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May 02. 2024
새로운 도전
늦은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해 24명의 응시자가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3명 단위로 면접실로 향했다. 내 차례가 되어 면접실로 들어갔다. 내 왼쪽에 앉은 응시자부터 차례로 면접관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마디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네. 이제 올해 은퇴합니다.”
“회사의 회장님이신데...”
“네. 그래도 정년이 있습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니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집이 강남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택시를?”
“은퇴 후에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그런데 나이가 70이 넘으면 쉽지 않습니다. 이게 중노동이라서.”
그러자 내 왼쪽의 응시자가 ‘허허’하며 웃는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은퇴하신 지 1년 되었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요?”
“제가 가진 재주 가운데 가장 잘하는 것이 운전이라서요.”
이번에는 면접관이 ‘허허’하고 웃는다. 그러고 나서 별다른 질문이 없이 내 오른쪽에 앉은 응시자에게 시선을 보낸다.
“음주 운전 경력이 많으시네요.”
“아 그건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믿고 회개한 이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습니다.”
“댁이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근처네요.”
“네 출근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는 술을 안 마시나요?”
“네 정말로 회개하고, 이제 교회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기는 한데. 기록이 많이 남아서요...”
요즘 불황이다 보니 회사 회장도 택시 기사에 지원하는가? 아니면 정말로 그의 말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이런 일을 마다치 않는다는 것인지. 암튼 면접은 20분 정도 걸렸다.
“합격자에 한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가는 택시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은퇴 후 이런저런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이력서를 여러 곳에 보냈지만, 답신이 오는 자리는 마뜩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급여가 너무 낮았다. 월급 200만 원이라니. 연봉이 3천만 원도 안 된다는 말인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벅찼다. 아직 애들 시집·장가도 못 보냈고, 겨우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인 상황에서 말이다. 애들이 결혼하면 전세금이라도 도와주어야 하는데 퇴직금은 치킨집 하느라고 다 써버렸고, 연금도 용돈 수준인 상황에서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결국 찾은 일이 택시 기사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도 이리 치열한 상황이다. 지난번에 오라던 사회적 기업에 다시 연락을 해볼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든다. 그러나 하루 종일 묶여 있으면서 월급 200만 원을 받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택시는 열심히 뛰면 300 정도는 받을 수 있다니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경력을 쌓으면 개인택시 면허를 사서 평생 운전할 생각도 없지는 않다. 회사에서 부장까지 가보았지만 퇴직하고 보니 무력자로 전락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평생 출퇴근하면서 쌓은 운전 경력 말고는 말이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환승택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합격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다음 주 교육이 있는데 참석하시겠는지요?”
“네 알겠습니다.”
내 새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