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동을 걸고 운전석을 편한 자세로 고쳐 앉으며, 10월에 듣기 좋은 명곡을 틀고서 천천히 여유 있는 출근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할 즈음에 '*톡!‘ 조수석에 놓인 휴대폰이 울린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문자를 열어보니 하얀색 나팔 모양의 화관을 가진 나팔꽃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으로 문안 인사를 대신한 것 같았다.
책상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기 전에 답장을 몇 자 적어 보냈다.
'시골집 담벼락을 타고 동네 어귀의 전령사처럼 거미줄 위에서 미끄럼 타는 이슬의 놀이를 지지하기 위해 아침이슬을 품은 채 든든하게 새벽을 열어주던 흰색 나팔꽃! 꽃말은 ‘넘치는 기쁨’이라죠?'
이렇게 ‘흰색 나팔꽃’에 얽힌 나의 유년의 기억을 엮어서 제법 아는 척을 하며 문자를 보냈다. 다시 “*톡“ 소리를 내면서 답장이 들어온다.
'에고 ~ 나팔꽃 같은 '파리풀'이에요.
파리풀은 뿌리 즙으로 파리를 죽이고 벌레 물린데 짓찧어 붙이면 해독 효과가 있답니다.
성가신 파리만 잡아도 그게 어디냐고(들리지는 않지만) 파리풀들이 어깨를 으쓱한다는.
꽃까지 예쁘니 파리풀들이 우쭐할 만하죠?
예쁜 원장님! 오늘도 마음 시원한 날 되세요.'
새벽예배를 보러 가는 길에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찍어 두었다가 이렇게 가끔 지인들께 안부인사로 전달한다고 한다. 좋은 취미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보내 준 사진의 꽃은 나팔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꽃잎이 아주 작은 들꽃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들꽃의 한계가 나팔꽃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대로 보았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나팔꽃으로 보였다.
파리풀을 검색해보니 연보라 색을 가진 여러 해 살이를 하는 풀로 꽃잎은 작지만 상당히 예쁘게 생겼다. 한여름에 꽃이 피고 '친절'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산비탈 그늘진 곳이나 숲 가장자리 등에 서식하며 포자가 지나가는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 붙어서 퍼져나간다고 한다. 유독식물로 뿌리나 잎의 즙을 찧어서 종이에 떨어뜨려 놓아두면 파리가 와서 그 즙을 먹고 죽는다고 한다. 파리풀 즙을 벌레 물린 데 붙여주면 해독효과도 있다고 하니 파리풀의 꽃말처럼 친절하게 모기나 파리를 잡아주는 풀이다. 해충, 살충 살균 등을 하는 유익한 풀이었다.
일상생활 중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이 옳다고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단정 지어 결정한다. 무심코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우월의식을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의 방식일 것이다.
내가 또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 법륜 스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님께서 하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는 게 없으면 보이는 것도 없다. 오늘 또 한 수 배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