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이양 Feb 07. 2021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망한 것 같으나 우린 절대 망가지지 않는다.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오듯이

가끔은 우리의 삶이 망한 것 같으나 

우리는 절대 망가지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쉴 때 샀던 노란 꽃이 

무더운 여름 이쁘게 봉우리를 틔우고 나서 

한참을 죽어있길래 겨울 내내 베란다에 방치해 놓았다.

긴긴 겨울을 지난 며칠 전 창문을 열어보니 

고맙게도 화분에서 다시 노란 봉우리를 틔우고 있었다.

참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물도 안 줬는데

다시 꽃을 피워낸 이 화분에 새삼 위로를 받았다.

사실 이 화분에서 다시는 꽃이 안 필 줄 알았다.

한번 피고 지는 게 이 꽃의 운명인 줄 알았다.   

가끔 자연은 우리에게 다시 봄을 가져다주고

또 이쁜 꽃을 키워 냄으로 위로를 준다.


어제 잔잔한 농부에 관련된 영화를 보았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는 

왜 이 영화가 좋은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근데 나는 좋았다. 특히 엔딩이 좋았다.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면 

우리의 삶은 행복하고 괜찮은 걸까?

어떤 일로 우리의 삶의 균형이 깨지고 망한 것 같다면 

우린 진짜 망가진 것일까?

가끔은 우리는 놀랍게도 망가진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나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한계를 두고 제한하는 것보다 가끔은 무심한 채 

조금만 기다려주고 믿어주면

스스로 일어날 힘을 키워내 주기도 한다.

 

농사가 그렇듯 인생도 가끔 내가 힘써 가꾼다고 해도 

내 맘대로 안될 때가 있고 

가만히 놔뒀는데 알아서 잘 자라 주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인생이 농사와 닮아있기도 한 것 같다.  

가끔은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거창한 말이 있다.

과연 몇 사람이 그런 단단함을 가져서

위기를 기회를 만들어내는 대범함과 지혜를 가졌겠는가?

우리 모두는 가끔 정말 어이없게 

한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연약함과 유약함을 가지고 있고 

또 가끔은 놀랍도록 강인한 힘을 발휘해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는 가끔 누구를 만날 때 내가 그 사람 앞에서 해온

가면과 역할놀이를 하는 게 아닐 가하는 생각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는 착하고 순종하는

투정 부리고 괜히 티격대는 딸의 역할로

누구 앞에서는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운 후배로

또 누구 앞에서는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애송이로

아니면 누구 앞에서는 어엿한 직장인과

세상 남부럽지 않을 꿈을 찾아 일하는 선배로 말이다.

그 사람 앞에 가면 나는 이런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비슷한 성격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연애상담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깊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말이다.


영화에서도  엄마이기에, 아내이기에,

아빠이기에, 할머니이기에 해야 했던 일들과

나로서 이루고 싶은 일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들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함으로써 

그것이 정답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영화의 나오는 대사처럼 나도 한 번쯤은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와 

이 간절한 바램이 가족의 생계와 안위 

그리고 행복을 담보로 해야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할 가 싶다.

부모가 자녀에게 빚진 사람이라는 말처럼  

아파도 세상 맘 편하게 쉬지 못하고 

자식들 생각에 도우려고 했던 일들이 어그러져서 

모두를 힘들게 만드는 상황들

모든 것을 망치고 허무하게 뒤돌아서 

정처 없이 걸어가는 그 허무함 속에서

다시 길을 제시해주는 존재는 역시 가족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 같은

가족이 존재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가끔은 이렇게 위로받을 때가 있다.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어쩌면 망한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힘든 한 산을 넘으면서 우리는 또 살아갈 거고 

앞으로 더 힘든 날들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삶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또 살아가는 거구나 싶었다.


삶의 정답을 찾으려고 무단히 애쓰고 

실수할 가봐 늘 걱정이었던 나에게

망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결코 망한 게 아닐 수도 있고 

다시는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았던 화분이

그다음 해에 또다시 아름다운 꽃봉오리는 피우듯이 

삶은 나에게 다시 봄을 가져다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지금 사랑하고 삶을 살아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3평 남짓한 노천카페 베란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