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기르기를 위한 기초 체력
체력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영위하는 데 근원이 되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이 윤택하다고 느꼈던 마지막은 엄마 밥을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었던 고 3 그 해가 아닐까 싶다. 스무 살,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 이후 자취를 하면서 그때부터 내 체력은 조금씩 동났을지도 모른다. 단지 20대는 젊다는 이유로 체력이 동나는 속도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고.(정확히는 놀기 바빠서 신경조차도 쓰지 않았고)
30대의 첫 해,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뱃속에 이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모성애라는 칼과 예민함이라는 방패로 나와 내 아이를 지키는 전사가 되었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지 했고, 어떤 것도 참았으며, 모든 것에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했다. 여느 엄마들과 동일하게 수면 부족, 영양 불균형에 시달렸지만 그때까지도 내 체력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약 2년간 초인적인 정신력의 독재 정치는 체력이 찍-소리도 못하게 했다.
아이에게 최대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 가정 보육을 비교적 오래 했고, 어린이집을 늦게 보냈다. 아이가 4살이 되던 초봄, 아이를 기관에 맡겼고 처음으로 아이와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천산갑의 비늘처럼 나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던 긴장의 껍데기가 바사삭 벗겨지면서 온 몸에 문제가 났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출산 후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을 오고 가며 약값을 축내기 시작했다.
작년 늦봄, 그날도 물리치료를 받고 나오는데 의사 선생님이 당부하셨다. 진료 볼 때 가르쳐 준 운동을 꼭 해야 한다고. 나는 의사 선생님께 똘망똘망한 눈으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나왔지만, 막상 그럴 힘이 나지 않았다.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이루어진 스트레칭인데 그 마저도 할 힘을 낼 수 없었다. 그냥 정말 하기가 싫었다.
그때 알았다. 이제는 내 정신력이 닳고 닳아서, 마음의 체력이 바닥이라는 것을.
체력은 신체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로 나뉜다. 대부분 체력 기르기라 하면 흔히들 신체적 요소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체력을 키우려면 마음의 기초 체력부터 점검해야 한다. 마음의 근력, 지구력, 순발력 등을 어느 정도 길러놔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난 뒤늦게 인정했다.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마음이 '아주 많이 상했다'는 것을. 내가 억지로 참아왔고 어설프게 분출했던 모든 것들이 현대 사회는 산후우울증이라고 칭한다는 것을.
엄마가 된 지 햇수로 5년 차지만, 나는 여전히 내면의 체력을 온전한 정상 궤도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재활을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마저도 힘이 나질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산후우울증은 변이 바이러스로 진화해서 그냥 일상 어느 언저리에 자리 잡았고, 나는 지금의 감정상태에 면역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일상생활과 대인 관계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아무래도 이게 더 문제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이 상황을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청신호일 것이다. 체력 좀 기른답시고 무작정 운동화 끈 조여매고 운동장을 달려도 뭔가 개운하지 못하고 헛헛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이제야 밝혀진 것이다.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모르겠지만 실타래를 풀 기미가 조금씩 보인다.
저질 체력인 나는 오늘도 아이와 놀다가 픽 주저앉았다. 숨이 차고 답답하니까 괜스레 또 아이에게 투정을 부렸다. 아이고 착한 우리 아들은 그렇게 또 엄마의 생떼를 받아주고 달래준다. 아이가 그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한 엄마를 끌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또 모니터가 흐려진다. 울컥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체력을 길러야겠다. 안팎으로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순서상 안부터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