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스카토 Sep 15. 2023

0914@Arc de Triomphe


등잔밑이 어둡다고 사무실 근처의 에투알 개선문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서울 사는 사람이 서울 타워에 안 오르는 것처럼, 나도 관광객 몰리는 장소가 싫었을 수 있지만, 난 임시 거주민이니 관광객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점심시간 짬을 내 개선문에 올랐다. 일단 에펠탑이 안 보이는 에펠탑 전망대나 너무 높은 몽파르나스 타워보다 위치나 높이가 완벽했다. 여기서 파리를 내려다보니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심시티 오락하듯 완전히 새로 설계했구나 싶었다. 그만큼 도시가 질서 정연하고 규칙적이었다. 광장 중심으로 길게 뻗은 도로, 도로 따라 늘어선 나무들, 도시의 랜드마크를 돋보이게 해주는 일정한 높이의 빌딩까지. 물론 위에서 내려다보면 질서 정연했지만, 내가 감탄하는 그 순간에도 개선문 아래  초대형 로터리에선 카오스가 진행중였다. 12개의 길에서 쏟아져 나온 차들이 신호등 하나 없이 빙빙 돌다 자기가 원하는 도로로 빠지는 식. 예전 파리 택시운전사였던 홍세화 씨는 이를 프랑스 톨레랑스, 그러니까 모든 걸 다 정해놓는 빙식이 아닌, 여지를 남겨 그 안에서 유연함을 발휘한다는 뉘앙스로 설명했는데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이다. 오히려 프랑스의 전형적인 대충 일처리와 그로 인한 끊이지 않는 혼란으로 보는 게 맞을 듯. 오스만 남작이 나무를 저리도 많이 심어놨건만, 오늘도 레미콘 트럭 운전사는 풍경은 보지 못한 채 로터리 출구를 막은 차들을 향해 분노의 경적을 날리고 있다.

이전 22화 0912@Rue Lecourb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