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나 : 나와 주변을 이해하는 법
프랑스에 온지도 4년을 꽉 채웠네요. 그동안 이곳에서 정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데요, 매 순간 느낀 것들이 시차를 두고 피와 살이 되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을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나는 순간의 가치관/꿈/성격의 총합이며, 이는 계속 변한다. 상황이 변하면 생각도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성격이나 꿈도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거에는 분홍색으로 살아왔어도 미래에는 하늘색으로 살 수도 있는 거고, 거기서 인지 부조화를 느낄 필요는 없다. 내가 분홍색이 도드라진 사람이었다면 분홍색 파장이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들과 친했을 거고, 반면 하늘색이 강해지면 파란 계열의 무리와 주로 어울리게 될거다.
우리가 자기 자신 및 타인과 마찰을 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나/상대방 = 그 색깔' 이라고 단정짓기 때문인 것 같다. 본인의 메인 컬러가 변하거나, 상반되어 보이는 두 색깔을 동시에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면에서는 사실 빨강도 원하는데 '빨강을 원하는 내 자신'을 과거의 파랑 잣대에서 바라보며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빨강색이 도드라지는 사람들을 괜히 싫어하게 된다. '과거의 나는 파랑색을 많이 썼었고, 지금도 여전히 쓰고는 있지만 - 이제는 빨강 물감도 써볼래!' -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천차만별 사람들과의 만남이 편해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사실 빨주노초파남보를 다 갖고 있다!
사람마다 기질과 성격, 자라온 환경, 시대, 심리적/재정적 여유, 배우자 및 자녀의 유무, 경험한 것들, 자원, 가치관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는 정답일지라도 내 상황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가 있으며, 내게는 도움이 되었을지라도 상대에게는 아닐 수가 있다. 반면 배울 점이 있는 분들께 먼저 조언을 부탁해서 그걸 적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특히나 가까운 상대일 경우, 나의 좋은점은 닮기를 원한다. 따라서 누군가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그건 내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므로, 그 마음 자체를 귀하게 여기되, 내 맥락에 맞게 취사선택하여 적용하면 된다. 또 만약 누군가에게 조언을 했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의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사실 그 사람을 위한 조언이었다기 보다는 긍정적인 '인정'을 받길 바랐던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다.
내 자신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크게 실망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으며, 주변의 사기에 휘말릴 일도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흑백 논리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크며, 이 면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기꾼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질 수도 있다. 뭐든 극단적인 해석은 경계하는 게 좋다. 가령, 자존감은 상황에 따라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는 거고 계속 변한다. 지나친 에고는 경계해야 겠지만, 적절한 에고는 주변의 다양한 의견으로부터 나를 강단 있게 지켜주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준다. 사람은 100% 독립적이지도, 의존적이지도 않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 경우가 많다.
동시에 모순되는 두 가지를 한 번에 잡기는 어렵다. 가령, 프랑스에 있으면서 한국에도 있을 수는 없다. 사랑을 원하면서 아예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다.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힘듦을 피해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뭐든 자신이 그 순간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를 따라 살면 되고, 이게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둘 필요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대신, 현재 가진 것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사는 게 낫다. 모든 걸 한번에 취할 수는 없다. 중요한 선택은 생각보다 이성이 아닌 직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직감이란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내면의 소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되려 이성보다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
지나친 생각은 실행력을 늦추고 행복을 죽인다. 그래서 생각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를 분리하는 것도 유용하다. 전반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자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조금만 하다가 일이 잘 안풀리면 '시행착오를 거치는 창피하고 오그라드는 내' 꼴을 참기 힘들어서 스스로 그만둬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는, 실행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기 힘들어서 또 그만둬버린다. 이런 측면에서 '똑똑함'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뭐든 잘하고 싶어하고, 성장 욕구가 강하며 객관적으로 성찰할 줄 안다. 그런데 자기 기준에 못미칠 때 다음 단계를 금방 포기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따라서 유익하게 쓰일 수 있도록 알아차리는 게 좋다.
춤을 춘다거나, 수영을 한다거나, 그냥 걷는다거나. 때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준다.
(나 포함) 사람들은 입체적이다. 밖에서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자선가이지만 집에서는 무심한 아빠일 수도 있고, 과거의 여자친구에게는 차가웠던 남자친구가 현 아내한테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가 될 수도 있고, 스마트한 박사 후 연구원이 다른 직원들에게는 외곬수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일 대신 사내 정치로 승진하는 얄미운 옆자리 동료는 누군가에겐 매달 간병비와 생활비를 보내는 소중한 오빠이자 아들일 수 있고,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소시민일 수 있는 거다. 또, 상황에 따라 양가 감정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다. 모든 사람들은 생각보다 별로이지만, 또 생각보다 괜찮다. 그러니 각 사람의 장점 위주로 보는 게 좋다. 세상에는 빌런이 많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빌런이었을/일 수 있다.
베풀면 언젠가 다 복으로 돌아온다. 따뜻한 말, 웃음, 환한 인사, 대가를 바라지 않는 소소한 호의. 마음 상할 만한 상황에서 나와 상대에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하나의 베풂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순간적인 상태다. 그러니 행복을 취미로 만드는 게 낫다. 행복하다는 건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적당히 있어야 행복도 따라오는 것 같다.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 상황에 관계없이 대체로 행복한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성과 지향적인 삶을 살지 않더라. 직업을 생계 수단으로 여기고 퇴근 후, 주말, 휴가 때 사랑하는 가족 및 친구들과 흥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근데 만약 당신이 뭔가에 엄청 초집중 할 때 더 행복하고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 된다.
너무 진지하고 비장한 태도는 적어도 프랑스 생활에는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담백하고 별 것 아닌 일처럼 생각해야 오히려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거절에 담담해지는 게 좋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신경을 끈다. 하나하나 너무 진지하고 비장하게 하면 거절당할 때마다 마음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롱런하기 어렵다. 아무리 유리멘탈러라도 계속해서 거절당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과 부딪히다보면 맷집이 생긴다. 처음에는 서류 30번 탈락하거나 면접 3번 떨어져도 좌절했는데 몇 년 지나면 총 서류 300번 넘게 탈락하고 면접 30번 넘게 탈락해도 무덤덤해진다. 유리멘탈에서 강화유리멘탈정도는 될 수 있음.
버티는게 만능 해결책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꾸준히 할 거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버틸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상당수 해결이 되더라. 그러니까 그냥 무식하게 조금씩 뭐든 쌓아나가면 되는 것 같다. 버틸 때는 찬란한 장기적 비전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앞으로 3일동안 할 것' 정해놓고 무식하게 해나가면 된다. 믿을 수 있는 주변 가족이나 소수 지인들과의 느슨한 연대도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다. 우선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진정으로 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주면,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과 같기를 / 오해하지 않기를 - 바라지 않게 된다. 그러니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다.
때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대비 수익률(ROI) 산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