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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Mar 05. 2020

'가벼움'과 '먹먹함'의 경계에서...

서평: 『파인 다이닝』, 은행나무 출판사

가벼움과 먹먹함의 경계에서 읽다.

 한 달 전쯤 최은영 소설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었다. 작가의 첫 작품인 ‘쇼코의 미소’는 그냥 읽고 넘겼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문장 마디마디들이 유독 가슴을 아리게 해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었다. 작가의 단독 소설집은 아니고 음식이라는 한 가지 소재를 두고 여러 작가들이 모여 쓴 단편집이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바통’이라고 하여 ‘하나의 테마, 다양한 시선을 모토로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릴레이를 담아낸다(책날개에서 인용).’고 한다.


 소설을 두고 글을 쓰면서 ‘가볍다’라고 쓰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볍다’는 어떤 평가를 위한 단어가 아니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읽는 매력이 있고 편안하다. 이 소설은 실제 책의 무게도 가벼웠고 읽을 때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메인 요리도 있고 디저트도 있고 제각각이지만 나는 식후 커피와 함께 먹는 한입 거리 디저트를 떠올렸다. 

     

가볍지만 지나칠 수 없는

 앞서 소설이 가벼워서 읽기 좋다고 썼지만 소설 안에서 다루는 주제나 메시지는 그렇지 않다. 아름답고 잔잔하게 그렸지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어떤 막막함과 마주한다. 그리고 이내 그 막막함은 먹먹함으로 변한다. 소설들은 음식을 소재로 하지만 내용이 따뜻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보통 ‘음식 이야기’에는 음식을 함께 나눈 이들과의 진한 추억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이 책의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작품을 읽으면서는 지리멸렬한 삶이 끈적끈적하게 물고 늘어져서 그 집요함에 숨이 막혔다. 

    

가벼운 소설이라고 쓰고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라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설을 읽고 기록하는 필자의 한계인지 언어의 한계인지 모르겠다. 그저 읽은 바를 솔직하게 썼다. 

(이후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선택(최은영)

 작가는 지난번 소설에서도 그렇고 이번 소설에서도 그렇고 가톨릭 수도자를 인물로 내세운다. 작중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도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는 수녀가 등장한다. 좋은 말일 수도 있고 나쁜 말이기도 하지만 그쪽 생리를 알고 있는 나는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개인적이고, 좋지 않은 경험이 소설을 제 모습대로 읽는 일도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곳곳에서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졌고 그는 천성이 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사회 현실을 담아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소설집 대부분이 그랬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하고 창작한 소설 같았다. 실제로 뒤이어지는 ‘작가의 말’에서 KTX 해고 승무원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다고 밝혔다.

       

2. 매듭(황시운)

 낙지집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낙지머리를 잘라내야 하는 여자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윤의 이야기. 고통스럽고 끈적한 삶의 이야기. 소설을 읽는 내내 명치끝에 뭐가 걸린 듯 내려가지 않았다. 작가의 말에서 사고를 당하고 나서 쓴 이야기라고 했다. 뜻을 가진 작가들이 모여 집필한 소설이라 그런지 유독 작가에게 눈이 간다. 소설도 소설이었지만 ‘작가의 말’의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야기를 시작해버렸다.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 불안한 여정에 그들이 함께해줄 것을 믿는다.(황시운 작가의 말)     


3. 승혜와 미오(윤이형)

 말 그대로 승혜와 미오의 이야기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들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동성커플이라는 점이다. 두 커플 사이의 갈등이나 에피소드는 여느 이성 커플과 다르지 않다. 이들 서사 안에 따라붙는 ‘세상의 시선과 편견’이라는 요소가 언제 복병처럼 나타날지 불안했다. 결국 불안했던 마음은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세상이 아직 그렇지 않아서 그런지 결말이 동화 같다고 느꼈다.     


4. 커피 다비드(이은선)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카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나열된다. 원두 종류와 특성이 서술되고 카페에 들른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한 잔의 커피에는 저마다 이야깃거리가 숨어있다. 혼자만의 이야기든 둘 혹은 여럿의 이야기든 그렇다. 모든 커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카페의 주인인 다비드는 NPC처럼 서 있지만 마지막 다비드의 커피 이야기가 가슴 아팠다.  

   

5. 배웅(김이환)

 기계와 로봇이 세상을 지배한 후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데이터화 시키고 영원히 산다. 몸은 소각되고 기억만 데이터화 되어 남는 것이다. 한편 그런 삶을 거부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 위해 모여 사는 이들이 있다. 한데 어쩐 일인지 영생을 얻겠다고 사는 이들의 모습에서 모순되는 점이 눈에 띄었다. 산다는 것이 뭘까. 기억을 데이터화 한다고 해서 인간답지 않으며 구원과 멀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삶의 매듭은 개인이 져야 하는 몫이다.

     

6. 병맛 파스타(노희준)

 말 그대로 병맛 대화를 주고받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젠더 이슈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슈가 되는 부분을 비틀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종종 불쾌한 감정도 들었다. 독자가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다.

     

7. 에트르(서유미)

 너무 리얼한 삶의 모습이어서 감상하기가 힘들었다. 에트르라는 고급 빵집에서 일하는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같았다. 당장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집의 말에 어찌할 줄을 몰라하는 자매. 그들은 제 값을 주고 살 수 없을 만큼 비싸지만 빵들은 나오는 족족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 에트르에서 빵을 사가는 손님들과 자매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취향이 사라지고, 모처럼 마음을 다잡고 하는 구매에도 가격차이가 취향을 결정한다.

         


... 서평 기록자의 변명...

전문작가이든 아니든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자신의 글에 대해 대범해져야 하는데 내 자아는 아직 그만큼이 아닌 것 같다. 이 글은 평소 독서모임 서평을 쓸 때만큼 정성을 들이지 못했다고, 최선을 다해 쓴 글은 아니라고 한 발짝 물러선다.

 

조금 더 욕심을 보태어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다작(多作)이 좋은지 양질의 작품 하나를 공들여 쓰는 게 좋은지 고민이 된다.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오래 소설을 읽지 못했다. 우연히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좋은 작품들을 이어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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