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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y 09. 2024

밤에 시작한 인생 2막

새 출발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나름 명문이라고 하는 대학교의 무역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대우에 입사하여 한국의 수출 무역 최전선에서 자부심을 품고 일했다. 그러나 IMF의 직격탄을 맞아 1999년 대우 그룹이 해체되면서 현대 다음으로 재계 2위의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 무역 파트가 포스코에 흡수 통합되면서 포스코대우의 직원이 되었다. 이후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이 변경되고 나서도 열심히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철강 사업 부문과 통합되면서 나의 특기인 상품 해외 무역은 빛을 잃었다. 자연히 임원 승진에서도 멀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퇴직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30년 동안 청춘을 바친 회사를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퇴직금을 받고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치킨집을 말아먹고 남은 저금을 곶감 빼먹듯이 쓰다 보니 어느새 잔고가 바닥이 나 있었다.      


직업 전선에 나서봤지만, 아파트 경비직은 감당이 안 되었다. 부녀회의 텃세가 상상을 초월했다. 석 달 만에 그만두고 다시 찾은 것이 바로 택시 운전이었다. 워낙 이직률이 높은 직종이라 자리를 찾기가 무척 쉬웠다.


입사 교육 때 계속 고민한 것이 어느 타임에 운전하느냐였다. 결국 돈을 버는 것이 주목적이니 할증이 붙는 밤에 운전하는 것이 벌이에는 유리하다. 그러나 밤잠을 설치면서 돈을 벌면 체력이 얼마 못 가서 고갈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시작은 주간반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주간반 시작 타임이 새벽 5시라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출근하려면 적어도 4시 이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말인데. 아침잠이 많은 나는 무리다. 야간반 시작 시각은 오후 5시다. 끝나는 것이 새벽 3시지만 차라리 그것이 낫다. 오후가 되어야 컨디션이 올라오니 말이다. 물론 일차를 택할 수도 있다. 일차는 하루 종일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다. 마치 개인택시처럼 말이다. 그러나 경력이 없는 신입자에게 배당되지 않는다. 이것 말고도 협동조합 택시도 있다. 일정액을 보증금으로 내면 택시 한 대를 개인택시처럼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차와는 달리 완전히 내 책임이다. 가스비는 물론 수리비도 내가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일 아닌가? 나와 같이 입사한 동료들이 대부분 가지는 꿈은 개인택시 면허를 사서 개인택시를 굴리는 것이다. 그러나 1억 원짜리 면허를 사는 것은 돈도 돈이지만 매물이 없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법인 택시 운전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야간 운전을 하는 것이 겁나기는 했다. 대부분 취객이 택시를 이용하는 법이니 술 냄새, 잔소리, 구토 삼 종 세트의 고통을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시작을 해볼 일이 아닌가?     


첫 출근을 오후 4시에 하니 기분이 묘했다. 다른 사람들이 퇴근하거나 퇴근 준비하는 시간에 나는 출근을 한다. 첫 차를 배정받고 기본적인 차량 성능과 작동 방법을 교육받은 다음 바로 거리로 나섰다. 평소 운전을 즐기던 바라 운전이 몹시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콜 받는 기계와 앱 작동 방법이 익숙지 않아서 버벅거릴 것은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첫 콜이 들어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콜 수락 버튼을 눌렀다. 출발지가 코엑스 컨벤션 센터다. 한 10분 정도 거리다. 출발지에 도착해 첫 손님을 태웠다. 뜻밖에 외국인이었다. 앱에 뜬 목적지를 보니 인천공항이다. 첫 손님부터 수지맞았다. 장거리에 가격도 높은 손님이니 오늘 일당에 큰 보탬이 된다.    

 

회사에서 배운 대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How are you, sir. You are Mr. Jason? You want to go to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You got it. Let’s hit the road!”     


“O.K., Buckle up your seat belt, please.”    

 

“Oki doki.”     


첫 손님인데 매우 나이스하다. 운수 좋은 날인가 보다. 내비를 찍어보니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퇴근 시간치고는 크게 막히는 것은 아니다. 88도로가 여의도까지 막히고 염창동을 지나면서 파란색이다.     


“Where are you going?”     


원래 승객에게 말을 거는 것을 삼가라고 교육을 받았지만, 기분이 좋아서 물어보았다.    

  

“to L.A. in California.”     


간결한 답이 돌아왔다. 회사 다닐 때 해외 출장을 다니며 써먹은 영어 실력을 최대한 동원해 보았다.    

 

“Are you satisfied with your business in Korea?”     


호텔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사업차 한국에 왔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I was here for my wife’s funeral.”     


“Oh, I am very sorry.”

    

“It’s O.K.”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손님도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업된 기분이 순식간에 차분히 가라앉았다. 가양대교를 지나면서 오른쪽을 바라보니 한강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 부시다. 그러나 어쩐지 찬란한 슬픔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장례를 치렀다면 십중팔구는 한국인 아내였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한국에 와서 아내를 영원히 보냈다면 꽤 사랑했던 모양이다. 이제 아내와 헤어지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혼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지만, 뚜렷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얼굴을 보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데 적어도 20년은 사랑하며 같이 보냈을 인생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을 용기도 기분도 안 났다.     


제1청사 입구에 정차하고 짐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Thank you. here is your tip.”     


그러면서 5만 원짜리를 건넨다.    

 

“Thank you, sir.”     


택시를 잠깐 세우고 짐을 11번 터미널 앞까지 함께 밀고 갔다. 전광판을 보니 8시 40분에 출발하는 L.A. 행 아시아나항공편이다. 악수를 하면서 한 번 더 영어 실력을 총동원하였다.      


