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아이가 있을까?

by 남궁인숙

한적한 겨울,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끼고 있는 송악산 둘레길을 쉬엄쉬엄 걸으면서 산책을 하였다. 둘레 길 긴 의자의 쉼터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젊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바다 멍'을 즐기는데 유치원 원장 선생님인 친구는 자기에게 그동안 몇 개월에 걸쳐서 겪은 힘겨웠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3년 전 달님 유치원에 다녔던 학부모(혜빈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당시 재원생이었던 혜빈이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말하기를 혜빈이가 어린 시절에 다녔던 유치원을 가보고 싶어 한다고 하면서 혜빈이의 현재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시 혜빈이에게는 학예회를 하는 날 어떤 한 사건이 있었다. 오후 5시에 학예회를 하기 위해 유치원생 모두는 노란 버스를 타고 강당이 있는 센트럴 회관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서 한참 동안 리허설을 하다가 6세 반 담임선생님은 혜빈이가 차에 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경비업체에서 혜빈이를 회관까지 데려다주게 된다.

내용인즉 담임선생님이 많은 아이들을 인솔하는 과정에서 혜빈이가 교실에 남아 있었는데 그만 버스가 출발하였다.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아무도 혜빈이를 두고 온 사실을 몰랐었다고 한다.

겨울이었기에 6시만 되어도 교실이 깜깜해졌고, 어스름한 교실에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경비업체 센서에 발견되었고, 경비업체 직원이 유치원에 가보니 혜빈이가 혼자서 교실에 있었던 것이다.

경비업체 직원은 원장 선생님과 통화한 후 센트럴 회관까지 혜빈이를 데려다주었다. 혜빈이는 당시에 언니와 함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언니가 자기를 챙기지 않아서 학예회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혜빈이는 학예회를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언니 혼자서만 학예회를 하러 갔다고 하면서 많은 원망을 하면서 학예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혜빈이는 결국 7세가 되어 달님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고 다른 기관으로 옮겨갔다. 언니가 자기를 챙기지 않고 교실에 혼자 놔두고 가서 하고 싶었던 학예회를 하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었고, 고등학생 이 된 현재까지 학교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하면서 우울감을 갖게 되었다.

혜빈이는 곤란한 상황이 되면 구토를 하며 화장실을 가야 하고, 친사회적인 활동에 곤혹스러워하는 아이로 성장하였다. 혜빈이는 단체 생활하는 것, 친구 사귀는 것 등등을 어려워하며 결국엔 일반고등학교에도 적응 못하고, 현재는 대안학교를 다니는데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선생님, 여러 상담가들을 만나고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13년 전 유치원을 다녔던 곳을 꼭 가보고 싶어 한다고 혜빈이 엄마가 달님유치원 원장 선생님께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원장 선생님은 흔쾌히 방문을 허락하였고, 원장 선생님도 혜빈이가 얼마나 컸는지 보고 싶었다. 혜빈이가 유치원에 왔는데 너무 예쁜 숙녀가 되어 왔다고 한다.

원장 선생님은 혜빈이가 놀이하였던 교실을 보여주고,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시 원장 선생님이 널 잘 챙겨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정식으로 사과를 하였다. 혜빈이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5개월 정도 지나자 또다시 달님 유치원에 혜빈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와서 그 당시 학예회 때 담당하였던 혜빈이의 담임선생님을 찾아 달라고 한다.

혜빈이를 그때 경비업체 직원이 데리고 센트럴 회관에 도착하여 담임선생님께 인계하자 담임선생님은 혜빈이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며, " 혜빈아! 어디 있다가 이제 왔니? 너 때문에 우리 반 친구들이 리허설을 못했잖니?"라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혜빈이는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그때 왜 나 때문에 친구들이 리허설을 못했다고 하면서 야단을 쳤는지 묻고 싶어서 그 당시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원장 선생님은 흔쾌히 꼭 찾아주마 하고 약속을 하고, 교육청에 알아봤지만 현재 유치원에 근무하지 않는지 명단이 없다고 하였다.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찾아보고자 경찰서를 통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개인정보라서 알아볼 수 없다고 하였다. 사람 찾는 일을 고민하던 중 원장 선생님이 참여하는 단체모임에서 지인 분이 sns(*** 그램)을 통해 알아봐 주겠다고 한다.

