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May 23. 2024
택시 차창 밖의 초현실적 세상
welcome to the real world!
운전대를 잡고 서울 거리를 누비다 보면 어느새 저녁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님 두세 명을 받고 나면 어느 사이 거리는 인공조명 빛으로 가득하다. 그 빛을 받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내다보면 마치 내가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된 기분이다. 네오가 트리니티의 권유로 모피어스를 만나 ‘깨어난’ 다음 오라클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자신이 토머스 앤더슨으로 살던 세계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MORPHEUS
Almost unbelievable, isn't it?
NEO
God...
TRINITY
What?
NEO
I used to eat there... Really good noodles...
I have these memories, from my entire life but... none of them really happened.
What does that mean?
TRINITY
That the Matrix cannot tell you who you are.
택시에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국수를 맛나게 먹던 집을 택시 안에서 스쳐 지나며 보면서 말이다. 마치 택시 안은 나의 의식 세계이고 창밖은 메트릭스의 세상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불현듯 콜이 울리고 지정된 위치로 가면 그 메트릭스 세상에 있던 존재가 손님으로 내 택시 안에 들어온다. 나의 의식 세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침범은 오래가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손님은 내 의식 세계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손님이 들어온다. 그렇게 메트릭스의 세계와 나의 의식 세계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사이 새벽이 된다. 그러면 나는 밤일을 접고 결산하러 사무실로 향한다. 택시에서 내려 사무실에 들어서면 나는 다시 메트닉스의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이 든다. 밤새워 운전한 후유증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계산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들어서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를 장자의 호접몽과 비유하기에는 어색하다. 뭔가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다는 기묘한 느낌.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그런 구차한 질문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너무 지쳐서 까무룩 잠이 들면 어느 사이 거실 창문을 통해 강한 햇살이 부서져 들어온다.
일어나 세면하고 늦은 아침을 먹고 간단히 인터넷 검색을 하고 밀린 일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 사이 또 출근 시간이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슬슬 퇴근 생각을 할 때 나는 출근을 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와 메트릭스 세계의 대립을 매일 체험하는 이 일이 재미있다! 놀라운 발견이다. 문득 대기업 부장으로 술에 절어 오밤중에 잡아탄 택시에 몸을 던져 바로 곯아떨어지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나를 본 택시 기사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뜬금없이 영화 메트릭스에서 ‘깨어난’ 네오에게 모피어스가 한 말이 떠오른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그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
빨간 약을 먹지 말았어야 했나?
후회해도 이미 늦다. 이제 출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