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Sep 26. 2024
20. 혜담 스님과의 이별
인연법 자체도 무상할 뿐이다.
출생 신고를 해야 하기에 아이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고민이 되었다. 나의 운명을 바꿀 아이라면 모든 것에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14살 이후 겪은 그 부조리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작명에는 자신이 없었다. 시중의 작명가도 믿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혜담 스님을 찾기로 했다. 아이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안 본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일단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좀 달랐다.
“여보세요. 혜담 스님 전화 아닌가요?”
“아닙니다. 스님은 더 이상 여기 안 계세요.”
“여기가 해운 선원 아닌가요?”
“선원도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전화가 전에 많이 왔는데. 한 동안 뜸하더니 또 오네요.”
“스님이 어디 다른 데 가셨나요? 다른 데서 일 하시나요?”
“아뇨. 이제 치료를 더 이상 안 하십니다. 혹시 전현주 님이신가요?”
“네. 맞아요.”
“혜담 스님이 떠나시면서 1년쯤 지나서 전현주 님의 연락이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소를 알려드리라고도 하셨고요.”
역시 스님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물었다.
“주소가 어디인가요?”
“그것이 애매한 것이요. 지리산 토굴입니다. 그 근처 주소를 알려드릴 것이니 그곳에 가서 알아서 찾아보셔야 합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서 어리석은 줄 알면서 질문을 했다.
“혹시 스님이 휴대전화는 없나요?”
“세속과 인연을 완전히 끊고 용맹정진하시러 가신 분입니다. 그런 것을 들고 가실 리가 없습니다. 떠나실 때 바랑에 죽비와 발우만 넣고 가셨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주소 알려주세요.”
“직전 마을 근처 무착대에서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보물 찾기도 아니고 이렇게 말해서 어찌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반드시 찾아서 내 아기를 보여주고 이름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100일을 막 넘긴 아이를 데리고 갈 결심을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나는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지리를 전혀 모르는 길치 아닌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남편도 육아 휴직 중이었으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여겼다.
“여보 아이 이름을 지어야 하는 데 지리산에 용한 도사가 있다네. 그분을 직접 만나 뵙고 도움을 받고 싶어.”
“그래. 알았어. 가지 뭐.”
남편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부탁하는 것을 단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나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였다, 그런 남편을 둔 나를 다른 여자들은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무한한 수용성이 답답했다. 남자가 줏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라고 할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여자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고 반드시 좋은 남편은 아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가면서 아내를 이끄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남편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그런 남편은 늘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는 일 아닌가? 어차피 고칠 수 없는 본성인데. 분명히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런 점에서 불만이 늘 병존했다. 어떤 사람은 배부른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이 마음속 불만은 없앨 수가 없었다.
날이 맑았다. 봄 날씨 답지 않았다. 바람이 강했지만 공기가 이미 훈기를 담고 있어서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경치는 이제 봄을 지나 초여름 신록의 기미까지 보였다. 온난화라는 기후 변화로 지구가 아파한다는 소식을 접한 지 오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한여름 더위를 떠올리면 벌써 숨이 막히는 일이었지만, 그건 그때 가서 또 대처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하루 종일 틀어 놓는 에어컨으로 늘 집은 청량해지기 마련이니 무슨 걱정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유아용 카시트에 묶여 있던 둘째 아이를 풀어서 내 품에 안아 보았다. 첫째 딸은 운전석 옆에 앉아서 계속 아빠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벌써 3살... 나는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면 금방 피곤해지는 체질인데 저 아이는 도대체 저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분명히 내가 낳은 아이인 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편은 그런 아이의 수다를 다 받아준다. 나 같으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짜증이 날 법도 한 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와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저 두 사람도 전생의 인연으로 저러는 것이리라. 다 운명이다.
어느 사이 지리산 자락에 도착했다.
직전마을은 사실 피아골로 더 유명한 곳이다. 나는 처음에 피아골이 사람의 피를 연상시키는 지명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조사해 보니 피는 사람의 피가 아니라 ‘기장’의 순수 한글이었다. 과거 가난한 시절, 이 동네 근처의 연곡사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기장을 심어 먹었다는 전설에서 기원한 지명이라고 했다. 수행하는 데 식욕, 성욕, 수면욕을 기피하는 법이니 영양가가 거의 없는 기장을 밥 삼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데 갑자기 배가 몹시 고파진다. 나는 어차피 수행승이 아니니 먹어야 했다. 남편은 식탐이 있는 내 모습이 예뻐서 결혼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먹는 데는 죄가 없는 법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천왕봉 산장에서 간단히 밥을 먹기로 했다. 이른바 피아골 처녀 이장으로 한때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던 ‘미선 씨’가 운영한다는 유명한 집이다.
내가 좋아하는 산채비빔밥을 먼저 시키고 고기를 좋아하는 큰딸을 위해서는 닭볶음탕을 해물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서는 메기탕과 은어회를 주문했다. 밥을 먹고 나서 막상 무착대를 찾아 올라가려니 아뜩했다. 더구나 두 아이를 안고 가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그러나 여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아이 둘을 맡겨 두고 나 혼자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동의했다.
그런데 길도 제대로 모를 산속을 헤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행히 피아골 종주하는 등산팀을 만나서 그들을 따라갔다. 얼마나 따라갔을까?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한다.
“여기가 무착대예요.”
잉?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나무들이 빽빽하고 잡초가 무성한 사이에 바위가 노출된 것뿐이다.
“저게 무착대 샘물이에요.”
