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사실 거의 가망이 없던 오세훈 후보가 이른바 남성 M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로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 당선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갑자기 남성 MZ세대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마치 그들이 한국 사회의 trend setter인 양 언론에 자주 소개된다. MZ세대의 플렉스가 한국 사회의 문화를 이끈다는 식으로 정의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런가? 그런 의문이 들어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언론의 가벼움이 있지도 않은 ‘MZ 문화’를 거론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말이다.
물론 MZ세대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급조한 것이다. 밀레니얼과 Z세대는 서양에서도 거론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둘을 MZ세대로 하나로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밖에 없다. 장사꾼들이 물건을 잘 팔아주는 젊은 소비자 계층을 MZ세대로 규정하여 이들을 상대로 마케팅 전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인위적 개념이다. 과연 이 두 세대를 간단히 붙여서 이야기할 정도로 서로 무리 없이 통하는 세대인가? 이제 10살에 불과한 Z세대와 40살이 된 밀레니얼 세대의 공통분모를 도출해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익에 눈이 먼 자본가들이 수작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MZ세대는 이제 전 국민의 44%를 차지하는 무시할 수 없는 단일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발언권을 강화하며 자신의 개성과 힘을 플렉스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물론 정치가들도 이들에게 구애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한 걸음 더 나가 이 MZ세대의 대척점에 ‘꼰대’를 놓고 아예 대결을 부추긴다. 언론이 말하는 꼰대가 뭔가 보니 결국 MZ세대의 맘에 들지 않는 주로 나이 든 세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세대 갈등은 인류 역사 이래 늘 있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언론은 그러한 세대 갈등을 MZ세대와 꼰대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으로 고착시킨 기사로 도배를 하며 클릭 수 높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먼저 MZ세대와 꼰대가 뭔지 알아나 보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 보니 MZ세대는 나와 있지도 않다. 다만 ‘꼰대’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명사」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결국, 늙은 선생 같은 사람이 꼰대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형적인 꼰대다. 60이 되었고 1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론을 보니 그런 꼰대가 MZ세대에 대하여 하는 말은 거의 반영이 안 되고, MZ세대가 꼰대에 대하여 하는 말, 그것도 주로 불만만이 거의 일방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뭔가 괘씸하다. 언론이라는 것이 본래 신속, 정확,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내 박사학위 주제가 언론윤리였으니 더 속이 울렁거린다. 그래서 이른바 ‘꼰대가 바라본 MZ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상대방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겠다. MZ세대가 인류 역사에 늘 존재해 왔던 젊은 세대와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MZ세대는 별개의 두 세대를 억지로 합성한 인조물이니 먼저 각각의 세대를 구분하여 알아보아야겠다.
밀레니얼(millennial)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미국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대개 X세대 다음으로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나서 Z세대에 앞서 있는 계층을 지적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른바 baby boomer의 자녀들이고 알파 세대의 부모이기도 하다. 2021년 기준으로 본다면 25세부터 40세에 이르는 연령대에 속한다. 그런데 왜 Y세대라고 안 하고 굳이 밀레니얼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뀔 무렵에 성장한 덕분일 것 같다. 특히 1981년에 태어난 밀레니얼은 세기가 바뀔 무렵에 사회에 진출하게 된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 용어를 William Strauss(1947–2007)와 Neil Howe(1951-)가 1987년에 최초로 만들어 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저서 <Generations: The History of America's Future, 1584 to 2069>(1991)와 <Millennials Rising: The Next Great Generation>(2000)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밀레니얼의 특징은 무엇보다 인터넷의 절대적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방안에 고정된 데스크톱 컴퓨터에 묶여 있지 않고 이동통신수단을 이용하여 문자 그대로 늘 움직이면서 social media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7년부터 2009년에 시작된 전 세계적 경기 침체의 직접적 타격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를 Great Depression으로 정의하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의 경제 위기였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체제의 붕괴로 야기된 이른바 월가의 금융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유동성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때 독일, 스위스, 스웨덴 정도만 위기를 잘 견뎌냈다. 한국은 1997년 발생한 IMF 사태에서 겨우 벗어나던 중이었으나 다시 이 경기 침체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서양 선진국을 시작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금리를 내리고 양적 완화 제도를 시행하여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고용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밀레니얼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에도 이들이 느끼는 취업 한파를 중심으로 한 경제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가 자리 잡은 한국에서 경기 회복은 고용 창출 효과가 낮은 ICT 산업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취업 시장의 규모가 더욱 작아진 것이다. 