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한 해의 끝자리 숫자가 바뀐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신정도 지났고,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도 끝났다. 이제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도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어쩌나.
2022년을 미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황없이 시작한 2023년이라 그런지 지난 한 달은 머릿속이 정신없었다. 감히 새해 다짐을 할 시간도 없었고, 이런 상태에서 세운 다짐은 어차피 잘 지키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가 벌써 이번 한 해의 두 번째 달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새해(1/1)도 지났고, 진짜 새해인(음 1/1) 설도 지났으니 오늘부터(2/4) 진짜 ‘진짜’ 새해라 치자. 원래 내가 자기 합리화의 두 번째라면 서러울 만큼 매사에 당위성 부여하는데 최고다. 명리학에서는 입춘부터 십이간지 열두 띠가 바뀌니 나의 본격적인 계묘년 새해는 오늘이다.
새해를 늦게 시작한 사람의 구차한 변명 같지만 이렇게라도 자기 위로를 해야겠다. 언제부턴가 지나간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연도의 시작을 너무 경솔하게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일상에 치여서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매번 작심삼일도 못하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정내미가 떨어진 것인지 이제는 무언가를 다짐하는 것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에 실망하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기 실망에 대한 타격감도 좀 덜할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도 또 입춘에 봄볕 같은 기대를 거는 것을 보면 아직 나에게도 새순 같은 새해의 소망이 있나 보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하는 것들은 깔끔히 청산하고픈 바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무지게 살아봐야지-’라는 여전한 의지.
조금 늦었지만 이런 바람과 의지로 새해를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첫 번째 단추로 그동안 마음에서 주저하기만 하고 행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를 시작 해보기로 했다. 며칠 전 지인이 다니는 요가원에 체험 클래스를 등록했다. 유산소나 근력 운동도 좋지만(물론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했지만) 심장과 머리를 좀 쉬게 하는 심신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생의 은사님이라 여기는 영향력 있는 분 역시 나에게 요가를 강력히 권하셨다. 매사에 예민함과 긴장감이 높은 나에게 무엇을 더 달궈서 담금질하기보다는 평안과 고요함을 불어넣어 신체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느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보기에도 내가 늘 종종 대며 살다 보니 어딘가 안쓰럽고 답답해 보였을 테고, 그 마음의 정체 구간을 시원하게 뚫어줄 요가가 필요할거라 느끼셨나 보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단추를 잘 꿰다 보면 어느새 그럴싸한 옷 하나를 멀끔하게 차려입은 내 모습을 마주할 것이다. 31일 나 늦게 시작한 만큼 31배 속도를 더 내겠다는 어리석은 오기는 부리지 않겠다.
곧 봄이다. 계절의 시작이자 만물이 다시 움트는 계절. 이제 나도 움터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