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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용 김은 Aug 12. 2016

시, 무협지

시인 김은 시

무협지


김은


머리 위로 보라색 중국영화가 책장을 펴고 날아다녔어


수만 권의 이생과 저생을 알고 있다는 나의 무간도

당신의 요술처럼 장풍은 변함없이 구름을 퉁기고

휘날리는 도포는 하늘에 핏빛 다섯 손가락 수를 놓지


폭포물로 잡아내린 천년여우의 머리카락은 도도하고

불로초와 키스한 앵두빛 입술은 팽팽한 힘줄이 가득해

천도복숭아 가득 열린 벼랑의 그 끝에서 나는 이별하고

당신은 너무 향기롭지 않은 마른 바람을 맞지

찢어져도 불러낼 수 없는, 이미 금이 가버린 재생화면


산산이 부서진 검개의 수만 년 전 밤빛이었어

그런 당신을 주워담고 뒤돌아서던 우물 속 달 그림자

쌍검이 실종된 신선나비와 어깨가 실종된 상사구렁이

끈적끈적하게 묻은 당신과 나의 시큼하고 오랜 이야기들


내 백발 위로 방금 항우의 마지막 검이 날아갔어

바위로 만든 책장은 민들레씨앗처럼 하얗게 부풀어오르고 이제

수만 권의 생들이 다시 흩어져 칼부림 소리를 내기 시작하겠지

강에 젖은 눈물로 무간도를 파괴하는 한 권의 책을 들고 서서


마치 구름에 달 가듯.


문예지 [월간문학] 2013


china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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