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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19. 2024

택시 기사는 상담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가?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택시 기사를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아이와 탄 아줌마들은 대부분 ‘아저씨’라고 부른다. 50대 이상 중년 남자들은 ‘사장님’이라고 한다. 젊은 여자들은 ‘기사 아저씨’, 어린 학생은 ‘선생님’, 그리고 30대 젊은이들이 비로소 ‘기사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택시 손님은 대개 말이 없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도 필요 없는 대화를 하지 말하고 한다. 콜을 받아서 손님을 태우면 조용히 하라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뜬다. 대부분의 고객의 요구 사항이다.     


그래서 조용히 운전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손님 가운데 말을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특정 한 현상이다. 원래 대화 금지가 원칙이지만 손님이 말을 시키는 데 입을 꾹 닫고 있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손님이 먼저 말을 걸어오면 성실하게 답변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손님의 말을 듣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타면 여지없이 자식 자랑이다. 그런데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이 말을 걸어오면 신세타령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밤 12시를 전후로 타는 중년 남성은 대부분 술자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택시 안에서 풀고자 한다.     


한 번은 어떤 50대 후반의 남성이 새벽 2시 다 돼서 탔다. 강남 술집 근처에서 하남을 가자고 한다. 50% 할증이 붙으면 제법 돈이 되는 거리다.    

 

“하남 어디쯤 가시려고 하십니까?”     


“어... 일단 하남으로 가줘요.”     


“일단 출발해도 기본적인 주소가 있어야 내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일단 미사 먹자골목으로 가줘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출발하였다.  

    

“사장님, 내가 오늘 접대하느라고 한잔 했어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상당히 마신 것 같다.   

   

“네 사업하시나 봐요.”     


“뭐 식재료 납품업해요. 연 매출 100억 정도 돼요.”     


“우와, 중소기업 사장님이시네요. 돈 많이 버시겠어요.”     


“뭐 대충 정직원 7명 하고 외주 4명 해서 11명 먹여 살리죠.”

   

 

“좋으시겠어요. 돈을 많이 버시니.”     


“아 직원 월급은 420만 원씩 줘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뭐가 불만인지 대들잖아요. 그래서 오늘 내가 다 사표 쓰라고 했어요. 세금 띠고 350만 원 주면 적은 거 아니잖아요.”    

 

“어유 그럼요. 제 월급보다 훨씬 많은데요.”     


“그런데 서로 견제하고, 게다가 회사 탑차를 이용해서 부업까지 하려고 하잖아요. 기가 막혀서.”  

   

아하! 아마도 직원들이 회사 배달 차를 이용하여 몰래 투잡을 한 눈치다. 사실 사장이 화낼만하다.   

  

“그래서 화가 나서 한잔 하셨나 봐요.”   

  

“아니, 오늘 접대했다니까요. 내 큰 고객과 오늘 한잔 했어요. 한 달 1억 5천 팔아주는 고객이요.”     


“아 그러시군요. 접대가 피곤하죠.”     


“아니, 그 사장은 나와 오래 거래한 사람이라 자주 같이 술 마셔요. 서로 터 놓고 지내는 사이라서. 속이 상해서 많이 마셨어요.”     


“그런데 왜 속이 상하세요. 친구분과 마시는데?”     


“아니, 근데 마누라가 그 사장에게 전화를 한 거예요. 나와 진짜로 술을 마시냐. 언제 술자리가 끝날 거냐. 끝나고 어디 갈 거냐. 그런 거 물었다는 거예요. 쪽팔리게...”     


아하! 감이 이제 잡힌다. 단골 친구 사장과 술을 마신 이유가 단순히 접대가 아니라 대드는 직원들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풀기 위한 것이었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마누라가 전화를 걸어 기분을 잡치게 만들어 화가 난 거네.     


“아 그러시군요. 사모님께서 사장님 건강이 걱정 돼서 그러신 건가 봐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전에 바람을 피웠거든. 그러니 의심해서 그러는 거지.”   

  

아하! 그렇다면 당연히 아내가 남편의 술자리를 의심할만하네. 그러나 굳이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러시군요. 뭐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신 거죠. 뭐.”     


“아니, 남자가 아침마다 발기가 되는데. 사장님, 안 그래요? 아내가 그때마다 귀찮다고 저리 도망가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러니 다른 여자를 찾을 수밖에...”   

  

뭔가 논리가 이상하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네요. 부부라는 것이 참 힘든 것이지요.”    

 

“그런데 접대하는 자리에 굳이 나 몰래 전화해서 친구 사장에게 꼬치꼬치 물어대니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나고요?”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두 달 전에 만난 여자 찾아가는 거예요. 지금. 마누라에게는 회사 들어간다고 말하고.”     


그러고 보니 택시에 타자마자 누군가와 전화하면서 회사 간다고 한 것 같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더니 오늘 한 시간만 같이 술마시자고 한 것도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첫째 통화는 아내와 둘째 통화는 ‘애인’과?     


“두 달 전에 접대하다가 노래방에서 알게 된 여자인데. 오늘 가서 그거 하려고.”     


아... '그거' 하려고!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인생철학을 논한다.  

   

“사장님, 예수님, 부처님 다 웃기지 말라고 해.”  

   

“네?”     


“인생 별거 없어. 뭐 윤리 그딴 거. 그냥 살다 죽으면 그만이야. 뭐 불교에서는 윤회한다는데 웃기는 소리야. 옛날에 사람이 1억도 안 되었는데 지금 거의 100억이자너. 근데 그 영혼이 윤회할 때마다 뻥튀기했단 말여? 뭐여?”     


뭔가 묘한 논리인데 반박하기 어렵다. 외도하는 것과 윤회의 철학적 논리적 연계성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굳이 반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냥 이 세상 재밌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여. 내가 죽으면 누가 기억해. 그냥 이리 살다 가는 거지. 내가 이 바닥에서 30년 넘게 일해서 50억짜리 빌딩도 사고 100억 매출도 올리고 마누라 먹여 살리고 하면 되었지. 그래도 나는 마누라 안 버려...”     


아 나의 논리는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 다행히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     


“손님,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어디 내려드릴까요?”     


“아 저기 저 사거리에 세워주세요.”     


“저 횡단보도 앞에요?”     


“네네”     


오른쪽을 보니 노래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노래방 가운데 한 곳에서 지금 어떤 여자가 이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2시 20분이다. 오늘밤을 그럼 이곳에서 보낸다는 작정인가 보다. 아내에게는 회사에 볼일 보러 간다고 하고. ‘일’이 끝나면 정말로 회사로 바로 출근하여 사원들을 시켜 식자재 납품업에 몰입하겠지? 손님 말대로 인생 별거 없으니 말이다. 100억 매출을 하는 사장이든 한 달 300백이 안 되는 월급을 받는 택시 기사든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애면글면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이렇게 나의 택시 기사로서하루도 얼추 마감할 시간이 다가온다. 가스 충전소를 목적지로 찍고 달린다. 밤을 밝히는 가로등이 어쩐지 유난히 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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