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day.
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은지 어떤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잡지에 시를 보냅니다. 당신은 그것을 다른 시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어떤 편집자가 당신의 시를 거절하는 일이 생기면, 당신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는 당신에게 그러한 일은 일절 그만두기를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당신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마음속을 파헤쳐 들어가서 깊은 대답을 찾으십시오. 만약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만약 당신이 이 진지한 물음에 굳세고도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할 수가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의 생활을 이 필연성에 따라 구축하십시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예출판사. 2023.
위 문장은 릴케가 젊은 시인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카푸스는 자신의 시가 좋은지, 출판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릴케에게 물었었다.
릴케는 단호하다. 그런 질문을 멈추라고.
아무도 답해줄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카푸스 쪽에 훨씬 가깝다.
꽤 많은 상금과 상을 받고 등단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접혀 있던 청년 때의 꿈을 조금씩 펼치고 있지만, 종종 내 마음은 흔들린다.
쟁여놓고도 무용한 시들만 쌓여있다. 출간한 시집 한 권도 없다.
선배들이 보면 코웃음을 치겠다.
그래서 더 많은 공식 루트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책상 앞으로 이끈다.
이런 상태인 나는 릴케의 경고에 심장을 맞는 듯하다.
"멈추시오. 그런 바깥을 바라보는 눈길은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해로운 것입니다."
아이러니다.
계속 표현하고 싶은 꿈. 누군가 "당신의 시와 글, 정말 좋다"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출판사에서 탈락 통보 메일을 받고 미련 없이 삭제했었던 날이 있었다. 그리곤 며칠을 앓았다.
릴케는 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겠느냐고 묻지만, 솔직히 나는 그만한 용기가 없다.
죽음을 택할 만큼의 절박함이 아니라, 그저 오늘도 살기 위해 쓰고 표현하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나약함이 쑥스럽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욕망은 나를 지탱해 온 작은 불꽃이었다.
꿈과 갈망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어설프도록 끄적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라는 말에 나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죽음을 감수한다는 말은 입밖에 내지 못할것이고, 다만 쓰지 말라고 하면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같은 속앓이.
죽음을 선택할 용기도 없지만, 살기 위해 쓰고 표현해야 할 간절함은 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라도 계속 쓰고, 쓸 것이다.
문학은 언제나 욕망과 필연 사이의 좁은 틈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허영과 두려움, 생존과 고독이 함께 파도처럼 몰려 올 때가 있다.
그러니 내겐 시와 글은 늘 혼합물과 같다.
욕망의 불꽃과 필연의 그림자가 뒤섞여 생긴 잔상처럼 말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불꽃에 기대면 금세 꺼져버리기에, 내면의 필연을 붙잡게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필연이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다.
타인의 인정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그 행위가 있어야만 하루를 지탱하고 세울 수 있는 어떤 것.
릴케가 말한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다르게 번역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평범한 우리의 삶은 작은 욕망과 필연 사이에서 날마다 시작된다.
그 틈에서 태어난 실천이 우리를 이끈다.
내 안의 쓰고자 하는 욕망은 불꽃처럼 솟구치지만, 금세 꺼지는 빛이기도 했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써야 하는 필연은 그림자처럼 곁에 있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두 갈피 사이에서 오래 머뭇거리다 보니, 내 마음은 불꽃놀이를 닮아 있었다.
잠시 빛나고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끝내 피지 못한 시들을 떠올리며 썼던 시(詩).
그러나... 언젠가 터져 오를 한 줄기 꽃처럼 오늘도 피어야 할 곳을 찾아본다.
꽃인 듯, 꽃 아닌, 꽃 같은 적이 있었다고 하면 될까
숨소리가 나지 않았다
꽃 피는 허공에 앞다투어 모였고
일제히 향한 방향은 하늘이었다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탄환이 장전된 가슴앓이
압축된 비상
터지는 순간 기념일이 펼쳐진다
난 자리를 털지 못하고
공중을 거슬러 핀 꽃을 부러워했다
피고 지는 규칙이 이어지고
호명의 차례는 늘 늦었다
타고 있을지라도 모두 타봤으면 하는...
가슴이 타오르는 것에 열등하다
좌표대로 솟아오르고 싶었다
연기처럼 떨어지는 꽃잎, 꽃잎들...
중력을 거슬러 피었다 지는 꽃
향기도 없고 계절도 없이
꽃이 꽃으로만 살다 간다
필 것은 꼭 핀다고 했는데
아직도 활짝 피우지 못한
나의 시(詩)
세상 어디쯤
피어야 할 곳을 내내 찾고 있다
욕망의 불꽃이 꺼질 듯 희미해지고, 필연의 그림자가 흔들릴 때에도, 누구나 끝내 되풀이하는 어떤 일이 있다.
그 반복이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로 건너가게 한다.
돌아보면, 우리 각자에게도 있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편 42:1)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아 있는 명절 연휴도 평온하게 보내세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