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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의붓아버지 요셉?

예수의 지상의 친부는 알 수 없다

by Francis Lee

신약성경의 시작인 <마태복음>에는 위에서 살펴본 예수의 족보가 나온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중시하였기에 유대인 공동체인 마태 공동체에서 복음을 족보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족보는 <루카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와 매우 다르다. 이 차이에 대한 합리적 설명은 아직도 안 나오고 있다. 혹자는 <마태복음>은 예수의 아버지 족보이고 <루카복음>은 예수의 어머니 족보라고 주장하지만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그저 왜 다른지를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요셉에 관한 이야기는 복음서에서 매우 간결하게 나오기 때문에 명확한 족보를 따져가면서 예수의 혈통을 확인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실 요셉은 예수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도 아니니 예수가 굳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첫 권의 제1장에 예수의 족보라는 제목으로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긴 명단을 나열한 것은 오로지 유대인들의 남성중심주의적 족보를 강조하는 풍습에 충실하기 위한 것일 뿐으로 보인다. 더구나 <마태복음>과 달리 <루카복음>은 아예 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가 77대손임을 강조한 데 비하여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41대손임을 보여 주고 있다. 원래 42대손이라고 해야 하는데 저자의 실수로 한 사람의 이름을 빼먹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루카복음>에서는 아브라함이 신을 포함하여 22대손으로 나오는데 산술적으로 볼 때 <마태복음>과 상당한 숫자의 차이가 난다. 이러한 모순을 초대교회에서 인지하였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서로 타협을 보고 족보를 정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각 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적극적 교류 없이 초대 예수 공동체가 남긴 문서를 취합하여 하나의 성경으로 꾸미기 시작한 것이 이러한 개별 공동체의 와해 이후 한참 지난 시기라서 더 이상 내용에 대하여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듯하다.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문서를 그 어떤 자가 무슨 권위로 편집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늘날 볼 수 있듯이 많은 불합리하고 심지어 부도덕한 내용이 담긴 것이라도 수정하지 않고 모두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성경>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책에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또한 예수와 요셉의 관계, 그리고 요셉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도 전혀 안 나온다. 그래서 사실 요셉에 관하여 아는 데에 <성경>은 거의 소용이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에 관한 다른 신뢰할 만한 문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매우 부족하지만, 다시 <성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문서를 2차 자료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매우 부족하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교회 안에서 찬밥 신세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단 하나의 구절로 흔히 요셉이 목수라고 알려져 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마태 13, 54-56)

54절의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의 그리스 원문은 다음과 같다.

οὐχ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τοῦ τέκτονος υἱός


여기에 나오는 ‘테크토노스’(τέκτονος)는 그리스어로 ‘기술자’라는 의미의 ‘테크톤’(τέκτων)의 2격 단수 명사이다. 그런데 많은 성경에서 이를 단순히 ‘목수’로 번역한 데서 오해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손을 사용하여 나무, 돌, 쇠를 다루는 사람들을 모두 τέκτων이라고 하였다. 심지어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도 당시에 테크톤으로 불렀다. 그러나 요셉은 전문 목수라기보다는 잡역부라고 할 수 있겠다. 동네에서 뭐든 수리가 필요한 일이면 달려가 해결해 주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매우 작은 마을인 나자렛에서 쓸모가 많았던 사람이었을 듯하다. 그러나 예수가 공생활을 하던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를 찾은 이야기는 있어도 아버지 요셉이 예수를 찾은 내용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교부인 유스티누스(Iustinus Martyr, 100~165)가 그 직업을 목수라고 단정한 이후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의 직업이 목수였다고 확정하여 해석해 왔다. 그런데 예수가 목수 일을 했다는 내용은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위에서 말한 대로 <마태복음>의 단 한 구절(13장 55절)에서 나온 이야기로 추정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예수를 지칭하며 비웃는 어조로 ‘저 사람은 ‘기술자’(τέκτων)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에서 예수도 요셉과 비슷한 기술자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 당시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는 일이 흔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수가 목수로 일했다는 묘사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예수에 관한 영화나 글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목수 일에 열심인 예수의 모습이 나온다. 선입견과 관행의 힘이 이리 무섭다. 예수 아버지의 직업에 관한 구절은 이것이 유일함에도 그러하다. 이 문장 하나로 예수의 아버지와 예수의 직업이 목수로 특정된 것이 기독교의 역사이다. 그것도 그 당시 지정학적으로 보잘것없는 나자렛이라는 갈릴리호숫가 마을의 잡역부인 일꾼으로 단정해 버렸다.

