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남자가 남자가 되고, 여자가 여자가 되다

by 남궁인숙

'굴요리 전문점'에 갔다.

벽 한쪽에 큼지막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남자가 남자가 됩니다.”

“여자가 여자가 됩니다.”

우리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동시에 웃었다.

굴 몇 알로 인생이 재정의된다니,

이건 거의 '바다발(發) 자기 계발서'였다.

누군가는

“그럼 두 접시면 슈퍼맨 되는 거냐”라고

했고,

누군가는

“난 이미 여자인데 또 여자가 되라고?”라며

눈을 찡긋했다.


우리는 잠깐 웃었지만,

사실 그 포스터는 과장이었다.

그러나 과장은 언제나 진짜 마음을

건드리기도 한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굴요리를 먹으며 농담을 했지만,

속으로는 모두 각자의 ‘변화’를 한 점씩

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굴은 그냥 바다 식재료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의미를 얹는다.

우리는 크게 웃었지만,

굴전이 다 식을 때쯤에는 모두 조금

진지해져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남자가 남자가 되기 위해’도,

여자가 여자가 되기 위해’도 아닌,

그저 오늘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

굴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굴 포스터'한참 동안

바라봤다.

“남자가 남자가 됩니다.”

“여자가 여자가 됩니다.”

마치 굴 몇 알이면 인생이 재정렬되는 듯한

문장이다.

강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제자리를 찾는다는 듯한 선언문 같다.

그 앞에서 잠시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음식에게 정체성을 맡기기 시작했을까를 생각했다.


굴은 오래전부터 ‘바다의 우유’라 불렸다.

아연, 철분, 단백질, 미네랄.

영양학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식재료다.

하지만 이 포스터는 영양을 넘어서 욕망을 건드린다.

남성에게는 강함을,

여성에게는 아름다움을.

인간의 결핍을 찌른다.

우리가 은근히 불안해하는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서 포스터를 제작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충분히 강한가?”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가?”


굴은 그 질문에 조용히 “먹어봐.”라고

대답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굴 한 점을 먹는다고

초인이 되지 않는다.

다음 날 갑자기 근육이 붙거나,

피부가 광채를 띠며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말에 약해진다.

왜냐하면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라 ‘변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식품을 사면서

우리는 날씬해진 미래의 나를 상상하고,

비싼 건강식을 먹으며

더 나은 내일을 예약했다고 믿는다.

굴 포스터는 그 심리를 정확히 안다.

굴을 팔고 있지만, 사실은 '가능성'

팔고자 했을 것이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

‘남자가 남자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더 세고, 더 강하고, 더 활력이 넘치는 상태?

‘여자가 여자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더 고운 피부, 더 건강한 혈색,

더 아름다운 모습?

이런 생각들이 은근히 우리를 좁은 틀 안에

넣는다.

강해야 남자,

아름다워야 여자.

그렇다면 '약한 남자는 남자가 아닌가?'

'거칠고 강인한 여자는 여자가 아닌가.'

굴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자기는 그저 바다에서 자랐을 뿐인데,

인간이 멋대로 상징을 씌웠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밤 뜨끈한 굴전 한 점 앞에 서면

이 모든 철학은 잠시 사라진다.

바다 향이 올라오고,

레몬을 살짝 짜 넣으면

세상은 잠깐 단순해진다.

그래도 나는 웃으며 굴을 먹는다.


나는 남자가 되려고 먹는 것도,

여자가 되려고 먹는 것도 아니라고

굴을 먹으며 생각한다.

그저 오늘 하루만큼은 맛있는 음식으로

위를 채우며, 행복해지고 싶어서 먹는다.

조금 덜 피곤하고 싶어서,

조금 더 평화롭고 싶어서.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건

‘더 강한 나’도,

‘더 아름다운 나’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나를 조금 덜 불안하게 해 줄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과장된 굴 포스터는

결국 우리의 속내를 비춘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먹으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믿음 덕분에

오늘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지도

모른다.

굴 몇 알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 끼의 식사로 위로받는다.





https://suno.com/s/8QX3dnIgPrmj3QeL



남자가 남자가 되고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

겨울 바다 냄새가

입안에 번질 때

나는 잠시 믿고 싶어

달라질 수 있다고

작은 굴 한 점에

강해지는 꿈을 담고

비틀린 하루를

다시 펴보려 해


누군가는 말해

이건 그냥 음식일 뿐

하지만 나는 알아

그 안에 숨은 마음을


오오오 오오오

남자가 남자가 되고

여자가 여자가 된대

그 말이 웃기면서도

왠지 위로가 돼

강해지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그 마음 하나는

다 똑같으니까



2

붉은 리본 묶인

굴 껍데기처럼

우린 각자 다른 꿈을

묶어 두고 살아

누군가는 체력

누군가는 피부

결국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나


바다는 아무 말 없이

미네랄만 건네주고

변화라는 건

결국 내 몫 이래



오오오 오오오

남자가 남자가 되고

여자가 여자가 된대

굴 몇 알 속에서

내일을 꺼내 먹네

강해지지 않아도

아름답지 않아도

오늘을 버틴 나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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