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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Feb 03. 2022

긴 연휴, 콘텐츠 소비 기록


1/29

처음 시작한 영화는 홍상수의 <당신 얼굴 앞에서>

홍상수의 영화 20여 편 중에서 8편을 봤다. 한 감독이 20여 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한 감독의 영화만 8편 보기도 힘들 텐데. 그것도 개봉관이 많지도 않은데 굳이 굳이 찾아서.

작년에 개봉한 홍상수 영화는 2편이다. <당신 얼굴 앞에서>와 <인트로덕션>. 어쩌다 보니 챙겨보지 못했다.

이 사람 영화 중에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본다. 울면서 봤던 영화다. 신파도 아니고 딱히 슬프지도 않은데, 혼자 술을 마셔서 그런가. 그는 영화에서 보통 한 문장을 영화 내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반복한다.

<당신 얼굴 앞에서>도 역시 좋았다. 예전만큼 소주 두 병에 낄낄 거릴만한 조소거리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보다 색채가 짙다. 좀 더 사는 얘기 같다. 저런 헛소리들이 채우는 게 결국 인생 같다가, 죽는다는 말이 농담 같다가, 진짠가? 싶다가 하는 기시감이 든다.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것 없이 그냥 영화가 끝난다. 홍상수 영화는 늘 그랬다. 일상의 한 부분을 보여줬다가, 자세히 보여주지도, 더 보여주지도 않고 끝낸다.

보고 나니 개운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애써서 찍는 그가 고마웠다.


<나의 문어 선생님> 넷플릭스 오리지널

김다미가 재밌게 봤던 다큐라고 해서 보았다. 인생의 교훈, 자연이 주는 가르침 이런 메시지 다 떠나서 ‘재미’ 있고, ‘보기’에도 좋았다. 실제 체험으로만 담을 수 있는 광경과 긴 인내를 통해서 얻은 포착된 장면과 교감. 다큐가 이런 거구나,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다. 존경도.

내가 사랑하는 걸 되찾을 줄도 알고, 지킬 줄도 안다.

아름다워요, 꼭 보세요. 꼭!



1/30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래전 이 웹툰을 보면서 혼자서 잠 못 잤던 밤들이 기억난다. 그 시절 수위로는 감당하기 벅찼는데, 너무 재밌어서 놓을 수 없었다.

시리즈는 좀 실망이었다. 12화까지 갈 필요가 있었나 싶고, 이제 나는 이 정도 수위는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이보다 흥미로운 콘텐츠도 많이 봐버렸다.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다음 책 모임 책이다. 내가 골랐다. 집에 오랫동안 벽장 신세로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아서 과감히 질러보았다. 천천히 같이 뽀개면 저 벽돌도 뿌실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보다 어려운 말이 없고, 이젠 많이 익숙해진 이론들이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교양서라더니 맞는 말인 듯. 근데 분량 조절은 실패한 것 같아요, 카너먼 선생님..



<파이트 클럽> 데이비드 핀처

아 드디어 봤다. 아예 사전 정보가 없어서 권투 영화인 줄 알았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영화라니! 데이비드 핀처 만세 :heart

음 생각보다 명작은 아닌데? 하면서 보다가 곱씹을수록 잘 만들고 생각난다. 생각할수록 재밌다.

불과 2년전까지 나의 근본 에너지는 '분노'라고 생각했다. 뭔가 정의롭지 못하거나, 내가 믿는 가치관과 어긋나는 걸 볼 때마다 화가 자주 났다. 돌아보면 그냥 서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표출해야 좋을지는 고민하지 않고 드러나버리는 그대로 표출해버리는. 그렇다고 고발하거나 싸우진 않았지만, 그 감정을 동력삼아 움직였었다. 지금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자꾸 복싱이나 주짓수같은 기술 운동을 배우고 싶은 이유도 그런 기저가 있다. 싸울 줄 알면, 좀 덜 무서울 것 같고, 덜 무서우면 덜 화가 날 것 같다. 별 거 아니니까 화 내기보다 다스릴 줄 알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다.

<청춘 스케치> 영화도 생각난다. 치기어리고 감정 표현이 불같은 누구나 갖고 있는 서툰 시절.



1/31

<지금 우리 학교는>

그래도 시작했으니까 끝내야지 싶어서 넘기면서 다 보긴 봄.. 시간 아까우신 분들은 시작하지 말기를 추천합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크리스텔 프티콜랭

예전에 반 정도 보다가 접은 책인데, 끝내고 싶어서 후루룩 읽었다.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시작했다. 절대 변하지 않을 ‘N’ 형인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몽상(망상)한다. 진-짜 쓸데없는 생각들. 웃긴 건 감정도 그 상황에 몰입해버려서 참 시간이 아깝다는 거다. 안 하고 싶어서 온갖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다시 꼬리를 물어서 어떻게 하면 이 망상을 멈출 수 있을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골치 아파..

