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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결코 정의롭지 않은 분노

신의 이름으로 분노한 교회가 벌인 종교전쟁

by Francis Lee

분노(Ira)는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원초적이며, 동시에 가장 정당화되기 쉬운 감정이다. 그것은 불의에 대한 반응이자, 억압받는 자의 본능적 저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신학적 언어로 정당화된 폭력의 체계로 발전해 왔다. 고대 교부들이 정의한 칠죄종(七罪宗, Seven Deadly Sins) 중 하나로서의 분노는 개인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치명적 유혹으로 규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종교 권력은 언제부터인가 이 죄악의 감정을 “정의로운 분노”(Ira iusta)라는 이름으로 변형시켜, 교리적 순수성의 수호, 신앙의 방위, 혹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정당화 수단으로 삼았다.


‘분노의 신학’이 성립하는 순간, 신은 더 이상 자비와 사랑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는 복수를 명령하는 전쟁의 신으로, 심판의 군주로, 그리고 타자를 멸절시켜야 하는 정의의 구현자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신학적 언어의 변용이 아니라, 역사적 폭력의 도덕적 면죄부를 제공한 근원적 사고의 전환이었다.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이 ‘악마에 대한 전쟁’으로 선포될 때, 분노는 교리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의무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에 기반을 둔근대 이후 종교적 전쟁과 테러는 모두, 이 ‘거룩한 분노’의 신학적 유산 위에서 폭발했다. 교회의 분노는 ‘신의 이름’으로 폭력과 결탁했고 그 결과 교회는 타락과 광기의 도구로 변모했다. 그것은 곧 인간이 신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한 역사, 그리고 신을 도구화함으로써 자신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교만의 역사이기도 하다. 종교적 분노의 역사는 곧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불의’의 연대기이며, 그 내부에는 언제나 ‘악마화된 타자’와 ‘의로움의 환상’이 공존한다. 이러한 교회가 주도한 분노의 표출에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럽 역사를 피로 물들인 종교 전쟁이다.


종교적 분노가 제도적 권력의 언어를 획득하는 순간, 신의 이름은 가장 세속적인 전쟁의 깃발로 변한다. 십자군이 ‘외부의 적’을 향한 신앙적 광기였다면, 종교전쟁은 ‘내부의 신’을 두고 벌어진 내전이었다. 동일한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명분으로 무장한 자들이 국가 단위로 대결한 이 시대는, 신앙이 어떻게 정치화되고, 분노가 어떻게 체제화되는지를 극명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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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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