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궁금한 민지 Sep 13. 2023

깨달음의 방향

영화 <라라랜드> 2회차 관람 후

중학교 2학년. 자의식이 비대해지던 시절 친구들에게 노트를 돌려가며 자기소개를 채워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항목에는 좋아하는 색깔, 음식, 가수 등을 포함해 꿈이 있었는데요. 뷰티 쪽에 관심이 많았던 7살 동생은 네일 아티스트를, <최유기>를 좋아하던 친구는 만화가를, 패션 컬렉션을 보며 황홀해하던 저는 패션 디자이너를 적었더랬죠. 그로부터 10년 뒤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치곤 꽤나 선명한 꿈입니다. 꿈들은 ‘세상에서 제 한 몫을 해내는 것’, 자아표현과 맞닿아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놀랍게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몇은 그 언저리에 가 있습니다.
 
최근 라이카 시네마에서 <라라랜드>를 다시 보았습니다. 7년 만에 다시 본 영화는 그때와 다른 감상을 안겼습니다. 가정법으로 쓰인 두 연인의 회상곡 ‘Epilogue’가 유난히 애틋했던 과거와 달리 미아의 오디션곡 ‘Audition’에 대한 감흥이 짙었습니다. 배우라는 꿈을 향한 미아의 간절함이 와닿았기보다, 꿈을 향한 불가항력적인 항해를 계속하는 배우 지망생의 어리석음에 공감하는 쪽에 가까웠달까요. 아무튼 영화의 방점은 사랑이 아닌 꿈-일에 찍혔습니다.
 
눈에 들어온 건 미아와 세바스찬의 인정투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누군가는 제 반짝임을 알아봐 주기를 고대하고 있었죠. 그 둘은 각자의 꿈을 내비치는 순간 가까워집니다. 미아가 세바스찬과 마주친 건 그의 자작곡 ‘Mia & Sebastian’s Theme’를 들은 직후였고, 세바스찬은 연기 지망생 미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줍니다. 이어 세바스찬은 재즈가 싫다는 미아를 재즈바에 데려가 투쟁하듯 음악을 주고받는 뮤지션들의 연주를 들려주며 정통 재즈를 지킬 거라고 열의에 차 말하죠.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때, 그들은 서로의 원석 같은 열정을 알아봅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Someone in the crowd’가 되죠.
 




하지만 두 사람을 이어줬던 꿈은 어느 순간 둘을 멀어지게 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합니다. 꿈은 저자신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헌신을 요하거든요.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점차 줄어듭니다. 이쯤 되면 사랑의 슬픈 운명에 대해 곱씹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각자의 화분에 심긴 꿈이라는 씨앗에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준 사랑이었건만, 결국 사랑은 희미해져갑니다. 사랑의 운명은 상대를 지지해주고, 나아가 떠나버릴 뒷모습을 지켜보는 걸까요? 하늘로 비상하는 비행기 뒤엔 언제나 긴 활주로가 있듯 말이죠.
 
누군가는 <라라랜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사랑은 실존하는 행복이라고. 신기루 같은 꿈을 좇다가 곁에 있는 사람을 놓치는 건 어리석다고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어린 시절 이루고 싶은 꿈을 적은 친구들은 허허실실한 이상을 좇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성이 있든 없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이루고픈 꿈은 현재의 나와 동고동락하며 나를 울고 웃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한없이 아득하던 이상은 우리를 최소한 그 중턱에 데려다 놓습니다. 정상에 도착하진 못할지언정, 꿈꾸는 사람은 언젠가 그 등성이에 가 있습니다.
 





언젠가 연인이 물었습니다. 사랑과 일 중 무엇을 고를 거냐고요. 이렇게 답했습니다. 둘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사랑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일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고요. 글쎄, 지금 와서는 또 모르겠습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라라랜드> 세바스찬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라이언 고슬링은 “내가 촬영장에서 최고의 경험을 하는 동안 나의 파트너는 둘째를 임신한 채 첫째를 돌봤고, 암 투병하는 오빠의 곁을 지켰다”고요. 그러면서 “그녀가 없었다면, 이 자리엔 다른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죠.
 
과연 그의 말을 들으니 일=나를 지키는 수단이라고, 사랑=내가 지켜야 하는 대상이라고 하기 어려워집니다. <라라랜드>의 엔딩에 대한 엇갈리는 시선은 어쩌면 인생의 깨달음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요. 그 깨달음에 따라 얻은 결론으로 우린 자신 삶의 방향을 설정할 테죠. 당신에게 사랑은, 일은 무엇인가요?


영화 <라라랜드> 스틸컷


작가의 이전글 봄의 교차로에서 시들어 가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