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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Feb 08. 2024

시작의 말, 잘읽잘팔

잘 읽고 잘 팔기 위한 책벌레의 독서일지

읽어야지 하고 쌓아둔 책들이 산더미다. 출판계는 불황의 늪에 빠진 지 오래라는 데 왜 연일 좋은 책이 나오는지. 서점을 둘러보면서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변화의 자락을 발견했다. 각종 매체의 탄생과 더불어 듣는 사람 보다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았나 싶다. 책을 쓰는 일이 소수의 지식인에게 달려있다는 유교적 전통이 허물어지고, 개인과 그의 자유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온 흐름이 있다.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좋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 넘치는 사회를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 문득 어느 철학자가 한국에 ‘피로 사회’라는 이름을 붙였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문제는 남 탓 사회 탓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안에 묻어들어가 있는 내게도 있다. 내가 말하고 쓰고 다닌 것에 비해 얼마나 귀 기울여 듣고 읽었나.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박경리, 박완서, 박노해, 함석헌, 장일순, 허수경 등 옛사람들이 쓴 글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의 문장은 깊이를 헤아릴 길 없이 깊다. 요새 편집 일을 하면서 옛날 책들은 교정교열이 훌륭한데 요즘 책들은 그보다 모양새를 중시한다는 생각을 했다. 맞춤법 검사기도 없던 시절이지만 그래서 더 꼼꼼하게 편집하고 살피고 그랬단다. 반면 요새 나오는 책들은 맞춤법이 영 엉망이다. 표지와 디자인은 화려한데 글은 얕다. 괜찮은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책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책의 내용보다 마케팅이 중요해지면서 편집자의 일은 글을 다루는 영역에서 디자인과 홍보의 영역으로 변화한 것 같다. 챗 GPT까지 포함하면 더욱 글을 쓰고 공유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분명 양이 늘었지만 질도 괜찮을까. 비단 출판계의 일만은 아니겠다. 어렸을 적부터 웹툰을 보아왔다. 강풀 작가의 만화를 볼 적이 있었는데 요새 웹툰 플랫폼은 공작부인이 어쩌고(로판), 나 혼자 만렙 어쩌고(게임물), 눈 떠보니 교주(회귀물) 어쩌구가 장악했다. 보다 보면 재밌긴 하다만 좀 허하다. 아쉽기도 한데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


넓은 관심 분야와 그 다양성의 조예는 분명 우리 시대의 강점이겠지만, 얕은 건 약점일 테다. X축은 긴데, Y축은 짧달까. 연구자로 살면서 가장 괴로운 부분이 내 글이 얕다는 것이 스스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는 습관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된다. 어렸을 적엔 책을 끝까지 읽는 게 당연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이것저것 들춰보기만 하는 것 같다. 옛날 선생님이 사서삼경을 달달 외던 습관이 남아있던 탓인지 서삼독은 기본이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좀 더 멀리 가면, 이반 일리치가 ‘텍스트의 포도밭’이라는 책에서 중세 수도사들이 소리 내 읽는 음독에 대해 썼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다. ‘읽다’는 동사는 눈으로 스캔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함께 소리 내어 음률과 함께 음미하는 차원의 행위였다.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퍽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그 시절 살지도 않았으면서 자꾸 옛사람 이야기 하는 걸 보니 꼰대가 따로 없다 싶다마는, 책에 한정해서는 꼰대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봐도 인스타에 쓴 글보다는 한글로 쓴 글이 깊고, 그전에 타자기나 자필로 쓴 글이 깊어 보인다. 한 교수님께 듣기로 당시에는 논문을 써서 인쇄할 때 한 글자 틀리면 인쇄 조판을 통째로 갈아야 했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쓸 수밖에 없었단다. 살아보지 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중증이라던데, 어쩌겠나.


새로움을 갈망하면서, 오래된 것을 존경해야 한다고 본다. 넓게 읽고(잇고), 깊게 읽어야 한다고 본다. 어렸을 적 별명이 책벌레였을 시기가 있었다. 아버지가 책 다 읽고 독후감까지 써야 용돈을 줬다. 지금 와 보면 그냥 줄 것이지 좀 너무한다 싶지만, 그때의 그 습관이 나를 여기까지 살아오게 한 것 같다. 정보의 홍수에 살면서 가장 복원하고 싶은 습관이다. 얼마 전 살아온 집을 정리하면서 수백 권의 책이 처치곤란으로 쌓여있어서 고민이었다. 한 권 한 권 읽고 선물하고 하려 한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주변에서 아끼는 분들이 내가 읽는 것보다 빨리 책을 써주신다. 쓰는 것만큼 잘 파는 것도 중요해서, 아끼는 곁님들의 글을 잘 읽고 독후감 한 편 답례하고자 한다. 파주출판단지 지혜의 숲에 자주 나가는데 권독사라는 직업이 있었다. 북큐레이터의 우리말이라는데, 매력적이다 싶었다. 이 과정이 좋은 권독의 항해이면 더할 나위 없고. 관계가 쌓이는 글쓰기가 최고라 본다. 요약하자면 잘 읽고 잘 팔자. 더 요약하면 잘읽잘팔. 


