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Dec 07. 2020

엄마표 부추전

아픈 엄마와 무뚝뚝한 아들의 분투기

날이 쌀쌀해지니 부추전이 당긴다. 엄마표 부추전은 정말이지 지구 최고의 음식이다. 흉내라도 내 봐야지 싶어 장 보러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부추전 해 먹으려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잘할 수 있겠냐"는 걱정부터 덧붙인다. "나 내일모레 서른이야!" 엄마도 나도 퍽 민망해한다.


한바탕 웃고 나서야 레시피 이야기가 시작됐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는 재료 하나를 말하는 데도 심하게 버벅거렸다. 밀가루를 물에 풀어쓰면 된다. 아니 부침가루를 써야 하나.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바삭하게 잘 구워야 한다. 뒤죽박죽 말하다가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해물파전이랬지?" 다시 처음부터 말하기 시작하는 엄마다.


"응, 엄마. 잘 해 먹을게."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틀어막고서 통화를 마쳤다. 경도인지장애 환자인 엄마의 횡설수설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상생활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엄마 기억은 가까운 것부터 하나씩 잊혀 간다. 이번엔 부추전이 잊힐 순서였나 보다.


그럭저럭 부쳐 낸 부추전. 전이라 보기는 애매하기도…

엄마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오래지 않았다. 5~6년 전만 해도 홀로 고졸 검정고시 공부를 스스로 해내던 엄마였기에, 이런 식으로 아프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쉽게 깜빡깜빡하던 엄마 상태를 건망증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언젠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뮤직비디오를 보고서 하염없이 울었다. 역시 엄마 생각에서다. 집안일거리가 가득한 거실에 널브러져 앉은 중년 여성의 표정은 삶의 모든 걸 잃은 듯했다. 그런 표정을 한 채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는 모습은 엄마를 닮아 있었다.


이제는 몇 장이고 혼자서 먹어치우던 엄마표 부추전을 맛보기는 쉽지 않겠지. 그럭저럭 만들어 부쳐 낸 부추전을 입에 욱여넣고 저작운동을 하면서 눈물을 꾹 참았다. 엄마의 부추전이 맛있었던 건 아마 정성 때문일 터다. 누군가에겐 '정성이 들어있다'는 말이 지겨운 클리셰겠지만 나에겐 정말이지 실체다.


기억은 보이지 않지만, 흐려지는 모습은 퍽 뚜렷하다. 엄마 기억이 가까운 것부터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저편에 다다라 나마저 잊으면 어떡하나 생각한다. 끔찍한 생각이다 싶다가도,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이내 담담해진다.


엄마 기억에 아직 남아 있는 옛일 대부분은 행복했던 시간이다. 엄마는 어쩌면 나쁜 기억들을 하나씩 배웅하며 떠나보내고 있나 보다. 좋지 않은 기억은 흘려보내면서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엄마가 몹시 행복해지면 더 바랄 게 없을 테다.

이전 01화 엄마 말이 다 맞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