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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 위의 포뇨 Aug 09. 2019

나를 우울하게 하는 글쓰기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울었다. 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직장이라는 공적인 장소가 주는 부담감이 생각보다 커서 어지간한 일로는 눈물을 비추기 쉽지 않다. 하지만 퇴사를 일주일 앞둔 7월 말, 나는 사무실에서 처량하게 울먹거렸다. 고작 한 통의 메일 때문에.


 흔히 '많이 쓸수록 글 실력도 는다'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에디터 활동을 하다 보면 별 다른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글 실력도 늘 거라고, 값비싼 글쓰기 강의보다 실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흔해 빠진 격언을 맹신한 결과는 처참했다. 4개월 동안 무려 33편의 글을 썼지만, 내 글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열심히 써낸 글이 ARTinsight에서도 수상하지 못하자(심지어 조회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나는 글을 재미없게 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CGV에서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7월 단기 영화 에세이 강좌 수강생 모집!"


 시간당 만원 꼴의 저렴한 글쓰기 강좌였지만, 비참하게도 10만 원을 낼 돈이 없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떼고 남자 친구에게 10만 원을 빌렸다. 처음부터 강좌가 나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까지 빌려가며 강좌를 수강한 이유는 처음으로 전문 작가에게 내 글을 첨삭받을 기회 때문이었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에게 내 글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예상대로 강의는 엄청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엄청 지루하지도 않았다. 물론 배울 점이야 많았지만, 강의 네 번 듣는다고 갑자기 헤밍웨이가 될 수는 없었다.



 마지막 글쓰기 과제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여태까지 내가 본 영화를 적어 놓은 노트를 수도 없이 뒤적였다. 나의 문장력과 글을 구성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진중해야 했고 그렇다고 너무 흔하거나 재미없는 영화여서도 안됐다. 고민 끝에 고등학교 때 정말 감명 깊게 본 영화를 골랐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주제를 바꿀까 고민했지만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별 수 없이 그대로 진행했다. 나는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게재할 때 평균적으로 2번 정도 퇴고한다. 하지만 이번 글은 전문 작가에게 내 글쓰기 실력을 평가받는 중요한 기회였다. 나는 제출 전까지 5번을 넘게 퇴고하며, 내 글이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마지막 강의부터 불길한 기운이 내 글을 맴돌았다. 배운 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써 본 줄거리였는데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받았다. 내 글이 스크린에 뜨자마자 여기저기 웃음소리도 터져나왔다. 마음이 쓰라렸지만 총평을 듣고 고쳐나가면 된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혹평을 받은 후부터는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강의 중간에 뛰쳐나가고픈 충동을 겨우겨우 억누르고 떨리는 마음으로 과제 총평이 담긴 메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망의 7월 25일, 나는 온통 빨갛게 칠해진 과제 밑에 첫 한 단락만 남기고 모두 고쳐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답신을 받았다. 기껏해야 단락을 옮기거나 삭제하고, 이런 부분을 추가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피드백을 기대했던 나는 글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라는 말에 길을 잃고 방황했다. 약점도 약점이지만 강점에 대한 칭찬도 미약했다. 줄거리가 어려운 영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본인도 고민이라는 위로만 상처 난 가슴에 반창고를 붙여보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살면서 글로 이런 수준의 혹평을 들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탓에 충격은 배가 됐다. 비문학에는 원래부터 약했다고, 소설만 잘 쓰면 되지 않느냐고 어쭙잖은 자기 합리화를 시도해도, 훌륭한 소설가는 에세이도 훌륭하다는 사실만이 나의 가슴을 두드렸다.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글 실력이 형편없으니 소설가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정은 있는데 재능이 없구나. 우울했다.


 혹평받은 과제를 당장 아트인사이트 기고글로 올려야 해서 힘을 잃은 손가락을 붙잡고 꾸역꾸역 퇴고를 해나갔다. 손글씨가 아닌 컴퓨터로 글을 제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트인사이트 편집자는 눈물에 잔뜩 번져 알아볼 수 없는 글을 받았을 테니. 어쨌거나 약간의 수정을 거친 문제의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와 브런치에 올라갔다. 하지만 그 글은 아트인사이트 웹 메인에도, 카카오톡 브런치 영화채널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나쁜 글이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아트인사이트 웹 메인에도 잘만 오르고, 카카오톡 브런치 추천 글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번 글을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일단 나는 지쳐있었다. 학교 생활에 지쳐서 휴학 신청을 했건만, 미련한 나는 그새를 못 참고 계절학기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원한 분야에서는 명망이 높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계약 기간이 자그마치 1년이었다. 사실 인턴이었기 때문에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워낙 잘해주셔서 직장 스트레스라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그게 문제였을까. 나는 또 지루한 사무실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대외 활동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나는 6개월 동안 주 5일 전일제 근무와 주 2-3개의 글쓰기, 그리고 주 1회 이상 회의를 해야 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퇴사할 때쯤엔 '글쓰기고 나발이고 잠이나 자자'가 내 모토가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독서를 두 달째 미루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그래도 주에 한 권 정도는 꼬박꼬박 읽었는데 피곤한 생활이 지속되자 가장 먼저 독서를 그만뒀다. '많이 쓸수록 실력도 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나는 아트인 사이트 에디터를 시작하기 전보다 글쓰기에 익숙해졌다. 개요를 짜는 시간도 줄어들고, 맞춤법이나 비문을 퇴고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차를 잘 몰기 위해서는 운전 실력뿐만 아니라 주기적인 정비과 기름칠이 필수적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뇌에도 기름칠을 해주어야 한다. 두 달째 기름칠도 안해준 채 뇌만 열심히 굴리니 문장은 삐걱거리고 맞춤법 실수도 잦아졌다. 

 


 그리고 나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ARTinsight에서 수상하지 못한 데다, 지속되는 슬럼프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번 강좌에서 작가님께 인정을 받으면 자신감도 회복하고, 글쓰기를 지속할 좋은 원동력이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실험적인 도입부를 설정하고 가슴을 울릴 만한 명문을 쓰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정작 나조차 이 영화를 통해, 내 경험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강의에서 호평을 받은 글에는 철학 서적에서 볼 법한 심오한 주제나 화려한 글쓰기 기법은 없었지만, 선명한 주제와 진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하나같이 정말 재밌었다. 


   아직까지도 메일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찔하다. 남들 눈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대학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작가가 되기 위한 도전을 더 해야 할지, 아니면 빨리 마음을 접고 취업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열심히 쓴 글이 혹평을 받으니 정말 재능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심란했다. 물론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제로 제출한 글은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었고 퇴고를 거친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언젠가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님께서 유명한 작가의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서문 정도는 30분이면 쓴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집에 가보니 쓰레기통에 쓰다 만 서문이 수북이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유명 작가도 아닌 내가 고작 5번의 퇴고로 어떻게 완벽한 글을 쓸 수 있겠나. 그리고 또 세상엔 혹평을 벗 삼아 재능을 극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위의 일화를 되새기며 겸손하게 문제점을 받아들이고, 뻔뻔하게 글을 계속 써 나가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진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까진 글이 잘 안 나오면 이렇게 외칠 생각이다. 앗, 오늘은 컨디션 난조! 


원문출처: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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