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 가본 사람 대부분이 그 규모에 압도되고, 시간에 쫓겨 허둥거리다 모나리자, 니케상, 다비드와 들라크루아의 큰 그림 정도를 겨우 본 뒤, 인파 사이에서 고생한 기억만 간직한 채 박물관을 나서는, 그런 허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아내와 루브르의 친구들이란 연회원권을 끊었다. 하지만 놀이공원이나 헬스장처럼, 연간 회원권의 승자는 늘 고객이 아닌 업체고, 이번에도 루브르 친구가 되던 순간의 열의는 금방 사라졌다. 결국 회원권이 끝나기 전, 아내와 루브르를 겨우 찾았다. 인파를 피해 2층, 그러니까 우리는 3층으로 대피했다. 3층의 프랑스 미술이 모여있는 관, 그리고 네덜란드와 북유럽 그림이 있는 곳은 조용하고 시원하며 쾌적하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림이 너무 많은 것만 빼면 찬찬히 둘러볼만한 작품도 많다. 도록에 소개된 유명 그림을 발발거리며 찾아다니는 나와 달리 아내는 본인의 속도대로 차분히 그림을 감상하는데, 이 날 아내는 앙리 4세의 부인 마리 드 메디치 그림 앞에 한참을 앉아있는 게 아닌가. 같은 여자로 태어나 어찌 신세가 이리 다른가 같은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마침 옷도 비슷하게 입고 와서 더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아내는 꽤 오래 그 그림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