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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 Lee Mar 20. 2022

나의 콤부차 탐방기

차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도대체 니 정체가 뭐니?

최근 마음이 맞는 에디터 두 분과 '모로가도 일단 무언가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이 세 명의 에디터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종이책(출판)을 베이스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해왔고 특히 F&B에 관심이 많아 다수의 요리책을 편집했으며,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같이 지나가는 호기심 중에 어떤 것들은 짧게나마 정리해 기록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시작한 이 프로젝트. 나는 일단 먹고 마시며 경험하며 얻는 이야깃거리들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바로 콤부차. 출판 에디터의 업무 중 하나가 해외의 자료들을 두루 살펴보고 기획거리를 찾는 일이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어느샌가 'Kombucha'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니 얼핏 발효된 과일 탄산음료처럼 보이긴 하는데, 막상 자료를 찾아보니 차도 아니고 술도 아니라니 대체 무슨 맛의 음료인가 싶어서 팬데믹 전 해외에 갈 일이 있으면 콤부차를 먹어볼 기회만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신기하게도 내가 '콤부차'라는 단어를 자료에서 자주 발견하게 된 시점은 '내추럴 와인'이 급부상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얘기지만 콤부차와 내추럴 펫낫은 풍미 면에서 다소 비슷한 느낌이 있다) 자고로 내추럴 와인이란 산화된 시큼한 풍미와 가벼운 바디, 그 쿰쿰한 발효 향이 매력 포인트가 아닌가. 내추럴 와인에 대한 선호도와 콤부차의 맛에 뭔가 연결점이 있는 것 같다는 심증만 가지고 있던 차에 어느 여름날의 도쿄 여행에서 마침내 그렇게 찾아다니던 콤부차를 만났다.


새콤달콤하면서 탄산이 주는 청량감이 매력적인 다양한 콤부차. ⓒ The Spruce / S&C Design Studio


내가 콤부차를 처음 발견한 곳은 유기농 식료품과 델리를 다루는 어느 가게였는데, 그곳의 테이크아웃 음료 메뉴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콤부차의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적혀 있었다. 무더운 도쿄의 여름날, 차가운 얼음컵에 담겨져 나온 콤부차의 맛은 예상 외로 굉장히 익숙한 맛이었는데, 그러니까... 집집마다 한 병씩은 있는 (매실청을 필두로 한) 과일 효소액의 그 맛. 집에서 만든 과일 효소액에 식초 조금, 탄산수를 넣어 섞어 마시면 이런 맛일까 싶었던 그런 맛이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내추럴 와인을 페어링하는 레스토랑에 갔더니, 논알코올 페어링 메뉴에 적힌 음료가 대부분 콤부차였다. 소믈리에에게 물어보니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해 각각의 음식에 어울리는 풍미와 바디를 가진 콤부차를 준비해둔다고 했다. 몇 잔을 마셔보니 과연 산뜻한 맛부터 묵직한 맛, 산미가 강한 맛부터 단맛이 도드라지는 맛까지 다양한 콤부차 바리에이션이 있어 코스 안의 다양한 요리들과도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졌다. 낮에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대신 콤부차를 마셨는데, 저녁에는 와인 대신 음식과 마실 수도 있는 음료라니. 정말 차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대체 정체가 뭐람. 하지만 바꿔 말하면 활용하기에 따라 차의 역할도 술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음료가 아닌가.


그래서 콤부차가 뭔데?라는 질문에 발효를 주제로 한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Noma)의 셰프가 쓴 책 <노마 발효 가이드>의 본문을 인용해보겠다. 


콤부차는 새콤하고 살짝 탄산이 들어간 발효 음료로,
전통적으로 당류을 가미한 달콤한 홍차를 이용하여 만든다. 
역사적으로 콤부차는 일본과 한국, 베트남, 중국, 러시아 동부 지역에서 음용했다. 하지만 현명한 마케팅과 프로바이오틱을 함유한
모든 제품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커진 덕분에 최근 들어
북미와 서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노마 발효 가이드> 르네 레드제피 지음, 정연주 옮김, 한스미디어


실제로 노마 레스토랑에서도 직접 만든 콤부차를 코스 메뉴와 함께하는 와인 페어링의 일부 또는 주스 페어링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콤부차를 통해 강렬한 탄산감과 새롭고 다양한 풍미를 전달함으로써, 노마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음식과 음료의 페어링에 '확장성'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고. 