어찌 되었든 성경에 따르면 요셉은 커다란 호숫가 마을인 갈릴리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갈릴리는 오늘날에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을이다. 다만 고고학적 유물로 판단해 갈릴리로 추정되는 지역을 조사한 결과 인구가 400명 정도인 시골 마을이었을 것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런 작은 마을에서 목수만 해서는 생계유지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니 요셉이나 예수나 닥치는 대로 목수도 하고 대장장이도 했을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주류 신학자들과 교회가 요셉을 목수도 단정해 버리고 대중도 그리 받아들인 이상 예수와 요셉을 목수로 규정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원래 종교라는 것이 그 종교 집단의 지도자들의 주장을 도그마로 규정해 버리면 이에 맞설 때 분열을 피할 방법은 없다. 기독교 역사는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삼은 권력 투쟁으로 끊임없이 분열해온 증거 자체이다. 그러면서 늘 상대방을 단죄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는 종교의 본질이고,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기독교만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직업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요셉이라는 인물 자체의 정체이다. 성경에서 그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추론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방정교의 경우 위경인 야고보복음을 근거로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을 한 사람으로 첫 번째 부인과 이미 자식이 여러 명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예수의 형제자매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히에로니모스(Εὐσέβιος Σωφρόνιος Ἱερώνυμος, 342-347)의 주장에 힘입어 요셉도 마리아처럼 평생 동정을 지킨 사람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의 형제자매가 친형제가 아닌 친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의 예수와의 혈연관계도 성경에서는 예수의 유년기에 한정해서 이야기되고 있다. 정확히는 예수가 12세 될 무렵이다. 그 이후의 요셉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요셉에 대한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전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독교 전통에서 분명한 것은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당시 유대인들은 약 1년 정도의 약혼 기간을 거쳐 혼인하고 그 기간에 양쪽 집안에서 신랑의 지참금을 놓고 흥정을 벌였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 상태에 있는 동안 마리아가 이미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을 했고 이를 눈치챈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려 했으나 꿈에 계시한 대로 파혼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나중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여기게 된 것으로 본다.

다시 정리해 보면 신약성경에서는 예수의 족보가 두 개가 나오지만 서로 맞지 않는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요셉이 다윗 가문 사람임을 강조하여 예수가 왕족의 피를 받은 존재임을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요셉의 생물학적 아들이 아니므로 사실 이 왕족의 혈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마태복음>은 이 족보로 예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래야 가부장제도 사회인 유대 문화권에서 권위가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이라는 호칭은 혈통주의가 중요한 유대 사회에서 메시아가 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난 신의 아들이다. 그것도 신이 예수를 통하여 인간이 되었으니 예수가 곧 신이다. 그런데 막상 역사적 현실에서는 요셉의 아들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마리아의 아들이다. 이는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는 문제였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 이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였다.

이른바 <야고보복음>을 동방정교에서 사용한 것은 이 난제를 합리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여러 명 둔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을 한 것으로 설정하면 예수의 탄생과 형제자매와 얽힌 모든 문제가 간단히 풀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에는 없었던 마리아 자신의 동정에 관한 교리가 5세기경에 수립되면서 다시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단순히 마리아가 약혼 기간에 예수를 낳은 것과 더불어 요셉과 마리아가 평생 오누이로 살면서 동정을 지켰다는 내용이 추가된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6세기경에 나타난 책이 바로 <목수 요셉 이야기>(Historia Josephi Fabri Lignari) 이다. 이 책에서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이미 아들 4명과 딸 2명을 둔 요셉이 90살이 되어 12살의 마리아와 약혼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예수가 탄생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평생 동정을 지킨 것으로 이야기된다. 사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부터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학자가 요셉이 나이가 많은 홀아비였다가 마리아와 혼인하고 나서 평생 동정 부부로 살았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에 관한 너무나 빈약한 성경의 내용으로는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보니 결국 이런 전설까지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나중에 역사적 사실을 조작하는 책들은 중세에 무수히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콘스탄틴 대제가 세속의 인간을 다룰 권리를 황제에게 인간의 영혼을 다룰 권리를 교황에게 주었다는 문서가 조작된 것도 중세이다.


이런 경우 차라리 성경에 충실하여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지나친 전설을 조작하는 것을 막는 길이다. 실제로 요셉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자들의 궁금증을 어떻게든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설에 더해 또 다른 전설을 만드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앞의 장에서 본 대로 예수를 낳은 마리아에 대한 사실도 성경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데 하물며 실질적으로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요셉에 대한 공경은 마리아에 비하여 매우 늦게 시작하였다. 신의 아들인 예수에게 비록 양부라 하여도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는 설정은 교리상으로 매우 껄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9세기가 되어서야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 ‘주님의 후견인’(Nutritor Domini)으로서 경배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도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마리아는 혼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여 그 당시 유대 풍습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는 12살 곧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을 돌볼 후견인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세운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가 아니라 후견인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후 요셉을 성인으로 여기며 경배하는 추세가 강화되면서 19세기에는 요셉이 교회의 수호성인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러나 요셉의 역할은 언제나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유아기의 예수를 돌보는 것에 머문다. 성인이 된 예수와는 그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미술작품에 나오는 요셉은 언제나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존재로만 나온다. 성인이 된 예수, 더 나아가 부활한 예수와 요셉은 전혀 무관한 존재인 셈이다.

부활 이후의 예수는 고사하고 12세 이후의 예수와 대화를 나누는 요셉의 모습조차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과연 요셉이 얼마나 더 살았는지, 마리아와 관계를 계속 유지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제자에게 마리아를 돌보아 주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추론해 보면 요셉이 더 이상 마리아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대로 마리아는 요한의 어머니로 묘사되어 더 이상 요셉 집안의 사람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과연 요셉이 마리아와 정식 혼인을 했는지, 자식은 있었는지, 목수였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성경만으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만으로는 예수의 지상 생활을 둘러싼 여러 의문점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규범이 되는 ‘정경’(κανων) 이외의 출처가 불분명한 외경(ἀπόκρυφος)과 교리에 어긋나는 ‘위경’(pseudepigrapha, ψευδής + ἐπιγραφή)을 찾게 된다.


사실 기독교만이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불교에도 위경이 많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그러한 문서를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세속의 권력과의 역동적 관계와 더불어 민간신앙의 발전 과정이 매우 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에 예수 주변에 관한 내용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수의 지상에서의 부모만이 아니라 그의 친척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다음 장부터 이를 더 자세히 다루어 보자. 먼저 그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부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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