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연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을 보고
가끔 어떤 것을 보고 탁월함에 감탄하는 대신 그 이면부터 볼 때가 있다. 탁월한 완성품으로서 빛나는 결과물보다도 그를 만든 한 인간의 노고를 먼저 감지하게 되는 결과물은 어떻게 봐야 할까. 비하인드 씬 아닌, 인간의 냄새가 나는 작품 말이다. 그럴 때면 이내 인간적 연민이 들고, 뚫어지게 작품을 쳐다보는 게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작품 너머 사람의 흔적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라면?
황수연의 작업은 착시를 일으킨다. 처음에는 칼날인 줄 알았다. 밤길에 마주친 길고양이 눈빛 마냥 내뿜는 서늘한 빛에서 그랬다. 잘린 종이의 단면을 살펴도 칼날이 아님을 알아채긴 쉽지 않았다. 전시장 안쪽 컨테이너 안에 벽면을 하나씩 채운 작품들은 어떤 것은 물고기의 척추처럼, 어떤 것은 여인의 가슴처럼, 또 어떤 것은 어릴 때 갖고 놀던 기차 선로를 닮아 있었다. 이들은 직관적으로 대상을 분류하려는 뇌의 사고에 부합하지 않았다.
황수연의 작품은 종이로 옮겨간 흑연을 보여준다. 흑연은 대개 연필을 통해 접한다. 연필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고, 심 경도에 따라 HB~6B 등으로 분류된다. 뻑뻑하고 쉽게 무르지 않는 강도부터 무르고 쉽게 쓰여지는 강도로 나뉜다. 종이로 옮겨간 흑연은 자신의 본질인 탄소 화합물인 암석에 가까워진다. 서로 먹고 먹히며 수없이 올라간 흑연은 멀리서 형형한 눈빛을 내뿜는다. 제 눈빛을 획득한 작품 앞에서 나는 위압감을 느낀다. 한편 이것이 종이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 작품이 내뿜는 기운을 다른 시선에서 이해하게 된다.
처음으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상상한다. 작가가 종이에 낱낱이 옮겨야만 했던 연필심들을. 이를 옮기기 위해 그는 얼마만큼의 손놀림을 얼마만큼의 힘을 가해 반복해야 했을까. 칼날의 집합이었던 무기에서 흑연을 종이로 옮긴 작가의 열심(熱心)을 파악하기까지 발생하는 인식의 시차. 예리한 흉기가 주는 서늘함이 곧 한 사람의 끈덕진 집념의 결과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멈칫한다. 자신이 닳고 닳을 때까지 지속한 집념이 그 무엇보다 예리한 검이 되는 모습을 본다.
#안다고도모른다고도못하더라도 #황수연_파스텔총알아름다운손가락들
황수연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
2024.8.21-2024.9.21
G gallery
관람일자: 2024. 9 .5
발행일자: 2024.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