그래서 밀레니얼은 재학 중에도 '취업 고시'를 준비하거나 아예 공무원 시험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양적 완화로 풀린 통화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이기에 통제가 필요했다. 그러나 선진국조차 경기 침체를 두려워하여 그 시기를 지연시키는 바람에 결국 물가와 더불어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 특히 2019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실질적으로 폭등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실 선진국에서 2010년부터 진행되어 온 현상이 지연되어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나타난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돈이 경제 활성화에 활용되기보다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몰리는 부작용이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말에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발발했다. 경제 회복이 어느 정도 되어 양적 완화의 부작용을 막는 조치를 본격적으로 취하기 시작할 무렵에 벌어진 이 일로 양적 완화는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의 전례 없는 급등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는 IMF 위기와 월가에서 시작된 세계적 금융위기 때 학창 시절을 보내고 고용 시장이 불안한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병폐가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곧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된 것이다. 고임금 정규직과 저임금 비정규직의 임금과 복지 격차가 현격해졌다. 그래서 이른바 ‘금수저’ 부모를 만나거나 ‘능력’이 있는 소수의 밀레니얼은 플렉스의 삶을 구가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인 나머지 ‘흙수저’와 무능력한 밀레니얼들은 상대적 박탈감의 극대화 속에서 질투와 분노의 마음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세대 내의 빈부격차는 이른바 성공한 밀레니얼의 플렉스로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세대 안의 연대성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랜 일이 되었다. 그래서 밀레니얼은 다른 세대와 다르게 이념적 동질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은 함께 고난을 겪으면서 일치를 이루는 법인데 밀레니얼들은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일찍부터 각자도생과 승자가 패자를 깔보는 플렉스의 modus vivendi를 체득한 것이다.
또한, 밀레니얼은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경제력이 부족하니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도 큰 관심이 없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의 부동산 가격 폭등의 여파로 좌절감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그 와중에도 금수저 부모를 둔 밀레니얼의 플렉스나 부동산, 주식, 코인 투자에 성공하여 이른바 ‘대박’을 친 ‘파이어(FIRE)족’의 승전보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극소수의 ‘성공한’ 밀레니얼들의 소식과 더불어 대다수의 ‘절망하는’ 밀레니얼들의 사연을 이야깃거리로 거의 매일 쏟아 낸다. 그러면서 결국 이들의 사회적 분노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 흔히 밀레니얼 세대는 언론이나 광고의 영향을 그 이전 세대보다 덜 받고 social media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입맛대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social media에 자신을 과장하여 플렉스 하는 것이 길들은 이 세대는 오히려 그 이전 세대보다 여론의 추이와 '관객'의 반응에 더 민감하다. 다만 그것에 대한 반응이 일관되지 않고 선택적으로 이루어져서 단일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결국, 이는 개인이 휴대하는 인터넷 기기와 스마트폰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결과이다. 그래서 조국의 딸과 관련된 사태와 유사한 다른 사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은 이른바 ‘선택적 분노’를 하는 것이다. 그 사건 자체가 객관적으로 불공정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관적인 판단에서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기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처와 분노를 공유하는 밀레니얼들이 일시적으로 연대하여 선거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플렉스의 경험을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 거의 처음 해본 것이다. 이는 좌절한 밀레니얼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밀레니얼의 '정치적 플렉스'이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한국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2022년 대선을 노리는 후보들도 앞다투어 MZ세대에 ‘아부’하려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들이 누구인가? 선거가 끝나면 이들의 아부는 사라질 것이 뻔하다. 아무도 이들을, 특히 금수저 부모를 못 만나고 ‘무능한’ 대다수의 밀레니얼을 실질적으로 돌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밀레니얼은 외롭다. 그 외로움을 과거 세대는 물리적으로 집단을 이루어 해결했지만 ‘혼밥’에 익숙해지고 있는 밀레니얼들은 그조차 서툴다. 물리적인 주변에는 대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 가족과 경쟁자인 친구들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social media에 탐닉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내 맘에 들고, 더구나 언제든 틀어지면 쉽게 절교할 수 있는 ‘친구 아닌 친구’, 곧 즉석(ad hoc) 친구가 넘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만나고 그 필요가 사라지면 바로 절교한다. 밀레니얼은 이렇게 친구를 포함한 인간관계도 자본주의식으로 소비하는, 곧 ‘쓰고 버리는 문화’(use and throw-away culture)에 익숙하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인식하지만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이다.
그런데 이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과연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것인가? 사실 Z세대는 밀레니얼과 결이 매우 다르다.