“I hope you may find comfort in Almighty God.”     


그러자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God bless you, too.”     


“Thank you, sir.”     


그렇게 나의 첫 손님과 작별했다. 아마 다시는 못 만날 것이다. 인연이라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만.   

  

손님을 내리고 인천공항에서 계속 대기하려는데 콜이 안 온다. 그래서 그냥 빠져나왔다. 돌아올 때는 통행료를 안 내도 되니 빈 차로 와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다시 코엑스 근처로 왔다.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봉은사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30분 무료 주차이니 잠깐 쉬려고 했다. 8시가 넘었으니 저녁 식사도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바로 콜이 들어온다. 이번에는 압구정역이다. 내비를 켜보니 30분이나 걸린다. 할 수 없지. 그냥 출발했다. 강남은 늘 이 모양이었다. 마치 한국의 모든 움직일 생각이 없는 차가 모여서 시위하는 것만 같다. 도착해서 손님을 실으니, 이천에 있는 SK실트론 공장으로 가잔다. 여기서 족히 한 시간 반은 걸리는 거리다.   

   

‘저녁 먹기는 틀렸군.’     


속으로 투덜대면서 배운 대로 멘트를 날렸다.     


“안녕하세요. SK실트론 이전공장으로 가시는 김윤석 고객님이십니까?”   

  

“네”     


“내비게이션대로 가려고 하는데 아시는 길이 있으신가요?”     


“아뇨, 그냥 알아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안전띠 착용 부탁드립니다.”     


백미러로 보니 뭔가 부산하게 서류를 들추고 있다. 더 이상 말을 걸 필요가 없어 보인다. 93.1 MHz KBS Classic FM을 조용하게 틀었다.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 진행되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이 흐른다. 해외 출장을 다닐 때 비행기 안에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즐겨 듣던 음악이다. 그 음악을 지금은 택시를 몰면서 듣고 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번을 작곡한 지 24년 후에 아들의 졸업 연주회를 위해 쓴 곡이다.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곡이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결국 자식 아닌가? 나 또한 아들딸을 위해 청춘을 바쳐왔고 지금도 자식을 위해 이 어둠 속에서 택시를 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의 숙명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는 아버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소망대로 뛰어난 지휘자가 되어 아버지의 대업을 이었다. 나의 아들의 딸은 무엇이 될까?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갑자기 고객이 말을 건다.     


“기사 양반 음악 좀 꺼주세요. 일에 방해가 되네요.”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내 머릿속에서 진행되던 의식의 흐름이 일순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다. 나는 무역회사 부장도, 두 자식의 아버지도 아닌 택시 기사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얼굴을 보니 내 아들보다 대여섯 살 위로 보인다. 그래도 내 고객이다. 친절히 모셔야 한다. 다행히 중부 고속도로는 크게 밀리지 않았다. 국도로 빠져나오니 약간 막힌다. 그래도 예상 시간 안에 도착하였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공장에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일까? 직장 생활의 애환을 잘 아는 처지이니 말을 건네고 싶기도 하지만 백미러로 보니 계속 서류를 뒤적이는 모습이다. 그냥 도착지까지 조용히 가기로 했다. SK실트론이면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반도체 소재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겠지. '그래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보거라. 나라만이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속으로나마 진심으로 행운을 빌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착지에 내려주고 다시 중부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이미 어둠이 깊이 내렸다. 배가 고픈 시간이 지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시 서울 시내로 돌아가서 늦은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2명만 태웠지만 첫날 성적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익을 올렸으니, 마음도 느긋해졌다. 압구정동으로 돌아오니 이미 11시가 가까웠다. 이제부터 술손님이 슬슬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먼저 배를 채워야겠다. 다시 봉은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운행 앱의 ‘휴식’ 단추를 눌렀다. 일을 시작한 지 6시간 만에 처음 휴식을 해본다. 음식점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냥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다시 차에 올라 1km쯤 떨어진 맥도널드에 주차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슈비버거 하나와 커피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햄버거를 한입 물어 씹었다. 오늘 저녁 첫 식사다. 매장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건너편으로 도심 공항 건물이 보인다. 오늘도 누군가는 늦은 밤에 공항을 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남은 햄버거를 입에 구겨 넣고 아직 뜨거운 커피로 입가심했다.   

   

차에 돌아와 앱의 콜 단추를 눌렀다. 그러나 30분을 기다려도 콜이 안 들어온다. 그래서 배운 대로 ‘배회’를 시작하였다. 12시 근처면 길거리에서 차를 잡는 손님이 늘게 되어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때부터 2시까지 서울 강남에서 판교, 분당, 광주, 하남으로 가는 손님을 계속 태우고 날랐다. 이제 차고지로 복귀할 시간이다. 가스도 얼마 안 남았다. 불이 맨 아래만 들어온다. 차고지 근처 지정 충전소에 들렀다. 차고지에 들어가니 3시가 넘었다. 정확히 10시간을 근무한 셈이다. 정산을 해보니 총 313,700원의 매상을 올렸다. 첫날치고는 나쁘지 않은 실적이다. 간 할증이 붙은 덕분이 크다. 역시 야간 조를 택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환복하고 간단히 세수한 다음 내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4시가 넘었다. 집 안이 캄캄했다. 불을 켜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했다. 아내가 잠들어 있을 안방에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워 거실 소파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나의 택시 기사로서의 하루를 보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새 출발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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