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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Jun 20. 2021

나만의 달리기 리듬

정수련의 단련일기

매번 기록을 남기는 것은 귀찮기도 하지만 모아진 것을 보면 뿌듯해진다.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달리기입니다.”라고 선뜻 말하지는 못한다. 주말마다 뛰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 햇수로 4년째이지만, 매주 주말 달리지는 못했고, 페이스는 4년째 제자리이다. 꼭 자주 하고, 잘 해야만 취미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달리기는 나름 꾸준히 하고 있음에도 취미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잡다한 다른 취미가 더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날이 좋은 날, 경치 구경할 겸 쉬엄쉬엄 달리기를 하는 편이다. 올해 초에는 너무 춥고, [단련 일기]를 시작하며 주말마다 나름 바빠졌다는 핑계로 많이 달리지 않았다. 이번 단련 일기 주제로 ‘달리는 마음'을 선정하고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싶어 일단 나이키 런 클럽 앱을 켜 보았다. 17년 10월에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달리기 기록을 쭉 저장해두고 있는데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611.4 km이고 연평균 122.3km를 달렸다고 나온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된 2018년에는 47회를 달렸지만, 올해는 곧 상반기가 끝나가는데도 고작 5번 달렸다. 올해는 아마 평균을 한참 밑도는 기록이 될 것 같다. 달릴 때마다 열심히 기록을 하고 있지만, 페이스를 올리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단련 일기]를 쓰다 보니 나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나는 무리하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 여러 가지를 꾸준히 시도하고 나름 열심히 하지만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한국의 경쟁적인 입시 시스템에 질려버려서 그런가.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선생님께 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 같다고 지적을 많이 받았다.) 성인이 되고 좋은 점은, 해야 하는 정도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은 지점까지만 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의 페이스는 지금까지 계속 고만고만하다. 4년간 평균 페이스는 7분 27초.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에는 달리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느렸고, 꽤 많이 달린 지금도 숨이 차지 않는 정도로만 달리다 보니 속도가 딱 7분 27초 정도이다. 꾸준히 달리기를 하는데 페이스가 좀 더 나아져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 조금 더 빨리 달리면 여지없이 발목이나 무릎에 무리가 간다. 그나마 마라톤에 나가면 주위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마지막 골인 지점이 보이면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에, 평소보다는 빨리 달리게 된다. 코로나로 버추얼 마라톤만 열리는 요즘은 마라톤 부스팅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나의 페이스에 맞는 적당한 속도의 음악을 들으면서 뛰면 한층 신이 나서 달릴 수 있다. 초반에는 이적의 ‘Reset’이나 류이치 사카모토의 ‘The land song’ 같이 여러 악기로 클라이맥스를 만드는 음악을 들으며 뛰었다. 7분 27초의 페이스에는 노래 두 곡 정도를 들으면 1km를 달리게 되어 꼭 거리를 확인하지 않아도 1km가 얼마쯤 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어느 날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입문하게 되어 달릴 때 ‘디오니소스'를 들으며 엄청난 희열을 느낀 뒤로는 K-pop도 자주 듣는다. 같은 K-pop이라도 너무 빠르거나 살짝 느려서 내 발걸음과 박자가 맞지 않으면 그만큼의 흥이 나지 않았다. 재작년 핑크 런 마라톤이었나, 여의도 도로를 한강을 따라 달릴 때 방탄의 노래가 연이어 나왔고, 신이 난 발걸음으로 10km 최고 기록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의 달리기 메이트로는 (여자) 아이들의 ‘덤디덤디’와 K/DA로 부른 ‘POP/STARS’를 즐겨 듣는다.)


내 중력을 이기고 발을 떼며 달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중 또 한 가지는 멋진 날씨와 풍경이다. 생각해 보면 달리기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풍경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날씨가 좋은 날 카랑한 바람을 가로지르며 한강 풍경을 달릴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같은 장소를 달리더라도 1, 2주에 한 번 달리기를 하다 보면 할 때마다 풍경이 조금씩 달라져 있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도 조금씩 풍경이 달라지고, 그 풍경 속을 숨이 차게 달리다 보면 그 순간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특히 앙상한 겨울을 지나 조금씩 연두와 초록이 온 풍경을 물들일 때. 4, 5월에는 빛나는 자연 속에서 꽃향기를 맡으며 달릴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달리기를 꽤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라는 것이 학창 시절에는 1, 2, 3등을 매겨야 했고,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 초를 다투는 경쟁적인 운동이라 더 빠르게 잘 해야 한다는 왠지 모를 고정 관념이 있어 이만큼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 보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달리기가 아닌 나만의 속도로, 내 리듬으로 달리는 건 즐기고 있었으니 지금까지도 달리기를 하고 있겠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달리는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다. 이제 6월이면 열대야가 찾아오는 한여름 전 저녁 달리기하기 제일 좋은 시즌이다. 5월에는 세 번 달렸고, 6월에도 주말마다 달려봐야겠다. (이렇게 글까지 써놓으면 달릴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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