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Oct 13. 2024

콜드 메시지에서 커피챗까지

Jean과의 대화에서 얻은 인사이트


얼마 전,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대화를 나눈 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렘을 주지만, 낯설고 조금은 두려운 시도일 때도 있다. 이번엔 특히나 더 그랬다. 거의 일면식이 없던 Jean에게 링크드인으로 콜드 메시지를 보내 오프라인 커피챗을 제안했으니까. 2년 전, 우연히 한 모임에서 잠시 뵌 적이 있었던 그분의 커리어 여정이 너무 인상 깊어서 꼭 한번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그때는 내 소심함과 언어 장벽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메시지를 보냈고, 뜻밖에도 Jean은 흔쾌히 응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파리의 한 카페에서 1시간 반 동안 커피를 마시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카페에 가기 미리 Jean에게 던질 맞춤형 질문들을 3페이지에 걸쳐 불어로 정리해 인쇄한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쫙쫙 그어가며 준비했다. 그의 경력은 정말 흥미진진했고 그만큼 배울 점도 많을 것 같았다.




Jean은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후, 풀스택 웹 개발을 배워서 두 번이나 핀테크 스타트업 창업 초기 멤버로 합류한 경험이 있었다. 놀랍게도, 두 회사 모두 현재는 유니콘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나는 그가 어떻게 창업 멤버들과 연락이 닿았는지, 그리고 이런 비전통적인 경로를 지속해서 선택하게 만든 그의 내적 동력에 대해 궁금했다. Jean의 답변은 그의 진정한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을 좋아했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핵심 동력이라는 것이었다.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던 시절, 컨설팅 인턴십을 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명확히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풀스택 웹 개발을 배워 창업 세계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러한 기회는 'Off-market'에서 이루어졌고, 링크드인에 올라오는 공고를 통해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정형화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라 "Polyvalent"라고 칭했다. 여러 역할을 유연하게 소화하면서 비즈니스 각 부서와 소통하고 실질적인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강점이었다고. 첫 번째 회사가 300명을 넘겼을 때, 그는 두 번째 핀테크 회사에 4번째 멤버로 합류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다시 풀타임 잡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나 역시 레이오프 이후 다시 구직 중이었기 때문에 Jean에게 현재 파리에서 올해 유독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직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을 공유했다. 특히 생성형 AI 시대, 외국인으로서 테크 스타트업에서의 도전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Jean은 파리 테크 스타트업 대부분이 아직 인터내셔널하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며, 자신이 일했던 회사에서도 프랑스어가 기본 업무 언어였다고 했다. 특히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는 요즘 PhD 수준의 고급 모델링만이 각광받는 상황이라며, 데이터 엔지니어링이나 분석 쪽으로 포커스를 옮기는 것도 고려해 보라고 조언했다. 비즈니스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데이터 분석은 기술로 대체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타트업보다 대형 회사들이 모델링 업무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을 수 있다고 조언해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큰 회사들은 반복적인 모델링 작업이 많고, 내가 가진 강점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스타트업의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성과를 이끌어낸 비결을 묻자, Jean은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야"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실수는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스타트업은 계속해서 우선순위가 바뀌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Jean은 끝으로, "나비효과" 를 믿는다고 말했다.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근간에 있었다. 그가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구절은 "Overthinking은 좋지 않아"였다.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사람도 만나고, 무엇보다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앞으로도 다양한 곳에 공을 던지고, 나의 상황을 정중히 알리며 실력을 쌓아가면 언젠가 비슷한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링크드인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소극적으로 지원하기 보다는, 먼저 간단한 내 소개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 3~4개, 그리고 구글 밋업 링크와 시간이 되면 10분 정도 바로 온라인 커피 챗을 잡자는 메시지를 간단하게 적어 링크드인 콜드 메시지를 관심 있는 회사의 HR이나 현업 종사자에게 곧바로 보내라고 조언해줬다. 큰 회사에서 일하거나 학생일 때는 잘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해외에서 경력 갭이 생긴채로 재구직하거나 또는 창업을 하려면 내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회사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선제안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겠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새로운 렌즈를 장착한 기분이었다.




거의 일면식도 없던 나에게 흔쾌히 콜드 메시지에 답을 주고, 1시간 넘게 귀중한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눠준 Jean의 배려에 정말 감사했다. 그의 조언을 통해 나의 사고방식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조금 더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비슷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주저하지 않고 베풀겠다고 다짐했다.




Merci beaucoup, Jean!



이전 08화 Pennyla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