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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un 29. 2024

길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어떤 초콜릿인지 모를 뿐이다.

센터필드 주차장 입구에서 대기 중에 콜이 들어왔다. 콜을 받아보니 손님이 기다리는 위치가 차병원 앞이다. 그렇다면 가는 길은 두 개다. 센터필드 교차로에서 좌회전해서 직진한 다음 구경복아파트 교차로에서 다시 회전해서 봉은사로를 따라가다가 언주역 사거리에서 좌회전받아 들어가면 바로 도착지 근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시 유턴을 받기 위해 국민은행 앞까지 직진해서 돌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이 귀찮으면 조선팰리스 앞길 골목에서 우회전하고 역삼역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그런데 마침 내 택시가 서 있던 곳이 센터필드에서 언주로 방향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위에서 말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대기하는 다른 차들이 많고 유턴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운전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 특히 저녁 러시아워에 콜을 받으면 교통량이 많아 짧은 거리도 20분까지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럴 때 내비가 알려주는 길 말고 내가 아는 사잇길로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잇길은 워낙 좁고 주차된 차도 많아서 지도상으로는 짧아도 결국 비슷하거나 더 긴 시간이 걸리기 일쑤다. 그래서 어떤 때는 콜을 받은 지역까지 가는 시간이 정작 손님을 태우고 이동하는 시간보다 더 긴 일도 벌어지곤 한다. 그렇게 힘들게 손님이 기다리는 곳에 가서 도착 완료 버튼을 누르고 났는데 거리가 3km도 안 되고 요금도 1만 원이 안 되면 허탈해지기 일쑤다. 그래도 승차 거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임무를 완수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면서 드는 생각이 바로 인생길이다. 우리 인생길에도 이런 식의 일이 자주 벌어진다. 내가 목표로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개다. 그런 길을 생각하면서 어느 길을 갈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부분 쉽고 빠른 길을 택하기 마련이다. 아니 정확히는 쉽고 빠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인생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기 십상이다. 중간에 예상치 못한 정체 현상이 벌어지기 일쑤다. 갑작스러운 도로 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4개 차선이 2개, 심지어 한 개로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면 빠르고 쉬운 길로 여겨 출발한 인생 여정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늘 같다. 차라리 좀 더 불편하고 좀 더 길 것으로 예상된 다른 길을 택할 것 그랬다는 후회가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길을 간다고 지금보다 더 편했을까?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길을 갔을 때 지금과 같은 예상치 못한 정체 현상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콜을 받아 목적지가 정해지면 기본적으로 앱이 자동으로 내비길을 알려주는 식으로 우리 인생길은 목표가 정해지면 표준적인 길이 안내된다. 대부분 초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우선 택하는 길이다. 그다음에 취업이라는 경로가 기다리고 있다. 취업하고 나면 결혼과 육아 그리고 주택 구매 그리고 출셋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다양한 길이 전개되지만 결국 언젠가 은퇴라는 경로는 반드시 지나게 된다. 물론 김형석과 같은 극히 일부 ‘능력자’는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 되기도 하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 로또 당첨 확률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에 은퇴한다. 이때부터 큰 문제가 발생한다.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 별 탈이 없으면 대부분 80세를 넘겨야 할 의무 아닌 의무를 지고 30년 정도를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정도 ‘준비길’을 달리고 나서 사회에서 30년 정도 ‘출셋길’을 달리다가 나머지 30년 가까이 다시 ‘황혼길’을 달려야 하는 것이 대충 정리된 인생길이다.      


흔히 ‘인생 전문가’들은 책이나 강연을 통해 잘 사는 길을 이야기해 준다. 특히 대성공을 거둔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다. 사람들은 그런 성공한 이들의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서 자신도 그 대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성공의 목적지에 이른 사람의 숫자는 통계적으로 볼 때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이 친절하게 자신이 지나온 길을 다 알려주는 데도 그렇다. 왜 그럴까? 당연히 길이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에 막상 들어서면 그 대성공을 거둔 사람이 갈 때와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공사판이 벌어져 길이 막히기도 하고 아예 그 길이 임시 폐쇄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 경우, 마치 길을 안내한 내비를 탓하듯이 그 전문가를 탓할 수 있을까? 그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그 전문가가 말해준 대로 그 길에 나서서 대성공까지는 아니어도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결국 그 길을 택한 것은 ‘나’이니 그의 말을 맹신한 나의 어리석음을 원망하고 좌절하고 말아야 하나? 꼭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인생은 영화 Forrest Gump에서 포레스트 검프의 엄마가 유언처럼 한 말대로 초콜릿 박스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내게 주어진 인생의 초콜릿 박스에는 수십 개의 초콜릿이 들어 있다. 그 박스에는 그 초콜릿의 성분과 맛이 대충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그 초콜릿을 한 개씩 맛보기 전에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일단 먹어봐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상자 안의 모든 초콜릿이 내 맘에 들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는 법이다. 그 가운데 몇 개가 내 입맛에 안 든다고 내 인생의 초콜릿 상자를 버릴 수는 없다.      


길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출발할 때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바른길’, ‘출셋길’, ‘편한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고 요즘은 내비처럼 ‘최적 길’도 안내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안내된 길을 가다 보면 이런 말이 들린다.     


‘교통 상황을 반영하여 새로운 길을 안내해 드립니다.’     


이런 멘트를 들으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헛짓했다는 말인가? 심한 경우 지금까지 온 길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할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당장 목표로 삼았던 목적지만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러나 인생길 전체를 놓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내가 택한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달려와 봤지만 ‘이 길이 아닌가 봐...’라는 자각이 들고 나면 좌절과 분노가 일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은 아니다. 길은 또 있다. 마치 초콜릿 상자 안에 남은 초콜릿이 나를 기다리고 있듯이 말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손님이 기다리던 장소에 도착했다.      


“반대편 차선에 있어 돌아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친구들과 저녁 먹고 술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손님. 출발합니다.”  

   

손님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오늘은 초콜릿 박스에서 맛난 것을 고른 눈치다.

     

도착지가 분당 수내역 근처 파크타운 롯데아파트다. 30여 분 달려야 한다. 이 시간에  정도 거리와 목적지의 손님이 수고 대비 수익이 가장 높다. 내비를 보니 분당내곡 간 도로가 파란색이다. 강남을 빠져나가는 길만 약간 막힌다. '신나게 달려보자!' 속으로 말하면서 나도 달콤한 초콜릿을 한 개 입에 물고 출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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