콤부차를 만드는 발효 과정은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먼저 효모가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과정, 그리고 박테리아(아세트산균)가 알코올을 산 성분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때 활용되는 것이 스코비(SCOBY)라는 둥그렇고 반투명한 젤 모양을 한 배양체인데, 바로 여기에 발효에 필요한 박테리아와 효모가 같이 살고 있다. 스코비라는 이름이 'Symbiotic Culture of Bacteria and Yeas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스코비의 모습. 이 스코비에 살고 있는 효모와 박테리아가 콤부차의 발효를 담당한다. ⓒ Emma Christense


우리가 원하는 풍미를 가진(과일, 홍차 등) 당이 함유된 액체에 스코비를 넣으면 먼저 효모가 액체에 들어 있는 단당류를 알코올 성분인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면서 발효가 시작된다. 이는 맥주나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스코비 안에는 효모와 박테리아가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 발효는 박테리아(아세트산균)가 효모가 발효한 에탄올을 아세트산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2번째 발효는 식초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도수가 낮은 알코올에 박테리아(아세트산균)을 첨가하면 알코올을 식초로 만들 수 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막걸리 식초나 이탈리아의 와인 식초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즉 맨 처음에 준비한 달콤한 액체에 들어 있는 당분을 효모가 에탄올로 만들고, 그 에탄올을 박테리아가 산으로 바꾼다. 콤부차 액체 안에서 이 두 가지 미생물이 공존하며 발효를 함으로써 우리가 즐기는 콤부차의 새콤한 탄산 풍미가 만들어진다. 그 다음에는 만드는 이가 의도한 당도와 산도가 나올 때까지 발효 정도를 조절하고, 자신만의 콤부차를 완성하면 된다. (여기서 당도는 발효되지 않고 남아 있는 당도를 말한다.) 집집마다 담근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만드는 이의 선호도나 의도에 따라 콤부차의 맛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콤부차 맛은 어떤 맛일까? 좋아하는 커피를 찾아 카페를 순례하듯 다양한 콤부차를 맛볼 수 있는 서울의 장소 2곳을 소개한다. 





1. 퍼멘츠(FERMENTS)



합정과 홍대입구역 사이쯤에 위치한 퍼멘츠는 이름 그대로 발효를 주제로 한 캐주얼한 카페 겸 음식점이다. 망고와 얼그레이 2가지 맛의 콤부차를 판매하고 있으며, 위에서 인용한 책 <노마 발효 가이드>에서도 언급된 '달콤한 홍차'를 원료로 만든 얼그레이 콤부차를 마실 수 있다. 이곳의 콤부차는 청량감 있는 탄산에 산도와 당도의 조화가 좋은, 새콤달콤 발효 에이드를 마시는 느낌이다. 그래서 콤부차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없이 맛있게 마실 수 있다. 북유럽의 카페 어딘가에 온 듯한 편안한 실내 분위기에서 콤부차와 함께 발효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날 생선을 먹는 데 거부감이 없다면 초절임한 고등어가 올라간 오픈 샌드위치인 '사메사바 타다키 스뫼레브레드' 또는 '치즈 크랩'이나 '연어 그라브락스 스뫼레브레드'를 콤부차와 함께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며 주르륵 흐르는 점도를 가진 독특한 수제 발효꿀을 뿌려 먹는 '발효 꿀딸기'도 추천 메뉴.


얼그레이 콤부차 / 퍼멘츠 실내 모습
사메사바 타다키 스뫼레브레드 / 발효꿀 딸기



2. 슬로운



종묘 옆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슬로운은 다양한 콤부차와 바리에이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콤부차는 탄산감보다는 음료의 풍미에 좀 더 집중한 느낌이었다. 플레인 콤부차는 산도가 꽤 높아 얼음과 함께 먹었을 때 그 청량한 풍미가 더 잘 느껴졌다. 열대과일 맛의 콤부차에 말린 과일을 함께 즐기는 '트로피컬', 달콤한 청포도 맛과 콤부차의 산미가 무척 잘 어울리던 '봉봉', 콤부차 위에 밀크폼을 더해 마치 색다른 요거트를 마시는 듯했던 '크림 소다'(가장 추천 메뉴!) 등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공간에서 다양한 콤부차 베리에이션 메뉴를 경험할 수 있다. 


슬로운의 다양한 콤부차들 / 발효의 맛에 충실한 기본 플레인 콤부차
과일 풍미의 트로피칼 콤부차 / 색다른 맛과 질감의 크림 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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