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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Apr 21. 2020

나의 브런치 생활기

194일째_브런치 곳간에서 인심 난다 

100일도 아니고, 200일도 아니고  '194일'이란 "브런치 생활기"라고 제목을 잡고 소회를 적기엔 적절치 않은 날수다. 끝자리가 딱 떨어져야 뭐든 기념할 맛이 난다지만 그동안 브런치를 대하는 내 모습이 좀 달라져서 일기를 적듯 적어보려 한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194일이 되었다. 나만 볼 수 있도록 스마트폰에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을 기준으로 디데이 설정을 해놓았다가, 드문드문 안 쓰기 시작하면서 디데이도 슬쩍 지웠다. 처음처럼 부지런히 쓰지도 않는 와중에 늘어가는 디데이 날수만 보다 보니 좀 자괴감이 들었고,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누가 공부를 하라고 하면 괜히 심통이 나는 것처럼 그렇게 글이 더 쓰기 싫어질 것 같았다. 200일 가까이 되기까지 뒤재비꼬기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처음과는 또 달라졌다.


브런치 초기(~3달째, 대략 100일까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고 3달째 정도 되던 날까지는 논에 물꼬가 트인 듯 글감이 쏟아져 나와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 하나가, 겪는 사건 하나가 다 글감으로 연결되어서 놓칠세라 휴대폰 메모장에 글감들을 적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지만 글감이 넘쳐서 학교에도 노트북을 들고 가서 노트북 화면 밝기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글을 썼었다.


그때는 구독자 수나 라이킷 수 하나하나에 흔들거려서 브런치 알람을 켜놓고 틈만 나면 들어와서 브런치 프로필 인근의 민트색 점을 확인했다. 통계를 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수시로 켜봤고 주가 그래프를 보듯 일희일비하며 그래프의 오르내림을 살폈다.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주식이라곤 1도 모르는 사람이다._유치원생 시절 만화 영화 시작 전에 꼭 주식동향을 알려줬었는데 동생에게 "오르락내리락한다!!"라고 했었다. 여전히 딱 그 수준이다. 오르락▲ 내리락▼) 운 좋게 키워드가 포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해서 글이 어디 메인에 걸리고 조회수가 올라간 날엔 글의 행방도 찾아다녔다. 당장 출판이라도 앞둔 양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브런치 大정체기(약 한 달 정도)

처음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하루 이틀 글을 안 쓰다가 일주일 이상이 넘어가자 일부러라도 브런치 통계를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가끔 솟구치기도 하며 어느 정도 안정세를 유지하던 그래프가 글을 쓰지 않은 날을 기점으로 곤두박질쳐 0을 찍고 있는 양을 보고 있으면 숙제를 밀린 아이처럼 불안해졌다. 글을 쓰지 않은 몇 주 동안은 그렇게 하던 일을 덜 마치고 나온 듯 불안하다가 이내 덤덤해졌고 '쓰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활발하게 쓰다가 쓰지 않은 이유는 글쓰기를 지속하면서 내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 자꾸만 쏟아져 나오자 괴로웠고, 부끄러워졌고, 내가 마치 '내 불행만 안됐다고 쓰다듬고 있는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종종 상처를 줬던 이들이 글에 등장하면서 미안함과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쓰기여서 내면에서 해결되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것들이 충분히 나올 필요가 있었고 그것들을 글을 쓰며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좀 복잡했다.


대략 두 번 정도의 정체기를 그렇게 겪었다. 두 번째 정체기는 초반보단 덜했고 금세 빠져나왔다. 정체기를 겪는 동안도 여전히 구독자수나 라이킷 수 통계에 많은 신경을 썼다. 못난 짓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털어놓자면 그 당시에는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구독자를 보유한 작가님들을 보면서 질투도 느꼈었다. 어차피 돌고 돌면 라이킷을 누를 거면서 글만 읽고 브런치에서 홀랑 나가버렸다. 더러 좀 많이 부러운 브런치를 발견하면 글을 쓰기 시작하신 날이 언제인지 보고 나보다 오래되었으면 안도하는 식으로 밴댕이처럼 굴었다. 


브런치 안정기(대략 요즘)

사실 '안정기'라고 적기는 면구스럽다. 글이 정기적으로 올라와야 안정기가 아닌가.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코로나 시국에는 글 쓸 거리가 없고,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으로 과제가 더 많아져 글 쓸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드문드문 글을 올린다. 사실 게을러져서 확- 안 땡기는 날엔 글쓰기가 싫은 거다. 하지만 '안정기'라고 제목을 달아놓은 이유는 이제는 통계수치에 흔들리지 않고 알림이 오지 않는 이상 들어가 보지도 않을 정도로 안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생애 초기 긍정적인 경험을 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어가고 단단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내 브런치도 작가라고 앉아 있는 내 자아도 이제 좀 안정이 되었다. 길고 긴 시간을 돌아와도, 내놓기 부끄러운 글을 올려도 읽어주시고,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라이킷도 눌러주시고 따듯한 댓글을 달아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에 브런치 속 내 자아는 쑥-성장했다.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고 글 쓰는 이유가 좀 순수해졌다. 


한창 격변기를 겪을 때는 브런치를 구독할 때도 좀 눈치를 살피고 나 혼자서 밀당을 했는데 이제는 그냥 내가 좋으면 구독해서 글을 읽는다. 요즘은 정말로 바빠서 여러 작가님들의 글을 빠지지 않고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해졌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구독을 하고 글을 읽으니 교과서적인 대답 같지만 내가 더 많이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제목도 "브런치 곳간에 인심 난다"고 썼다. 


현실에선 여전히 자주 우울해지고 만성 불안에다가 심장이 떨려서 큰돈도 쓰지 못하지만 브런치 속 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생각도 한다. 그 길에 초반부터 함께해주신 작가님들이 계셔주었고 새롭게 문우가 된 분들이 힘이 되어주었다. 감사하고 뿌듯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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