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일이란 항상 진행형이다. 업무는 도무지 마감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하루 세 시간이 넘는다는 통계를 보았다. 특히 20대는 네 시간 이상이라고 한다. 끔찍하다. 매일같이 하루 세 시간이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손아귀에 잡히는 이 조그만 액정에 세계의 모든 것이 담길 거라는 상상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풍속이 변해도 이리 빨리 변할 줄은 몰랐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거실과 교실에서, 식당과 카페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졸거나 대화하는 대신 일제히 각자의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모든 세계가 거기서 실황 중이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스마트폰 벨소리에 깨어 스마트폰과 함께 잠드는 하루에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수면부족이나 조기 노안 증상이 아니다. 진짜 무서운 건 이른바 ‘팝콘 브레인 Popcorn Brain’이라고 불리는 현실 무감각 증상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이 마치 팝콘이 튀듯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우리의 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평온하고 진지한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점점 더 큰 자극에 이끌린다. 가만히 있는 것, 고요함은 불안하다. 이런 현상이 만들어낼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사뭇 두렵게 느껴진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언제나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어느새 굳어버린 습관. 운전 중 신호에 걸리면 곧바로 오른손 엄지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한다. 이럴 때 지문으로 풀리는 잠금화면이란 얼마나 편리한지. 새로운 메시지를 즉각 확인하고 보다만 뉴스를 마저 읽는다. SNS의 피드를 훑으며 최신의 ‘남의 생각, 남의 생활’을 인식한다. 집에서도 잠시를 가만있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열어보고 PC 마우스를 누르거나 TV 앞에라도 앉는다.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행렬에서 낙오될 수 없다는 필사의 몸부림 같다.
농사짓는 아버지가 어느 날 말씀하셨다. “기계도 좋아지고 농약도 좋아졌는데 왜 예전같이 산에 한 번 갈 짬이 없는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나도 생각했다. ‘인터넷도 좋아지고 네트워크도 빨라지고 업무를 돕는 각종 첨단 기기가 생겨났는데 왜 일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 걸까.’ 검색과 조사와 문서작성과 그래픽을 돕는 컴퓨터와 프로그램들. 빠르고 정확한 전송을 담당하는 네트워크 시스템과 퀵서비스. 대행사들과 주문배달 서비스. 터치 하나로 가능한 만능의 애플리케이션들. 이들 덕분에 우리는 과연 더 창조적인 일, 더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마감’이라는 말이 익숙한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다. 사전에 의하면 마감은 ‘하던 일을 머물러서 끝냄’ 또는 ‘정해진 기한의 끝’을 의미한다. 하루에 저녁이 있듯 일에도 마감이 있었다. ‘있었다’라고 과거완료형으로 쓰는 이유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일이란 항상 진행형이다. 업무는 도무지 마감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매거진 업계에서 일한 나는 한 달을 3등분으로 나누어 살았다. 매월 상순에는 정시 출퇴근하는 보통의 회사원으로, 마감이 있는 중순에는 야근과 밤샘이 예사로운 워커홀릭으로, 마감을 하고 그 달치 노동을 끝낸 하순에는 며칠의 휴식과 함께 재충전을 하는 한량의 시간으로 살았다. 이것은 오래된 추억이다.
지금은 누구도 이렇게 살 수 없다.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을 딱 끝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황이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세상, 일인지 일이 아닌지 구분되지 않는 시대에 마감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세계로 한정한다 해도 일간지가 그렇고 주간지가 그렇고 월간지가 그렇다. 모든 뉴스와 정보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모바일 세상으로 일원화되었다. 그러니 일은 대체 언제 끝나겠는가.
가만히 있어본 적이 언제였나 모르겠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랬다. 나를 가만 놔두질 못했다. 복권이 당첨되면 여행을 가리라는 식의 막연한 소망처럼 나도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하리라 수없이 생각했다. 늘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런 것들이다. 높은 평상에 앉아 골짜기 아래를 조망하는 것. 멀리 산들은 서로 겹쳐 있고 시간은 해거름이면 좋겠지. 또 다른 그림은 여름밤의 여울 상목, 돌돌돌 개울 물소리.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는개 가득한 편백숲…. 여기까지 쓰다가 충동적으로 근처 공원으로 나간다. “지금 할 수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해.” 누가 내 귀에 소리쳤다.
매점 아저씨는 손님도 없이 무료하게 앉아 야구중계를 보고 있다. 벤치에는 말없이 막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두 남자. 챙모자를 쓴 젊은 여자는 커다란 개를 데리고 와서는 잔디밭에 똥을 누인다. 개 주인이 봉지로 거대한 배설물을 치우는 사이 그 너머로 아이들 서넛이 뛰논다. 개가 뛰고 회화나무가 그늘을 흔든다. 자전거 페달 소리, 잔디공원 주위를 뛰는 남녀의 거친 숨소리. 조팝꽃이 시들고 겹벚꽃 분홍이 눈처럼 떨어지는 모습. 나는 이런 것들을 한동안 바라본다. 이런 무의미하고도 소중한 것들을. 지금 보는 것이 살아있는 내 세계의 전부인 듯. 어떤 강박도 없이 나를 가만히 버려두었다. 일이 끝났다. 너무 오랜만이었지만 아주 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