2024 앞으로의 권독 목차 

* 순서는 기분과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서평을 선물하고 싶은 책들

1.    박채영, 2024, 이것도 제 삶입니다, 오월의 봄

2.    이소연, 2023,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돌고래 

3.    신승철 외,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기획, 2023, 탈성장을 상상하라, 모시는사람들

4.    한디디, 2024, 커먼즈란 무엇인가, 빨간소금 (*편집자 이나경)

5.    김인건·박상준·손어진, 2024, 모두를 위한 녹색정치, 열매하나

6.    김상봉·서경식 대담집, 2007, 만남, 도서출판 돌배게 (*편집자 김희진)

7.    김병권, 2023, 기후를 위한 경제학, 착한책가게

8.    전현우, 2023,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민음사

9.    장훈교, 2018, 일을 되찾자 –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 나름북스 

10. 주요섭, 2023, 한국 생명운동과 문명전환, 도서출판 풀씨


읽고 쓰고 있는 책들

11. 애나 로웬하웁트 칭, 2023,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

12. 장윤석 외, 2024, 탈성장들(가제), 모시는사람들

13. 장윤석·황준서, 2024, 생태학살이라는 말(가제), 피스북스 

14. 김엘리 외,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기획, 2024,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서해문집

15. 김한민영·황준서 외, 2024, 공존의 조건, 피스모모

16. 신승철, 2021, 묘한 철학, 흐름출판

17. 정태인·이수연, 2013, 협동의 경제학 –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시대의 경제학 원론, 레디앙

18.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지음, 박정훈 옮김, 2016,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

19. 김고은, 2023, 어쩌다 유교걸, 오월의봄

20. 틱낫한, 윤서인 옮김, 2022, 틱낫한 마음, 불광출판사

21. 아미타브 고시, 2021, 김홍옥 역,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2. 이용석, 2021, 병역거부의 질문들 – 군대도, 전쟁도 당연하지 않다, 오월의봄

23. 김지하, 2005, 흰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실천문학사


좋아서 언젠가 서평을 써야지 싶었던 인생책들


24. 존 폴 레더락, 김가연 옮김, 2016, 도덕적 상상력, 글항아리 

25. 마사 C. 누스바움, 이영래 옮김, 동물을 위한 정의, 알레

26. 아마타브 고시, 김홍옥 옮김, 2023, 육두구의 저주, 에코리브르

27. 최은영, 2021, 밝은 밤, 문학동네 

28.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주, 이민아 옮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디플롯

29. 마티아스 슈멜처·안드레아 베터·아론 반신티안, 김현우·이보아, 2023, 미래는 탈성장 –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 나름북스

30.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박정원·엄경용, 2022, 플루리버스, 알렙

31. 조효제, 2022,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32. 이반 일리치, 신수열 옮김, 2018,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사월의 책

33. 허수경, 2019, 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난다

34. 문순홍, 2006, [문순홍 유고전집1] 생태학의 담론, 아르케

35. 루이지노 브루니, 2020, 유철규 외 옮김, 콤무니타스 이코노미, 북돋움coop 

36. 남기업, 2023,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 이상북스

37. 김동춘, 2006, 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돌배게

38. 김우창, 경주환경운동연합 기획, 2022, 원전마을 –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투쟁 이야기, 한티재

39. 전범선·정성헌, 2023,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 노장청기후연대 제안, 산현글방 

40. 이반 일리치, 정영목 옮김, 2016, 텍스트의 포도밭, 현암사

41. 이다예 외, 녹색연합 엮음, 2022,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목수책방

42. 한윤정 엮고 옮김, 2020, 생태문명 선언 – 위기, 희망, 지속가능한 미래, 다른백년 

43. 오구라 기조, 조성환 옮김, 2017,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모시는사람들

44. 이병한, 2016, 반전의 시대, 서해문집  

45. 주디 카나토, 이정규 옮김, 2015, 자비로움, 성바오로출판사

46. 김순남, 2022, 가족을 구성할 권리 –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오월의봄

47. 김종철, 2019,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녹색평론사 

48. 현경, 2013, 미래에서 온 편지 – 내 안의 여신을 발견하는 10가지 방법, 열림원

49. 조세희, 1985, 침묵의 뿌리, 열화당

50. 장일순, 2016,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계속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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