결론은 이 책의 대상자들과 나는 다르다. 이 책의 대상자들은 INFP. 나는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 민감하진 않다. 호불호도 강하고 에너지가 다 커버할 수 없어서 특정 상황과 몇 사람에게만 곤두세운다. 거기에 에너지 쓰느라 나머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도 읽어보면 공감도 많이 갔는데, 이 상담사는 똑똑하게 위로할 줄 안다.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니란다, 라는 위로보다는 인과관계를 정확히 말해주고 당신이 이해받기 어려운 이유와 앞으로도 그럴 거라 스스로 다독여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맞아. 돌아보면 나는 나를 다독이는데 서툴렀다. 내가 나를 예뻐하지 않았다.

올 해는 나를 좀 예뻐해 주고 다독여주려고 한다. 이 책이 도움이 되었다.



2/1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신작을 잘 찍어내는 작가라 다음에 무슨 책을 읽어볼까 고민하다가 이걸 골랐다.

이 책도 아직 2편밖에 안 읽었지만 재밌다. 김초엽의 장편이 너무 궁금해졌다. 분명 그녀는 그녀만의 세계가 있고, 정확한 언어로 그려낼 줄 안다. 첫 책 보다 더 촘촘해졌다고 느낀다.

짬나면 틈틈이 한 편씩 읽기 좋은 책이다. 또 요즘 책은 표지가 다 예뻐서 사서 들고 다니기에도 멋이 있다.


<틱, 틱... 붐!> 린마누엘 미란다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인 건 아닐까 오래 고민했었다. 아무 정보도 없는 제목. 그러다 앤드류 가필드의 활짝 웃는 미소를 보고는 이내 클릭했다. 요거 내가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였다. Fake Documentary. 사라 폴리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가 생각났다. 적당한 내레이션의 개입으로 적당한 몰입과 거리를 만든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 위치에 있도록 계속 알려준다.

서른 살이 이제 8일 남았어, 어떡해 나 망했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뮤지컬 영화. 조너선 라슨이라는 뮤지컬 천재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 영화 내내 흐르던 틱, 틱, 째깍, 거리는 시간 효과음이 좋았다. 첫 가사와도 절묘했고 조급해하던 조너선의 마음도, 일찍 생을 마감해버린 그의 친구들과 그의 삶을 보여주기에도 좋았다. 조급해하건,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진짜 늘 없다. 내 연휴도 그렇게 다 흘렀다.


<청년 경찰> 김주환

진짜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싶어서 골랐다. 이병헌 감독 코드 같은 게 보고 싶었다. 왓챠 평에도 있던데, <스물>의 친구들이 경찰대에 가서 벌이는 정의로운 이야기였다. 강하늘과 박서준 조합이 꽤 괜찮았고 강스카이가 복근 까고 액션을 하는 걸 보니까 또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게 강스카이는 초식남 동주인데..

아무 생각 없이 보기 괜찮은 킬링 타임 영화로는 만족. 그런데 다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그냥 다시 <스물> 볼 것 같다.



2/2

영화관에 가서 본 <하우스 오브 구찌>

연휴 마지막 날엔 영화관에 가서 보고 왔다. 드디어 외출이란  했어..

<패터슨>에서 반하고, <결혼 이야기>에서 절정을 찍어버린 애덤 드라이브를 믿고 봤다. 스토리와 아이템, 배우들, 러닝타임 대비 많이 아쉬운 영화였다. 구찌인 만큼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기대했다. 약간 위플래쉬나 소셜 네트워크 같은. 아님 적어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도로 눈요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레이디 가가 캐릭터가 워낙 세서 다 묻힌 것 같달까. 아수워 아수워..




이번 연휴엔 7km씩 걸어 다녔다. 눈 안정기 때문에 뛰지도 못하고 홈트나 요가도 못하고. 저녁에 계속 계속 걷다가 집에서 스쿼트랑 복근 운동하는 걸로 간단히 끝. 운동하다가 못하니까 이렇게 답답하고 근질근질하다니..

하고 싶은 운동이 많다. 날씨 좋으니까 러닝도 하고, 주짓수, PT, 복싱, 등산, 수영...

뛰면서 경험하는 러너스 하이는 중독이라더니 진짜 맞는 것 같아.

요즘은 나와 잘 지내기 위해 내가 뭘 좋아했고, 좋아할 수 있는지, 좋아질 수 있는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다. 좀 더 이기적으로, 더 많이 내가 나를 지키면서 살아야지.


그런 의미로 내가 좋아하는 거 잔뜩 했던 연휴였다(운동빼고).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낄낄낄깔 즐겁게 보냈다. 꽉꽉 채워서 잘 보냈어. 내일은 다시 기지개켜고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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