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삼일째,
비로소 집 안에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은 자리를 찾은 물건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남겨진 여백.
정리는 채우는 일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배운다.
결국 최고의 정리는 '버리는 것'이었다.
피로가 천천히 몸에 쌓여온다.
무엇인가를 정리하듯,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진다.
나는 조용히 붉은 와인 한 병을 꺼낸다.
투명한 잔에 천천히 따르자, 깊은 색이
빛을 머금고 번져간다.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움과 함께
궁금해진다.
이 한 잔의 와인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와인은 술이 아니라 시간과 우연,
그리고 누군가의 발견이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와인은 누가 발견했을까?"
아주 먼 옛날, 사람도 아직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던 시절이었다.
원숭이가 산속에 있는 야생 포도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맛있는 포도알을
모아 두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드디어 잊고 있었던
포도를 찾아냈다.
다시 그 자리를 찾았을 때, 포도는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원숭이는 포도알 위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껍질은 무르고, 알맹이는 물처럼
흘러내렸다.
원숭이는 포도알이 물로 변한 것을 보고
맛을 보았다.
그 맛을 본원숭이는 유레카를 외친다.
'신이 난다. 신이 나~'
햇빛을 머금고 숨을 죽인 포도는 향기롭고
달콤했다.
먹고 남은 포도, 그리고 잊힌 포도들이
조용히 그 자리에 보물을 남긴 것이다.
공기 속에는 낯선 향이 떠돌았다.
썩은 것 같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향은 코를 떠나지 않았다.
그 원숭이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액체를 입에
가져갔다.
순간, 그는 처음 느끼는 감각을 경험을
하였다.
달콤하면서도 낯설고, 부드러우면서도
기분이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
그것은 흔한 ‘맛’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반응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원숭이는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포도가 스스로 변한 것,
바로 '발효'였다.
포도 속의 당분이 자연 속 효모와 만나
알코올로 변하는 과정.
인류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자연의 화학작용이었다.
이 이 이야기는 허구지만 흥미로운
상징이다.
그러나 실제 와인의 기원은 고고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약 6000년경, 조지아 지역에서
포도주 흔적을 발견하였다.
인류는 이 자연 현상을 반복하고
저장하면서 ‘와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와인은 누군가의 발명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한 결과를 발견한 것이다.
그 후 인간은 이 우연한 발견을 놓치지
않았다.
더 좋은 포도를 고르고,
더 오래 보관하고,
더 깊은 맛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연이 만든 변화를 기술과 경험으로
다듬어 오늘의 와인으로 완성시켰다.
와인은 자연이 먼저 만들고 인간이
완성한 술이다.
우리가 지금 마시는 한 잔 속에는
수천 년 전, 누군가의 호기심과
자연의 우연, 그리고 인간의 반복된
선택이 담겨 있다.
“와인은 자연발효에서 시작되어
인류의 경험과 시간이 더해져 완성된
문화적 술이다.”
https://suno.com/s/KSM5FDvNtro2In3j
첫 번째 한 모금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
아주 오래된 숲 속 어딘가
햇살에 익은 포도 향기
손에 담아 모아두었던
달콤했던 그날의 기억
시간은 조용히 흘러가고
잊힌 채 남겨진 열매
어느 순간 달라진 향기
낯설지만 끌리는 이유
조심스레 입에 가져가
처음 느낀 그 순간에
맛이 아닌 어떤 떨림이
가슴 깊이 번져갔지
2.
와인은 그렇게 시작됐지
자연이 먼저 만든 이야기
우연 속에 피어난 시간
그 한 모금의 기적처럼
사람은 그걸 이어왔지
기억을 담아 잔을 채워
지금 우리가 마시는 건
시간을 건너온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