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골프, 그냥 골프

다들 굳이 왜 이 차냐고 묻는데, 사랑은 내 맘이다.

by 수페세

내 골프는 이제 14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지난 7년을 타는 동안 매일이 즐거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거짓말이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안 믿어도 그만이지만 거짓말 아니다.

성능이 좋아서도 흠 잡을 데 없어서도 아니다.


굳이 왜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 정도로 답하겠다. 내 골프라 그렇고, 그냥 골프라 그렇다고.

좋다는데 이유가 있나. 그렇다면 그런 거다.

애착은 좋지만 편파적 집착은 곤란하다고 누가 그러는데 사랑은 내 맘이다. 

처음부터 에어컨이 말썽이었고 중간에 플라이휠이 맛이 갔으며 나중엔 베어링이 나가 페라리 같은 굉음을 내기도 했다.


참혹한 일도 있었다. 아침에 나가보니 어떤 모진 인간이 멀쩡한 차체를 박박 긁어놨고 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그럴 때면 누군가 진지하게 조언한다. 이젠 그만 바꾸란 얘기야.

그럴까 싶다가도 매번 그러지 못했다. 이건 내 골프 같아서. 그러고 보면 집착이 맞기도 하겠다.


그런데 어째서 내 골프냐?

생각해보니 이 차를 살 때 처음으로 '가정적이지 않은'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전에 차를 살 땐 항상 가정적인 차를 골랐다.

아내 말을 들었고 아이를 생각했다. 그게 반듯하고 가정적인 남자의 의무였기 때문에.

그러니 매번 헐렁한 패밀리 세단이나 미니밴을 출퇴근용으로 몰고 다녔다.

지루했지만 어차피 그건 가족차니까 불만 따윈 없었다. 


그러다 골프를 만났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작고 이상하게 생긴 데다 쓸데없이 비쌌다.

그런데 한 번의 시승으로 그만 연애에 빠졌다. 아주 이상하고 긴 여운이었다. 뭔가 꼭 알맞은 기분.

딱 내 것 같은 느낌.

국내 공식 수입되기 시작한 4세대를 시승한 이후 독일에서 열린 5세대 프리미어 시승을 다녀와서는 병이 깊어졌다.

그리고 듀얼 클러치가 장착된 디젤 모델이 들어오자마자 계약을 해버렸다.


해치백이 찬밥이던 시절, 시골에 가면 웬 프라이드냐고 묻던 시절, 승용 디젤이 별종 취급 받던 시절이었다.

몇 년 후 아이슬란드에서의 6세대 시승 그리고 작년 가을, 7세대 이탈리아 시승까지 연달아 참석했다.

어느새 우쭐해선 마치 골프 전문가인 양 행세했다. 


골프는 매번 진화했지만 첫 번째 골프에서부터 3000만 번째 골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게 있다.

알맞은 느낌. 익숙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피트감. 모자람도 없고 위화감도 없는 만족감이 늘 있었다.

이 말은 그냥 '적당하다'는 것관 의미가 다르다. 골프 오너라면 이 말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건 그냥 골프에 관한 얘기다. 그래서 골프는 골프인 거다. 제타도 아니고 파사트도 아닌 그냥 골프. 


차를 사고 보니 골프에 대해 모르는 게 있었다. 

작게 보이는 게 장점인데 타보면 절대 작지 않더라는 것.

2박3일 캠핑 장비를 싣고 네 식구가 강원도를 다녀오기도 했고 식탁과 의자를 나르는 데도 거뜬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골프를 좋아했다. 아하, 이거야말로 진짜 가정적인 차가 아닌가.

실용성뿐이라면 짐차가 낫겠지. 운전재미가 없다면 골프도 아니다.

커브를 돌아나갈 때 발끝에서 엉덩이, 운전대를 감아쥐는 손아귀에 이르기까지 차를 조작하는 기분은...

음. 진실로 애정 어린 오너만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골프의 진정한 가치는 묵어도 '헌차'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질리지 않는 스타일도 한 몫 한다. 구형이 아니라 클래식이 되는 차는 그리 흔치 않다.

올림픽대로에서 7세대를 만나 할아버지 세대가 된 낡은 차를 몰고 나란히 달려도 부럽거나 기죽지 않는 것.

오늘 퇴근길에서도 그랬다.

오일만 잘 갈아주면 목표를 이루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아들에게 골프 물려주기.

다행히 아들도 알고 있는 오래된 결심이고 이제 고작 5년쯤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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