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넘어선 뜻과 기다림을 넘어선 실천
적지 않은 신자들이 “하늘나라”를 죽은 뒤에 가는 특정한 장소로 이해한다. 마치 지옥이 자하의 어느 장소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인생은 잠시 지나는 여정이고, 그 여정의 끝에 이르게 되는 참된 고향은 저 위 높은 곳 어디엔가에 있는 천상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의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교회 설교와 신앙교육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정말 예수가 그렇게 말했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였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마테복음 6,9~13)
그런데 이와 다른 다음과 같은 버전도 성경에 나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누가복음 11,2~4)
누가복음이 마태복음보다 더 오래된 것이니 이것이 원래의 것이고 마태복음이 수정본이라고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수정한 내용에 '하늘'과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우리' 아버지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누가복음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 신의 거처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는 부분을 마태복음이 깔끔하게 정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논란거리가 등장한다.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마가복음이고 이 복음서와 원천을 의미하는 독일어 Quelle에서 나온 'Q문서'라고 불리는 추정된 문서를 참조하여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이 작성되었다는 것은 신학계의 정설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마가복음에는 이른바 '주기도문'이 안 나온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Q문서에 있던 것을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이 인용하였고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자기 공동체의 사정에 따라 수정 보완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신학적 교리보다는 예수의 행적을 가감 없이 전하는 데 중점을 둔 책이라서 '주기도문'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인용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산상수훈도 마가복음에는 안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심증이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이해한 하늘과 하늘나라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을 기준으로 논의를 이어가 본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는 분명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과 마찬가지로 땅에서 곧 이 지상 세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요청한다. 여기에서 아버지가 계신 '차원'인 하늘과 아버지의 뜻이 실현되는 '상태'인 하늘나라는 분명히 구분된다. 하늘은 신의 존재 차원이고, 하늘나라는 신의 뜻이 관철되는 질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을 차안에서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종의 공간 이동의 문제로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하늘나라'의 메시지는 ‘공간’이 아니라 ‘통치’에 관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하늘'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고대 유대인의 사고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 곧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차원을 의미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대로 '하늘은 신의 어좌요, 땅은 신의 발판이다.'(이사야서 66,1) 그런 신은 인간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고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는 이다.(시편 93,1; 103,19)
예수가 계속 아버지라고 부른 신은 구약과 신약에서 일관되게 하늘에 계신 분이다. 그런데 이는 공간적 '위치' 라기보다는 존재 방식에 대한 표현이다. 신이 기거하는 하늘은 인간의 지배가 미치지 않고, 시간과 죽음의 제약을 받지 않는 차원이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말하는 하늘과 유사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하늘은 '우라노스'라는 신의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신과 동격이다. 그리고 그 신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말하는 하늘은 신이 창조한 것이며 그곳에 신이 머물고 있다. 그리고 하늘은 신의 뜻이 온전히 실현된 상태로 신이 의지한 완전한 질서가 이미 이루어진 자리다. 여기에는 불의도, 폭력도, 왜곡도 없다. 그러나 인간 세계는 다르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신의 뜻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권력이 정의를 누르고, 질투가 사랑을 삼키며, 두려움이 진실을 왜곡한다. 이러한 상황은 창조 후에 보기에 좋았다고 생각한 신의 뜻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아버지의 나라가 와서 신의 통치가 이 세상에서 이루어져 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곧 이미 하늘에서는 이루어진 창조 질서가, 이제 인간이 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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