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엄마를 보내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갚아야 할 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괜히 빚만 잔뜩 진 느낌. 그 사람 걷는 꽃길 위에 꽃이라도 되겠다는 소망.
가능하다면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준다던가, 만나는 날이면 당신이 맛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내놓는다던가, 당신이 좋아하는 산책길을 오래 걷는다던가... 제가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그들을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가성비 좋은 행복도 잘 없지요.
요새 제 삶의 키워드는 꾸준히 아빠, 엄마네요. 사람 일이란 게 생각보다 빠르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들이 닥치게 된대요. 작년 한 선배에게 들었던 건데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면 해준 것보다 못 해준 게 더 많아진대요.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전부가 없어지는 기분을 아냐고. 그러니까 매일 매일을 잘해야 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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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서울에 절 보러 올라오셨던 엄마를 배웅하는 길이었어요. 창문 너머로 인사를 하다가 어쩌다 보니 엄마가 탄 하행선 기차와 나란히 달리게 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마지막으로 웃으며 내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달까. 창밖으로 뛰는 삽살개 (제가 머리숱이 정말 많아요) 한 마리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창 안의 엄마... 뭐 그런 훈훈한 장면들을 상상하며 발동한 아들의 묘한 장난기, 상상되시는지.
그런데 달리다 보니 기차가 점점 빨라지는 게 아니겠어요? 기차를 따라 저도 점점 속력을 올렸지만 얼마 못 가 기차는 플랫폼을 떠나버렸지요. 제겐 더 이상 달릴 수 있는 길도 남아있지 않았고요. 떠나보내고 나니 허무한 마음이 마구 밀려드는 겁니다. 아직 내가 이렇게 팔팔한데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한 것 같아서, 철없이 웃으며 장난만 치다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 먼 훗날, 상상하기도 끔찍한 그 먼 훗날에 마주하게 될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르겠구나 싶어서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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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집에서 짐을 챙기다 엄마의 일기장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요.
돈 버는 일이 얼마나 죽을 모퉁이를 도는 일인지 아들이 깨닫는 중인가 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내가 너를 지켜줄게
라는 문장으로 끝이 나는 일기였어요.
무언갈 지킨다는 건 가늠이 안 돼요. 일기에 다짐까지 하는 그 마음은 더 가늠이 안 되고요. 아마 앞서 말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누군갈 지킬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함부로 기죽는 법을 모르는 엄마, 그런데 위세를 떨치려 하지도 않아서 본받을 점도 참 많은 사람.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사람, 평생 소원이라던 새 집 마련에 성공했다며 이제 모든 빚을 갚아간다며 들뜬 모습으로 떡을 향해 기도하던 사람... 떡 따위가 뭐라고, 열심히 일한건 떡이 아니라 곱게 모아진 두 손이었는데요. 늘 그래요. 당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이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 빨라서 언젠가 보이지도 않는 순간이 올 테지만 그 때까지 열심히 달리고 싶어요. 태어나 엄마와 나란히 달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어떤 장난으로 시작된 것이겠지만 그 끝엔 후회 없는 건강한 소년이 서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나도 당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을까?
여러분, 플랫폼이 생각보다 짧아요. 달릴 기회는 적고 오래 정차하지도 않구요. 우리 모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하여 다음 주도 으쌰하길 두 손 모아 바라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