는 착각 속에서
내가 가진 땅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비옥하게 갈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궤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때의 꿈이 좌절된 이후, 눈앞의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무언가 더 배우고 채우는 데 몰두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이 곧 소명이라 믿었다.
그렇게 살았던 시간은 묵직하게 내 삶을 지탱해 주었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얻은 잉여는 배움보다 향유를, 소유보다 수용을 택하게 했다.
안전함이 안주하게 했고, 수동적인 배움에서 그쳤다.
세상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불공평하다.
어떤 이에게는 들판이, 어떤 이에게는 자갈밭이 주어진다.
그러나 열매는 땅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어진 땅을 얼마나 정성껏 돌보느냐에 달려 있다.
고단하지만, 스스로 흙을 만지고 돌을 골라내는 일만이 힘을 키운다.
매일의 수고와 반복이 쌓여, 삶은 조금씩 탄탄해진다.
씨앗도 마찬가지다.
땅속에 묻히기 전에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흙과 물과 햇살을 견디며 제 몫을 다할 때 비로소 제 모양의 싹을 틔운다.
우리 안에 있는 힘도 이와 같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자기 땅을 갈고 자기 몫을 받아들일 때 그 힘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돌아보니, 공부는 책상 앞이 아니라 삶 한가운데서 날마다 불려 왔음을 알게 된다.
사람의 공부는 삶에서 이뤄진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실수와 실패, 좌절과 부끄러움, 눈물과 고통이야말로 가장 깊은 공부의 교재였고,
동시에 나를 살리는 약재였다.
이 깨달음의 시간들은 내 안의 힘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자각은 남이 정해 준 기준이나 답안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찾게 한다.
에머슨이 말한 ‘자기 신뢰의 배움’이 이런 것일까..
삶의 경험 속에서 길러진 내적 힘이 나로 하여금 나만의 목소리를 내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게 한다.
우리 안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힘이 있다.
그 힘은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조차도 말이다.
인간의 힘은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두드리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씨앗은 땅속에 묻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생명을 품고 있다.
애기 손톱보다 작아서 까맣고 둥글거나,
밥풀 같은 모양이거나, 껍질이 너무 단단하고 거무스름하거나,
검정 유성펜으로 점을 찍어놓은 듯 알알이 땡글땡글하거나...
씨앗은 땅속에 묻혀서 싹을 틔우기까지 제 본모습을 알 수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남이 대신 알려줄 수 없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더 넓은 밭, 더 많은 수확만이 성공처럼 보인다.
진짜 배움은 비교의 눈으로 타인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을 갈며 정성을 들일 때 시작된다.
요즘, 난 뒤늦게 배움의 땅을 갈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배웠던 내가
정작 내 안의 갈망 앞에서는 너무도 늦은 학생이 되었다.
그 욕구는 읽고 쓰고 그리는 습작들로 시작된다.
적어도 그것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술이 아니라
내 존재를 드러내는 가장 본능적인 방식이다.
마치 내 안의 씨앗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성현들의 책은 어둠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갇힌 인식을 흔들고 묵은 공기를 밀어내며 의식을 서서히 깨운다.
옳다고 굳게 믿었던 신념이 사실은
살아오며 알게 모르게 주입된 틀일 수도 있다는 자각.
그 순간 의식은 깨어난다.
깨어남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깨달음이 이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어제는 무심코 지나쳤던 돌담의 담쟁이가
오늘은 새롭게 다가오고,
늘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물들이 오늘은
또 다른 의미로 말을 걸어온다.
배움은 이렇게,
일상의 작은 풍경을 새로움으로 발견하게 하고,
사람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다.
오늘 하루,
가장 평범한 것이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을
고요히 맞이해 보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