다른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차마 샘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옹달샘이 보였다. 아니 옹달샘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전에 어떤 스님이 토굴을 짓고 수행했다는 말도 전해진다는데 이런 곳에서 어찌 거룩한 수행을 한다는 말인가? 갑자기 정신이 아뜩해진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 나와 내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등산팀은 나를 두고 떠났다. 이제 나 혼자 찾아보아야 한다. 아직 오후 3시인데 벌써 산이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서둘러야 했다.
산속을 여자 혼자 헤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절절히 경험했다. 정신 차려 보니 조금 전에 지난 길을 또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땀은 비 오듯 하고 눈앞이 어질 해졌다. 시간을 보니 벌써 5시다. 어둑해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아직 멀었어?”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여보. 아무래도 나 길을 잃은 거 같아. 나 좀 데리러 와.”
“그래 알았어. 기다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서 손전등 불빛 같은 것이 몇 개 보인다. 남편이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나를 찾아왔다. 두 아이를 안고 업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여보... 미안해...”
“아냐 괜찮아. 이제 내려가자. 이 분이 도와주셔서 잘 찾았어.”
산장까지 내려왔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다시 허기가 몰려왔다. 일단 저녁을 먹었다. 그러나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산장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그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혜담 스님을 찾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 준비를 다 하고 산장을 나서는 데 전화가 왔다. 해운 선사의 그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급한 일이라 전화를 드렸습니다. 혜담 스님이 보살님을 찾는다고 하네요. 법계사 근처에 있는 암자에 계십니다. 법계사 삼층 석탑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토굴을 판 암자가 있습니다. ”
“그런데 급한 일이 뭐지요?”
“아마 입적 준비하시는 것 같아요.”
입적? 그렇다면 죽는다는 말인가? 맘이 급해졌다. 남편을 재촉하여 법계사를 찾았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4km 정도나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또 남편과 아이를 두고 혼자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는 길이 좋아 힘이 덜 들었지만 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만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침내 법계사에 도착했다. 석탑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가다 보니 바위 앞에 절반쯤 튀어나온 기와지붕이 보였다.
구멍이 숭숭 난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러다가 좀 지나니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당연히 혜담 스님이려니 하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스님.”
그런데 대답이 없다.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래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순간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이미 입적하신 것인가? 그런데 그 형체가 순간 꿈틀 한다. 방안이 점점 환해지더니 얼굴 모습도 분간이 된다. 그런데 얼굴을 자세히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이 아니라 거의 해골 수준이었다. 그 잘 생긴 얼굴은 간데 없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할 말을 잃어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익숙한 혜담 스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살님. 이제 소승과 작별할 시간입니다.”
낮고 힘이 없었지만 똑똑하게 들렸다.
예상을 하고 왔지만 그 말을 직접 들으니 가슴이 철렁해졌다.
이별...
아버지, 어머니와 영원히 이별한 이후 내 맘을 온통 가져간 또 한 사람이 피안의 세계로 간다. 그리고 이번 이별은 너무나 특별하다. 나의 전생의 인연, 그것도 아주 깊은 인연과 이별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 맘이 이렇게 쓰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이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 어디 아프세요?”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만 했다. 혜담 스님이 웃으면서 그윽한 목소리로 답한다.
“다 업보요 인연입니다. 이제 구름이 흩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나도 잘 아는 말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회자정리 아닌가? 그러나 현실로 다가온 이별은 문자 그대로 살을 뜯기는 듯 아팠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나의 고통을 해결해주고자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존재 아닌가? 비록 전생이지만 말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나를 살리고자 죽음을 기꺼이 그러안을 정도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존재다. 부모보다 남편보다 그리고 자식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몸서리가 쳐지고 통곡이 흘러나왔다.
“안 돼요... 안 돼요...”
나도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들어도 이상한 괴성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다.
“”보살님, 아니 어머님. 이승에서 우리는 딱 세 번 만났습니다. 이제 저의 저승길 마지막 노잣돈을 마련하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승의 인연을 다하고 나면 제 시신을 화장하는 일을 주선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비용은 지난 두 차례 내신 것에 300을 더해 900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900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의 유골은 수습하지 말고 그냥 받아서 이 암자 앞에 묻어 주십시오. 그래야 악연이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명심하세요. 보살님은 이 세상에서 악을 몰아내야 하는 특별한 임무를 띠고 나오셨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소승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셔야 합니다. 악귀들의 많은 유혹과 방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소승의 희생으로도 다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일은 보살님이 직접 깨닫고 수행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14살부터 이어져온 악업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악귀들을 차례로 무찌르고 여여한 본성을 얻고 나시면 비로소 이 세상에 다녀간 이유를 깨닫게 되고 보살님 본연의 길을 가시게 될 것입니다. “
흐느끼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다 귀담아 들었다. 아직 정확히는 몰랐지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미 막연히 느껴온 것이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 뿐이다.
그 아야기를 마친 혜담 스님은 더 이상 미동이 없다. 코에 귀를 대보니 숨소리도 안 들린다. 앉아서 입적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는 그런 가슴을 후벼 파는 쓸쓸함이 몰려 왔다. 늦가을 밤에 부는 비바람도 이보다 서럽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이 세상에 살면서 발에 뭍혀온 많은 탐진치의 먼지를 툭툭 털고 열반의 세계로 간 혜담 스님은 평안할 것 아닌가?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이제 부처님의 세계로 가버린 혜담 스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할 밖에. 그러나 혜담 스님의 부탁을 생각하면 이렇게 그저 감상에만 빠질 시간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