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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Sep 13. 2023

0912@Rue Lecourbe


비가 내렸다. 비 오는 와중에 해도 떴다. 해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비켜주려 않으려 애썼지만, 비와 함께 숨 막히던 9월의 늦더위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파리 날씨에 나름 적응을 해서 이제 이런 여우비가 별로 놀랍지 않지만, 오늘의 여우비를 만난 장소가 내 기억을 건드렸다. 파리에 처음 와서 아직 집을 못 구하던 시기에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앞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서툴고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한편으론 모든 풍경이 신기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도 딱 서서히 더위가 몰려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더위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해가 부쩍 짧아졌다. 아침에 조깅하는데 날이 어두컴컴하다. 상드마르스의 나뭇잎도 마치 숱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내 머리처럼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내는 9월의 폭염에 나뭇잎이 타버린 걸 수도 있다고 했지만. 예외적 이상 기후도 계절 변화라는 대세적 흐름을 거스르진 못했다. 이제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겨울을 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막막했지만, 우울한 겨울을 한 번만 더 버티고 나면, 파리와도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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