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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n 06. 2021

엄마 머리 감기기 대소동

남편 말은 안 듣는 아내, 아들 말은 그래도 듣는 엄마

엄마가 머리를 감지 않은 지 사흘째. 정확히는 "씻기 싫다"고 말한 게 사흘째란다. 아빠는 요즘 엄마가 통 말을 안 듣는다며 힘겨워했다. 평소에도 힘든 티를 잘 내지 않던 아빠인데, "스트레스받아서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하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다.


예견된 수순이었을까. 부모님은 코로나에 감염돼 20일 정도를 병원에서 보냈다. 아무래도 전후좌우 하얀 벽에다가, 매일 같은 시간 밥 먹고, 같은 자리에 앉아 쉬고, 같은 사람들만 만나야 하는 병원 생활이 치매에 좋을 수는 없었겠지. 입원 전에는 기억을 잘 못하긴 해도, 통화할 때 말은 많이 하고 웃기도 잘 웃던 엄마였는데.. 입원이 길어질수록 엄마 말수가 부쩍 줄어든 게 느껴졌다. 수화기 너머여서 어색한가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심한 수준이었다. 엄마는 퇴원 뒤부터, 말도 잘 않고 "씻자, 옷 입자"는 아빠의 말을 들은 체도 않거나 "싫어", "몰라"로 일관하고 있다고.


아빠는 내가 올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엄마 머리를 좀 감겨 보라"고 말했다. 물론 엄마가 내 말이라고 잘 듣는 건 아니다. 내가 오고 난 후 말문이 조금 트이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와 나누는 대화는 두세 마디가 겨우 넘었다. 그것도 답을 끌어내야만 억지로 하는 정도이니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외출을 앞두고 결전의 시간이 왔다. 3일 동안 감지 않은 엄마 머리는 부스스하고 뻗쳐 있었다. 엄마 머리스타일이 전형적인 아줌마 파마가 아니라 더 그래 보였다. 아빠는 역시나 두어 번 실패하고서 내게 와 속삭였다. "엄마한테, 냄새나니까 머리 감자고 해 봐라." 지령(?)을 받은 나는 슬금슬금 엄마에게 다가간다.

엄마아빠는 항상 앞뒤로 걷는다. 속도가 다른 우리 엄마아빠.

냄새난다거나, 더러우니 씻으라고 말하는 건 괜히 부정적으로 느껴지겠다 싶어, 표현을 달리해 보기로 한다. "엄마, 이제 아빠랑 나가야 되는데, 머리 감아볼까? 나가면 사람들 많으니까 감고 나가야지." 최대한 부드럽게,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응? 엄마 안 씻어도 되는데." 엄마의 철벽은 내게도 마찬가지. 설득은 계속된다. "엄마, 나도 씻고 아빠도 씻었는데 엄마만 씻으면 되겠네."


한참을 들은 체도 않던 엄마가 아빠 눈치를 보더니 슬쩍 일어난다. 화장실로 직행한 엄마는 샴푸를 찾는 듯 이래저래 두리번거렸다. 기척 없이 다가가 세면대 위에 있는 샴푸를 엄마에게 건넨다. "엄마, 혼자 할 수 있죠?" 대답도 않고 샴푸를 받아 든 엄마는 곧잘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남이 머리 감는 걸 보는 일이 이렇게 시원할 데가. 혹여 엄마가 수건을 못 찾을까 싶어 수건을 들고 옆에서 기다린다.


그리 깨끗하게, 박박 감지는 않은 듯했지만 그것까지 말했다가는 엄마가 또 무슨 반응을 할지 모르니, 가만히 보고 칭찬해 주기로 한다. "엄마 혼자도 잘하는데 아빠는 왜 그런대?"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엄마는 내 말에 화색이 바뀌며 푸하하 웃었다. 사실 엄마는 아프기 전부터 아빠 돌려 까기(?)를 좋아했다. 편을 가르자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엄마에게 잘 보여야 엄마를 더 잘 돌볼 수 있을 테니.


치매 노인이 어린이처럼 변하는 단계가 온다는데, 어쩌면 엄마가 그 단계에 접어들었나 싶다. 코로나에 걸려 입원했을 때도 나름의 걱정이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층위의 걱정이 켜켜이 쌓인다. 종일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엄마에게 조금은 다른 자극이 필요하겠다 싶어 급히 집에 왔는데, 증세가 더 심해진 걸 눈으로 보니 마음이 마냥 좋지 않기도 하고...


하여간 코로나가 문제다. 이렇게 사람들을 강제로 떼 놓으면, 사람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 좋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란 말이다. 이럴 때면 괜히 신이 밉다. (언제는 안 미웠던 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 다 열심히들 사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매번 가져다 놓는지. 기실 내가 신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우리 엄마아빠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그 보상은 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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