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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Oct 24. 2023

글은 얼마나 힘이 센가

마음을 움직이는 짧은 문장의 힘

그럴싸한 직업을 갖기 위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생각해낸 게 카피라이터였다. 

글만 쓸 줄 알면 되는 줄 알았다. (아 뭐, 쉽네) 

이런 정신머리로 혼자 공부하다 잘 안 되어 거금 들여 전문 과정을 1년이나(!) 배우기도 했다. 


그룹 스터디를 하고 실습을 하고 공모전에 나가고 나름 열심히 이런저런 문을 두드렸으나 잘 되지 않았다. 

실력도 스펙도 정보도 모자란 탓이었다. 


무엇보다 착각이 컸다. 

지금 와선 그 직업을 갖지 못한 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일을 못하고 내가 하게 된 일이 그 일보다 훨씬 나았다는 걸 지금은 알기 때문에.  


물론 여우의 신포도 같은 결과론적 주장이다; 

키가 안 닿는 저 포도송이는 시어빠졌을 거야. 먹다가 퉤 하고 뱉어낼 걸. 뭐 그런 거. 


각설하고, 그렇더라도 글, 문장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안다. 

세태를 한 움큼 싹둑 베어낸 몇 줄, 마음을 툭 건드리는 문장들은 무엇이든 죽이고 살리며 때로 세상을 흔들기도 한다. 


유명한 광고 카피, 신박한 비유, 멋진 연설에 등장하는 감동적 문장이 많지만 때로는 우연히 일상에서 마주치는 글귀에 마음을 확 빼앗길 때가 있다.


- 카페 여자 화장실 안내문; 

"여자에게 환상을 가진 남자 알바가 청소합니다 휴지는 휴지통에"


- 필라테스숍 배너 문구; 

"어떤 옷이든 잘 어울리는 그녀는, 일단 말랐습니다"


- 상가 엘리베이터에 붙은 주짓수 학원 전단지; 

"운동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건 체육관에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방금 그것을 해내셨습니다.  지금부터는 쉬운 걸 해보겠습니다. 라텔 주짓수 5층에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읽으면 어떤 사람이 썼나 궁금해진다. 

마음의 허술한 부분을 팍 뚫고 침입하는 날카로운 말들. 삶에, 관계에, 비즈니스에 통찰력이 중요하다 한다면, 정말 이런 문장을 쓴 사람들은 그걸 아는 사람이겠지.


상가 엘베에서 발견한 벽보에도 탁월한 통찰이 빛난다.


#카피의힘 #문장 #생활의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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