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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Jul 24. 2019

사직서 쓸 무렵

일을 때려치우기 적당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찍 잠에서 깨는지 모르겠구나. 좀 더 긴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일까?"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것은 젊은 사람들은 늦도록 곤하게 잔다는 것뿐이에요."

-어네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이경식 옮김, 문예출판사  


나이 들어 헤밍웨이를 다시 읽었다. 일을 때려치울 무렵이었다. '젊은 사람'처럼 중천의 햇빛을 조명삼아 침대에 누워 읽었다. 몸은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게으른 젊은이인 채. 18년이나 계속해온 일을 그만두는 것을 '때려치운다'라고 표현한 건 난생처음 자발적 사표였기 때문이다. 부서가 통폐합되면서 강제 사표를 써야 했던 때보다 심신이 더욱 고달팠다. 왜냐면 중년 남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자발적이었기 때문에. 자발적이란 건 '선택'의 문제다.


사십 대 남자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당연하다. 생계 때문이다. 어깨에 매달린 서른 개의 발가락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이렇게 쓰자니 갑자기 미안해진다. 실은 그게 아닌데. 피로를 견딜 명분이 필요했을 뿐인데. 직장 근로자라면 알겠지만 때론 일보다 사람이 더 힘들다. 그건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렇다.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해서다. 


지난 몇 해는 아주 늙어버린 시간이었다. 동창들은 만나면 으레 위로 삼아 서글픈 덕담을 나눴다. 젖은 낙엽처럼 살자고. 빳빳한 대빗자루로 쓸어도 쓸려지지 않고 완강히 아스팔트에 매달린 축축한 낙엽이 되자고. 한 잔 걸친 친구들은 슬픈 얼굴로 비장하게 말하곤 지하철 입구로 빨려 들곤 했다. 금융위기, 경기불황, 고용불안... 매일 듣는 뉴스들은 괜히 우리를 겁주려는 공갈 같았다. 우리 잘못이 아닌데 왜 저런 협박을 듣고 있나. 우린 조용히 일했을 뿐인데. 누가 세상을 흩트려 놓았나. 심사가 복받치곤 했지만 늘 그 순간뿐이었다. 언제나 벼랑에 서는 건 우리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맨날 하는 허무한 책임전가. 그건 나쁜 시대 탓이다.


우린 또 그랬다. 언제는 한국 경제가 좋은 적 있었나. 경기는 언제나 나빴는 걸. 88올림픽 전 한창 좋을 때도 티브이 개그 프로에선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코너가 있었잖아. 경기 나쁘단 건 다 개구라, 개뻥이라구. 우린 그렇게 열폭하고 자조했다. 늘 나쁘다고, 언제나 위기라고 속삭이는 검은 세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우린 그때도 지금도 게으름이란 모르고 쎄빠지게 일하지 않았냐고. 위기를 맞은 사십대들은 분개하며 떠들었지만 자리가 파하면 늘 그뿐이었다. 실적과 성과로 말하고 라인을 타야 하는 책상으로 늙은 개처럼 실실 복귀했다. 그런 날이 내게도 계속됐다.


어느 날 몸이 신호를 보냈다. 퇴근길 강변도로에서였다. 심장이 멎어버릴 듯해서 가까스로 갓길에 차를 댔다. 부정맥이었다. 오래 묵은 증상이었고 원인은 분명했다. 과로와 스트레스. 형체는 없지만 실체는 있는. 맘 편히 쉬라는 게 유일한 처방인 의사들의 속 편한 진단명. 수시로 심장이 엇박을 뛰었고 몸을 기진하게 했다. 어느 여름날 아침.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 수술실에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다. 양쪽 사타구니를 찢고 튜브가 정맥으로 들어갔다. 연가시 두 마리가 핏줄을 타고 심장에 들어가 꿈틀대는 게 모니터에 보였다. 이어지는 의사와의 질문과 대답. "이 도끼가 네 도끼냐"는 식의 질문이 한동안 이어진 뒤 의사가 조정실 안에서 마이크로 말했다. "이제, 필요 없는 스폿을 지져 없앨 겁니다." 고통을 견디느라 모르핀을 다섯 대나 맞았다. 


겨울이 왔을 때 이번엔 정신이 속삭였다. 여기까지 잘 버텨왔다고. 내려놓을 때가 아니냐고. 내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남아 있는 채였다. 상사와 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화살을 쏘고 있었다. 가슴이 점점 철옹성이 돼가는 것 같았다. 대책 보고서를 미룬 채 휴가원을 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근 십 년 만이었다. 구름 위에서 결심이 섰다. 이제 더 중요한 걸 하자고.


결심보다 실행은 훨씬 어려웠다. 식구들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언제나 내게 편파적인 아내는 편이 되어준다지만 한창 예민한 사춘기 아들이 목에 걸렸다. 아빠의 직업을 자랑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자발적 실직을 설명할 수 있을까. 계획도 대책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한 명분도 없는데. 힘겨움에 대한 비겁한 도피가 아닐까. 철없는 책임전가는 아닐까. 


봄이 왔고 라일락이 피었다. 조퇴를 하고는 하굣길 아들을 기다렸다.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러 한강에 가자고 했다. 맞바람을 맞으며 하류를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10킬로미터쯤 달려 생태공원 매점에서 물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방부목 데크를 걸어 저무는 갈대밭 사이로 들어섰다. 얕은 물가에서 잉어가 철벅철벅 산란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첫사랑 고백도 아닌데 말 꺼내기가 힘겨웠다. "저기, 아빠가 말야..." 부정맥 증세가 도지는 것 같았다.


"알아요. 아빠." 아들이 말을 받았다. "회사 그만두신다면서요? 엄마한테 들었어요. 엄마가 말하지 말랬는데." 아들은 "히힛" 하고 웃었다. 가슴에 얹힌 돌덩이가 툭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힘들게 일하셨으니까 좀 쉬셔야죠." 그러면서 어른처럼 등을 쓰다듬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런 말 생전 처음 듣는 듯, 낯선 중학생의 옆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한결 홀가분한 기분으로 사직서를 쓰는 대신 아내가 내건 유일한 조건은 이거였다.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을 것. 게으른 젊은이가 되지 말란 거였다. 그 따위, 내겐 아주 쉬운 과제였다. 하루를 길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건 노인뿐만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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