1997년부터 2012년에 태어난 Z세대는 밀레니얼과 알파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대부분이 X세대의 자녀다. 물론 학자와 나라에 따라 1990년 출생부터 Z세대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확한 연도를 명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디지털화된 세계에 들어선 세대라는 것에는 거의 다 동의한다. 이들의 최대의 특징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모험을 기피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Z세대는 10대 임신이나 술 문제에서 그 이전 세대보다 더 도덕적이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 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정서적, 지적 문제가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들은 종이책보다는 전자 기기를 통하여 정보를 얻는 데 훨씬 더 익숙하다. 이 세대는 비교적 현실에 대하여 만족하고 낙관적이다. 다만 2016년 Varkey Foundation이 전 세계 20개 국가의 15에서 21세에 이르는 20,00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를 담은 12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인 <WHAT THE WORLD’S YOUNG PEOPLE THINK AND FEEL>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우 자신이 행복하다고 답한 비율을 보여주는 ‘총 행복률’이 각각 29%와 28%에 머물렀다. 조사 대상 국가의 평균치인 5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수치는 중국의 59%에 비해보아도 기형적으로 낮은 결과이다. 물론 이 수치는 행복하다는 답(46%)에서 불행하다고 답한 수치(17%)의 차이를 계산한 것이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조사 국가 가운데 일본과 더불어 최하위에 머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 조사 결과가 언론에 회자되면서 한국 청년들의 행복을 높이기 위한 방책을 이야기하더니 어느 사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2021년 현재 20대 초중반에 이른 세대이다. 이제 대학 생활을 하고 취업 전선에 막 나서려는 데 기존의 경제적 불황에 코로나 사태로 학교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으니 행복 지수가 상승했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때 조사에서 Z세대는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건강 그리고 가족과 친구와의 원만한 관계에서 찾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이 가장 근심하는 것은 돈과 학업이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66%가 돈이 가장 큰 문제라고 대답하여 20개 국가 가운데 한국의 Z세대가 가장 경제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비율도 한국이 70%로 20개 국가 가운데 최악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결과는 한국의 Z세대는 자신의 나라가 살만한 곳이냐는 질문에서 20개 국가 중에 유일하게 부정적인 대답이 6%p 더 많았다. 이들에게는 한국이 살 만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한국보다 한 단계 위인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긍정적인 대답이 12%p 정도 많았다. 이러한 부정적 태도는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사회에 사실상 무방비로 내던져진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이지만 한국은 특히 심하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과 더불어 한국은 Z세대가 가장 불행하게 느끼는 나라인 것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외적인 변화가 특별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꼰대’의 예상과는 달리 연예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한 비율은 3%에 머물렀다. 반대로 89%는 부모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역시 89%는 양성평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했고, 66%는 필요한 경우 낙태도 허용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63%는 동성혼에 찬성하였고, 74%는 트랜스젠더도 다른 이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66%는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통계치를 보면 Z세대가 사회 문제에서 매우 진보적이면서도 전통 가치인 가족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84%가 기술발전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16개 국가의 청년들은 그들의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이었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선택적인 판단을 하며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가치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단순히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틀로 나누어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측정 도구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사안에 따라 선택적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선택적 진보주의자들이다. 선택적 분노도 이들에게는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 된다.
그런데 한국만 놓고 보면 상황이 전체 Z세대와 비교해 매우 다르다. 한국의 Z세대는 외국인에 대하여 20개 국가 가운데 가장 부정적이다. 외국인에게 우호적인 숫자에서 혐오하는 숫자를 뺀 수치가 –29%p로 이스라엘보다 더 낮아 20개 국가 가운데 꼴찌인 것이다. 한국과 자주 비교가 되는 일본조차도 +19%p로 외국인에 대하여 관대한 편이다. 또한 한국의 Z세대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의견이 훨씬 많다(-38%p). 매우 젊은 신세대인 Z세대조차도 외국인에 대하여 극도의 거부감을 지닌 것이 한국이다.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의 가장 커다란 요소로 돈을 지적한 것에서 한국이 수치가 가장 높다(42%). 한국의 Z세대가 돈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이 조사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사회를 위하여 자신의 것을 기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비율은 52%로 꼴찌인 일본(44%)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에 가장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것이 본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94%나 되지만 실제로 육체적으로나(11%) 정신적으로나(24%) 만족하다고 답한 비율은 극히 저조하다.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가 매우 심한 상황에 놓인 것이 한국의 바로 Z세대이다. 그래서 20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것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51%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또한 한국의 Z세대이기도 하다. 이 수치도 20개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다. 