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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Sep 23. 2023

0922@École Militaire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파리 날씨의 특성상, 무지개가 종종 나타나는데,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파리 정착 초기, 잦은 출장 때문에 아내 혼자 애들 챙기며, 이런저런 적응 이슈들에 대처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입성 초기, 파리 구경 의욕이 남아있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몽마르트르로 향했다. 지하철 탈 때 맑았던 날씨는 내릴 때 흐려지더니 계단을 오를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난 그 자리에 없었지만 계단을 오르며 툴툴거리는 애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다. 11월의 날씨는 몹시도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에 도착하자 해가 뜨기 시작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기가 막힌 파리 부감 전경 위로 뜬 무지개를 감탄하며 바라봤다. 아이들은 이렇게 진한 무지개는 처음이라고 했고, 아내가 보내준 사진 속 아이들 표정은 진심 밝아 보였다. 파리의 첫겨울, 혹독한 관문 입구에서 본 무지개는 우리 집에 큰 용기와 위안을 줬다. 그 뒤로 나도 애들이 본 무지개를 오래 기다렸지만 매번 찬스를 놓치다가 드디어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군사학교 위에 뜬 선명한 무지개를 포착했다. 전혀 과학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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