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것

새롭고 위대한 시도가 아니면 모두 가치 없는 것일까?

by 수페세

공용화장실 벽에는 으레 '좋은 글'류의 문장이 붙어 있다.

우리 회사 남자화장실 첫 번째 칸에도 역경 극복형 문장이 눈높이에 맞춰 붙어 있다.

“평행봉 시험이 있었어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잘 되지 않더니
시험 직전에 할 수 있다, 세 번 외치고 시험에 무사통과했답니다.”


볼일 볼 때마다 벽 앞에서 생각이 많다.


다시 읽을 때 이렇게 바꿔 읽어본다.

“평행봉 시험이 있었어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잘 되지 않더니 시험 직전에 할 수 있다, 세 번 외치고 시원하게 떨어졌답니다.”

허무 개그 같지만 이게 내게는 훨씬 현실적이라 위안이 된다.

가끔 유튜브에 공유되는 영웅담은 귀감이 되지만 자기 암시만으로 극복되지 않는 게 보통의 삶이다. 난관 앞에서 주문을 외고 성공할 수 있다면 누구든 그렇게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니 중요한 건, 할 수 있다고 외치는 마법의 주문이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내게도 뼈아픈 기억이 있다.

나는 공으로 하는 모든 스포츠에 열광하지만 근육과 몸의 균형만으로 목표를 성취해야 하는 스포츠를 꺼린다. 체조, 철봉, 평행봉, 역도, 마라톤같이 힘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종목들.

대학 때 교양체육 수업을 들었는데 거대한 이두근을 자랑하던 지도교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이렇게 선언했다. “평행봉과 철봉 중에 택일해서 시험을 보겠다.” 필기는 말고 실기만으로 학점을 주겠다니 무섭고 싫었다. 턱걸이는 하나도 못하는데. 가느다란 팔로 여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시험날 오전,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 올라가 혼자 연습을 해봤다.

‘철봉보다는 평행봉이 낫겠지. 턱걸이 한 번 못하는 것보다 평행봉에서 안간힘 써보는 게 덜 창피할 거야.’

한 번도 성공해본 일 없는 스윙 동작. 웬일인지 세 번이나 성공했고 이대로라면 적어도 창피는 면하겠다 싶어 안도했다. 시험 시간, 자신 있게 평행봉에 올랐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오전의 무리한 연습으로 팔에 힘이 빠진 탓이었다.


피할 수 없는 기로에 섰을 때 반응하는 태도는 두 가지다. 극복하거나 포기하거나.

평행봉과 철봉이 준 시련이 내게는 그랬다. ‘노력과 인내로 극복할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 어쩌겠어.’ 그런 자기 위안. 내겐 자포자기가 쉬웠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포기를 정당화할 조그만 명분이 있다면 늘 그랬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익숙한 방식은 언제나 쉽고 편하다. 그래서 매번 같은 것을 택한다. 그것을 반복한다.

그럴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고 싶다. 삶에 모험은 필요하지 않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도 오늘 같이 안온하기를 기대한다. 그렇더라도 가끔씩 드는 생각이 있다.

이것이 정녕 내가 바라던 것인가? 뭔가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이 힘겨울 때면 으레 해보는 딴생각. 그것을 조금은 뻔뻔하게 꿈이라 명명한다. 언젠가 실현될지도 모를 근사하고 특별한 삶. 시도만 한다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을 듯한 다른 종류의 길.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뉴욕에서 사진가로 비즈니스맨으로 화려하고 분주하게 살던 그는 어느 날 남미 에콰도르에 가서 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도시 생활자의 삶을 정리하고 안데스 산맥 언저리, 산꼭대기에 손수 흙으로 집을 짓고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단순하고 불편한 삶을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들은 그의 이야기가 너무도 특별하여 책을 내기로 하고 편집을 자청했다. 책을 만들며 지구 반대편, 원시나 다름없는 일상을 원고와 사진을 통해 들여다보자니 단순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태도가 부럽고, 한편으로 익숙함을 포기하고 삶을 반전한 용기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때가 오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문장을 만지며 몇 번을 생각해봤다.

아마 그럴 수 없겠지. 소유와 편리를 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내가 잘 안다.


용기란 대체로 도전에 대한 일화에 따라붙는 찬사다.

습관의 벽을 부순 새로운 선택과 용감한 실행은 그 자체로 위대한 일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또 생각해 본다.

새롭고 위대한 시도가 아니면 모두 가치 없는 것일까?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은 무어라 불러야 옳을까?

곁눈질 없이 제 길을 포기하지 않는 꾸준한 정진은 용기가 아닌 어떤 말로 칭송해야 할까?


영화 <킹스맨> 시리즈에는 써먹기 좋은 명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 콜린 퍼스가 날리는 폼 나는 명언은 이렇다. “고귀함은 남보다 뛰어난 데 있지 않다. 진정한 고귀함은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회사 화장실 벽에 옮겨 붙일 만한 근사한 문장이다.


볼일을 보며 글을 다시 읽는다.

‘평행봉 시험이 있었어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잘 되지 않더니,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아하, 이제 알겠다. 시험에 무사통과한 이유는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이 아니라 오랜 연습, 꾸준한 반복이었구나. 그러니 교훈의 방점은 겁을 이겨낸 시도가 아니라 아무리 해도 되지 않던 ‘많은 연습’에 찍어야 옳았다.


현재의 일상이 문득 하찮고 힘겹게 여겨진다면 용기가 필요할 때다.

일상을 벗어던질 용기가 아닌, 이대로의 일상에 몰두할 용기.

익숙한 현재를 사랑할 용기.

그래서 어제보다 나아진 나, 오늘보다 나아질 반전의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 쉽고도 유용한 도전이 아닐까. 익숙한 벽 앞에서 이렇게 생각을 붙잡는다.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