한국의 Z세대는 먹고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의심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Z세대의 rassantiment, 곧 사회적인 분노 특히 선택적 분노를 초래하는 복잡한 원인에 대해 이해를 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어차피 살기 힘들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인 것이 한국의 Z세대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Z세대는 밀레니얼과 마찬가지로 개별적 개인의 행복을 중시한다. 반면에 사회적 책임과 국제적 연대에 대해서는 마음이 크게 열려 있지 않다. 내 몸과 맘이 편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하면 그만인 것이다. 사실 이는 유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치 태도이다. 유교의 경전 가운데 으뜸인 <書經>에 나오는 오복도 결국은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 곧 오래 건강하고 부귀하게 사는 가운데 자신의 능력 안에서 남에게도 베풀 줄도 알면서 편안히 죽는 것. 그 이상의 인생 목표가 없는 것이다. <서경>은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역사가 2,500여 년이나 되는 책이다. 그런 오래된 ‘꼰대’의 가치 태도를 한국의 Z세대도, 그리고 더 나아가 MZ세대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요즘 한국에서 유행이라는 이른바 파이어(FIRE)족이 되는 것. 곧 경제적으로 독립하여(Financially Independant) 40대 정도의 나이에 일찍 사회에서 은퇴하는(Retire Early) 것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MZ세대의 특징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들은 은퇴, 곧 직장을 그만둔 후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는 수단으로 돈을 계산한다. 그래서 1년 소비액에 기대 수명을 곱한다. 그리고 그 돈이 마련되면 미련 없이 직장을 ‘내던지는’ 것이다. 그 액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5억 원이면 충분하고 다른 이는 30억 원이다. 특히 2~3년 사이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유한 집값 상승분으로 이 액수에 '쉽게' 도달한 사람이 늘면서 실제로 파이어족의 대열에 합류하는 숫자도 늘고 있다. ‘꼰대’들이 지녔던 한 직장에 평생 ‘뼈를 묻고자 하는’ 천직 의식이 사라진 것이다.
또한, 한국의 MZ세대의 특징은 가족이 자신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혼인과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전통적’ 가정을 꾸미는 일을 기피한다. 그 결과 2020년 합계출산율이 0.83%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이다. 특히 이른바 ‘집 부자’가 몰려 있는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64%에 불과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사실 경제적으로 출산은 부부에게 거의 재난이나 다름없는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2018년 기준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아이 없는 부부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220만 원이다. 그러나 아이가 1명 생기면 월 292만 원으로 갑자기 33.2% 증가하게 된다. 2명의 자녀가 생긴다면 65.4%나 증가한다. 게다가 출산하면 맞벌이도 어렵다. 결국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폭증하는 구조이다. 출산과 기본적 양육을 마무리해도 경력단절로 재취업이 극도로 어려워진다. 결국 지출은 늘어나는 데 수입이 줄어드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게다가 아이가 생기는 순간 개인적 여가 활동 시간은 2014년에 실시된 '생활시간조사' 기준으로 하루 279분에서 179분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돈은 더 나가고 내 여유 시간은 줄어드는 것이 출산과 양육이다. 현실적으로 부부의 삶의 질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출산 기피는 당연한 결과이다. 사실 저출산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가 만연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출산과 혼인에 무심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한국의 정서상 적어도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가 양육을 책임지는 것이 관행이고 심지어 혼인할 때까지 자식을 ‘끼고 사는’ 문화에서 자녀는 부모의 일생을 바쳐야 하는 부담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7년에 실시한 '노동패널조사'에 따르면 자녀 1인을 대학 졸업할 때까지 드는 생활비와 교육비는 총 3억 4,790만 원에 이른다. 자녀가 2인이라면 7억이다. 2021년 기준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상위 10%에 속한다고 해도 700만 원 정도이다. 결국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2인의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면 한 사람의 월급을 꼬박 10년을 모아서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대를 잇는’ 것은 천명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七去之惡의 으뜸은 시부모에 불효하는 것과 더불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자식을 낳는 것은 부부의 행복의 끝과 고통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일이 되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MZ세대가 출산을 꺼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2100년에 한국의 인구는 1,800만 명이 안 될 것으로 예상된다. MZ세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이러한 인구 감소 예측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인구 감소를 미리 경험한 선진국의 경우 노동력의 부족분을 외국인 노동자로 충당하고 있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MZ세대 마저 외국인에게 극히 부정적인 한국의 상황에서 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대입 경쟁이 완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서울 대학교의 경쟁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SKY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체제에서 자본가들이 요구하는 ‘인재’의 스펙은 더욱 높아지고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아지기 때문에 MZ세대가 ‘꼰대’ 세대에 비하여 더 나을 것도 없는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다. 더구나 ‘꼰대’들은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고 ‘평생 고생하며’ 천명으로 알고 자식을 키웠지만, MZ세대는 자녀에 대한 그런 소명 의식도 없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는 자녀마저도 나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시장에 내던져진 MZ세대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은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런 MZ세대에게 꼰대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요즘 MZ세대는 맘에 안 드는 것에는 다 꼰대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유행 아닌가? 그럼에도 이 꼰대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래서 참고할만한 글을 찾아보니 마땅한 것이 없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들을 귀가 있는 MZ세대가 듣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