마침 sns의 위력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그램을 통해 그 당시 담임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통화할 수 있었다.

혜빈이의 담임선생님은 그 사이 결혼을 하였고 아이를 키우면서 작은 어린이집에서 교사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은 담임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혜빈이가 보고 싶어 하는데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감사하게도 빨리 혜빈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서 한걸음에 유치원을 방문한다.




혜빈이와 13년 전 담임선생님은 드디어 상봉하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혜빈이를 끌어안으면서

"혜빈아! 선생님이 미안해. 선생님이 너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구나. 그때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두 살이었는데, 경험이 없고 미숙하다 보니 유치원생인 너희들이 너무 힘들게만 느껴져서 유치원 선생님이 정말로 하기 싫었단다. 그래서 빨리 학기를 마치고 그만두고 싶었던 시절이었어.

경험이 없다 보니 너희들 가르치는 게 버거웠고, 유치원에서 도망치고만 싶었단다. 매일 퇴사할 날짜만 세면서 이 시간들이 가기만 기다렸단다.

그래서 너희들 돌보는데 소홀했었구나. 정말 미안해......."라고 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혜빈이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한참이 지나자,


"이제 됐어요.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너 때문'이라고 해서 내가 친구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잊히지 않아서 왜 나 때문이라고 했는지 꼭 듣고 싶었어요. 이젠 이해가 됐어요."라고 한다.


이렇게 혜빈이와 담임선생님의 극적인 만남으로 혜빈이의 어린 시절 암울했던 기억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지금은 즐거운 대학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혜빈이 엄마는 혜빈이의 건강을 위해,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읽고 싶어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대학원까지 졸업했다고 한다. 엄마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내용이었다.

혜빈 엄마는 본인의 불안 성향으로 너무 불안한 마음을 갖고 아이를 키워서 혜빈이의 상황을 안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갔다면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불안 성향을 가진 엄마의 불안한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혜빈이의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은 모두 엄마인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였다.

달님 유치원에 가서 원장 선생님을 만나보고, 자기가 생활했던 유년기의 유치원 교실도 둘러보고, 담임선생님께 사과도 받고 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진지하게 대화를 하게 되었고, 둘의 관계는 많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어린아이의 경험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어른들이 서로 협력하여 최선을 다함으로써 서서히 회복되어간다는 것이 중요한 요지다.




어린 시절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품은 채 겉으로만 성인이 되어 아직도 유년의 시절에 머물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혜빈이의 내면에서 울부짖고 있는 미해결 된 문제의 서운한 감정들을 찾아내 보려고 상담사들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상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상담과정에서 상처를 하나씩 꺼내어 그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동안 상처받은 자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것들이 해결이 된다면 앞으로 더욱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 너무 유년의 기억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한다. 내면의 문제를 유년기의 기억 속에 갇혀있는 어떤 외압에서 찾으려고 하는 시도는 현대인들에 의해 연구된 학습의 형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혜빈이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고통, 그것이 무엇이든지 자기 자신을 믿고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달님 유치원 원장 선생님의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힘들게 고통받았을 혜빈이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린 시절 위로받고 싶었던 기억으로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달님 유치원의 이야기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인 나에게 아이들의 유년의 기억들이 억울함과 원망 등으로 미해결 된 채 내 안의 또 다른 아이의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도록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반드시 아이가 사랑받고 있음을 먼저 가르쳐라. 그래야 다른 모든 것을 배울 준비가 된다.

- 아만다 모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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