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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이 책을 읽는 중에 맞닥트린 제주항공 비행기 참사

by 월 림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제목만으로도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갔다.

책을 구입한 지는 좀 되었는데 그동안 뻔한 내용이려니 미뤄두다가

인문도서 과학도서 읽기에 지쳐 스토리가 있는 글감을 읽고 싶어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사가 갈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총 네 편의 사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안타까움을 준다.

그리고 그 네 편의 사연들은 저마다 우연처럼 연결되어 있다.


뻔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각자의 사연마다 스토리가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 들어 읽었다.

그리고 하필 이 책의 중반을 읽고 있을 무렵 제주항공 비행기 참사가 터졌다.

현실의 사고가 어느덧 책 속 사연과 얽혀 들어

중반 이후부터는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스포주의****

이 글 이후로 책 속 내용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도힌철도 가마쿠라선 상행 열차의 궤도 이탈 사고로 인해 승객 127명 중 68명이 사망한다.

사고 후 두어 달쯤 지났을 때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사고차량이 유령 열차로 떠돌고 있다.

그 열차를 타면 열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유령열차를 타고 싶으면 사고 직전 마지막으로 정차한 니시유이가하마 역으로 가서

그곳의 여자 유령을 만나야 한다."


한마디로 사고 차량이 유령열차가 되어 운행했던 구역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니시유이가하마 역에는 유키호라는 여고생 유령이 머물고 있다.

유키호는 유령 열차와 그 열차를 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매개체가 된다.

유키호에 의하면

사고로 죽은 자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만

유령 열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열차에 타기 위한 네 가지 규칙을 알려준다.


1.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다.

2.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3.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을 통과하기 전에 반드시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4. 죽은 사람을 만나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죽은 자를 살리고자 하차시키려 하면 곧바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첫 번째 사연-

도모코는 약혼자인 네모토를 만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유령 열차에 탑승한다.

가난과 따돌림으로 힘들었던 청소년 시절

네모토는 도모코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들은 하교 후 같이 유기견을 돌보며 수많은 추억을 쌓았고

서로의 고민을 공유했다.

네모토는 사려 깊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도모코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생계를 위해 급하게 이사를 가고 전학을 하게 되면서

둘은 작별인사도 못 한 채 헤어지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둘은 어느새 성인이 되어 다시 재회한다.

당연히 둘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리고,

결혼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네모토는 사고 차량의 희생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도모코는 네모토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열차에서 만난 네모토는 곧 자신이 사고로 죽을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모코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결혼반지를 도모코에게 끼워준다.

열차에서 내린 도모코는 얼마뒤 자신이 네모토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삶의 의지를 다시 찾는다.



-두 번째 사연-

유이치는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 내에서의 그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너무 창피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와는 절연하다시피 살고 있다.

대기업 사원이라는 허울이나마 놓치기 싫어 없는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일을 하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생각보다 실직기간은 길어지고 삶은 점점 궁핍해진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쌀과 반찬으로 겨우 연명하지만

부모님께는 절대 실직 사실을 알릴 수 없다.

그리고.....

열차 사고로 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고향에 돌아간 유이치는

자신이 업신여겼던 아버지가

최고의 기술자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같이 일하던 직원들과 지역 사람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유이치는 유령열차에 오르고 아버지를 만난다.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던 유이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치유를 받는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그에게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일을 하라고, 네가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하라고 당부한다.


유이치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물려받기로 결심한다.



-세 번째 사연-

가즈유키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지고 아버지는 늘 밤늦게야 귀가를 한다.

얼굴의 커다란 반점으로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워하던 엄마와 몇 년 만에 우연히 마주쳤지만

엄마는 어느새 새로운 가정을 꾸몄고 가즈유키를 못 본 척하기까지 한다.

초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가즈유키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동센터를 나서던 가즈유키는 그날따라 더욱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언제나 자기만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아동센터에서 홀로 쓸쓸히 귀가를 해야 했던 가즈유키.

비까지 오니 더 처량한 신세였다.

그때 누군가 커다란 우산을 내밀어 주었다.

동생을 데리러 왔던 중학교 3학년 여학생 다카코였다.

다카코는 가즈유키에게 다정하게 대해 준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어린 가즈유키는 다카코 누나에게 흠뻑 빠져 버린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다카코 누나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가즈유키는 괴롭힌 친구들을 피해 집에서 먼 중학교로 장거리 통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통학하는 기차에서 고등학생이 된 다카코 누나를 다시 보게 된다.

혼자 하는 짝사랑이었고 다카코는 가즈유키가 같은 열차로 통학하는지도 모르고 있지만

그날부터 가즈유키는 다카코에 대한 마음을 점점 키워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카코가 고3 졸업반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고백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어느 날,

열차는 탈선 사고를 당하게 되고 가즈유키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다카코는 죽게 된다.

몇 달이 지나 몸을 회복한 가즈유키는 유령열차에 탑승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한다.

가즈유키의 고백을 들은 다카코 누나는 눈시울이 벌게지며 자신도 가즈유키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었다.

유령열차를 탔던 다음날 다카코 누나를 기리기 위해 사고현장에 갔던 가즈유키는

사고 당시 다카코가 가즈유키를 먼저 살려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즈유키는 자살하려 했던 그때도, 사고가 났을 때도 다카코 누나가 자신을 살렸음을 새삼 깨닫는다.



-네 번째 사연-

기타무라 미사코의 남편은 열차기관사다.

시아버지도 열차 기관사였다.

남편은 자신의 일을 무척 소중히 여겼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무엇보다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안심하며 열차에 탑승하도록 매번 도움을 주는 마음 따듯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몰던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를 냈단다.

미사코는 믿을 수 없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열차 탈선 사고를 내고 현장에서 죽어버렸다.

온갖 비난과 멸시는 오롯이 미사코가 감당해야 했다.

미사코는 결코 남편의 잘못으로 난 사고가 아니라고 믿었지만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집으로는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집 앞에는 매스컴의 카메라가 진을 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슬픔과 괴로움의 나날이 흘러가고 마침내 사고는 기관사의 실수가 아니라

회사의 무리한 철도 운행이 문제였음이 밝혀졌다.

유령 열차의 이야기를 들은 미사코는

자신과 남편이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를 지인에게 맡기고

자신의 남편과 운명을 같이할 결심을 하며 유령 열차에 오른다.

기관실 가까이에 있는 객차에 올라 남편이 열차를 운행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지만 성실한 남편은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열차 운행에 집중했다.

어느덧 열차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역이 되었다.

여기서 내리지 않으면 미사코 역시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미사코는 애초에 내릴 생각이 없었으므로 남편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남편이 기관실 문을 열더니 다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리라고. 어서 내리라고.

제발 살아있어 달라고...

그제야 미사코는 깨달았다.


이 열차의 승객들은 사고가 날 것임을

그리고 그 사고로 자신들이 죽을 운명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제주항공 비행기 사고와 이 소설의 열차 탈선 사고는 닮아 있다.

사고의 원인은 무리한 운행을 강요한 운행사에 있었다.

제주항공의 기장이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며 승객들을 살리고자 했던 영상이 공개 됐다.

비행기에 탑승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남아 있을 안타까운 사연들

마음이 아팠다.

이 소설처럼

다시 살아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다시 못 볼 걸 알더라도

한 번만 더 만나 끝내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만 서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이야 어떻게 못하더라도 그 한 만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항공 승객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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