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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Aug 27. 2017

재능없는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

로맹가리 <새벽의 약속>

파우스트의 진정한 비극은 자기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비극, 그것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사실이다. (P.134)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그러니까 이 책은, 어렴풋하지만 막연하게 품고 있던 글쓰기의 이상향, 이언 매큐언이나 줄리언 반스, 때론 필립 로스의 책을 읽으며 밑줄 치던 글귀로만 이뤄져 있는, 그리하여 밑줄 긋기라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없애는 작품이다. 로맹 가리는 마치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겪은 모멸감을 한풀이라도 하듯 글쓰기의 궁극을 선보여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을 좌절케 만드는 작품을 완성했다. 물론 여기엔 약간의 개인적 호들갑이 섞였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허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장면을 먹다가 우는 뚱보 소년의 슬픔-점점 자장면이 줄어들어요-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밝혀둔다.


    나도 한 때 로맹 가리를 꿈꿨다. 처음엔 입사를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글을 썼다. 취업 통과가 글쓰기의 핵심이었다. 학창 시절엔 자신의 수학적 열등함을 깨달은 대다수 문과생들이 그렇듯, 나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수학에 대한 열등감을 만회했던 인문학도였다. 대부분이 연애와 불량 활동에 매진하던 고등학교 시절, 특별한 취미라고는 없는, 애매모호한 학생들이 등 떠밀려 참가한 논술 경시대회에서의 입상을 근거로 자신감을 가졌으나, 이내 쓸모없어질 수밖에. 시간이 지나자 아무리 애써도 이해되지 않던 미분 공식처럼, 글을 잘 쓸 수 없었다. 졸업 당시 김훈처럼 글을 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단 생각을 할 만큼, 욕망은 간절해졌다.


    물론 그 욕망은 운 좋게 취업 한 뒤, 금방 사라졌다. 사회생활을 해보니 악마에게 팔아야 할 영혼은 하나론 부족할 만큼, 부족한 재능이 많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때 뜨겁고 간절하게 바랐던 욕망의 더께는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천부적 재능의 문필을 접할 때면, 그 시절 느꼈던 재능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나 질투심과 좌절감을 느꼈다. 욕망이 살아날 때마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다시 확인해야 했기에, 특히 동년배 작가들의 글을 멀리했다. 그런데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을 읽는데, 이번에도 내면이 반응했다.


    단문으로 쓰도록 노력하라는, 글쓰기 하수의 초식 기본 1장을 귀에 못 박히게 들었건만, 막연하게 문장을 뽐내고 싶은 욕망, 그러니까 만연체의 화려한 개인기로 인문학적 지식을 문장 곳곳에 장식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물론 취업용 글쓰기 시절, 만연체 구사는, 큐대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마쎄이부터 배우려는 허영적 스킬로 여겨졌다. 만연체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같은 전설 속 작품에서나 존재하는, 초보 글쓰기 연습자의 금기였다. 그때의 금기가 만연체에 대한 지금의 욕망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글로 뽐내고 싶다는 허영심은 여전하다.


    '대중에게 넓적다리를 벌리기 위해 돈을 받는 소녀는 자비로운 누이 또는 선한 빵의 정직한 분배자처럼 여겨진다. 그녀의 겸손한 매매를, 유전자를 해치거나 핵공포를 유포하려는 구상에 자기의 두뇌를 파는 학자들의 매춘에 비교해보면 말이다. 종족에 대한 이 배반자들이 몸을 내맡기고 있는 영혼과 정신과 이념의 부패에 비하면, 성에 관한 우리의 노심초사란, 그것이 매춘이건 아니건, 근친상간이건 아니건, 우리 해부 조직이 배치되어 있는 세 개의 비천한 괄약근들 위에서 어린아이의 웃음이 지닌 천사 같은 순진성을 띤다.’ (P.81)

이런 식인데, 이건 <새벽의 약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 아닌, 나의 욕구를 충족시킨 수많은 문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위에서 말했듯, 밑줄 긋기가 무의미한 작품이다.


    문장은, 아니 세상의 모든 형식은 여전히 내용과 본질의 배다른 형제, 그러니까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만, ‘전쟁에 봉사하는 학자들에 비하면 매춘은 윤리적으로 귀여운 수준이다’란 간단한 내용을 유머와 유식함을 곁들여 냉소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로맹 가리의 문장을 볼 때마다, 내용이 무엇이건, 저런 문장으로 이어진 소설은 적자를 능가하는 서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새벽의 약속>에 대한 호들갑은 로맹 가리가 책에서 밝힌 유머에 대한 생각,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로맹 가리의 화려한 문장과 지식은 유머를 향해 질주한다.


    이제는 모든 것에 무던해질 나이, 글쓰기는커녕 밥벌이 영역에서도 재능 없음의 비극을 겪고 있는 시점이지만, 로맹 가리의 글을 보고 있자니, 20대 시절 문청의 뜨거운 열등감을 느낀다. 아마도 20년 이상 품고 살았던, 막연하게 품고 있던 글쓰기 욕망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토록 좋아했고,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써보고 싶었던 문장은 바로 존엄함을 유지한 채 유머를 시종일관 잃지 않음으로써,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글이었음을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을 읽고 확인했다. 능력 여부와 무관하게 한 때 자신이 막연하게 꿈꿨던 이상향의 모습을 정확히 알게 된 것도 내 영혼을 살 악마를 찾는 것만큼이나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인생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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