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우는 엄마를 보며
요즘 엄마는 난데없이 우는 일이 많다. 방금 전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던 엄마가 한순간에 눈물을 보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감정 기복은 치매 환자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데, 사실 엄마는 치매 전 단계부터 상황에 관계없이 갑자기 화를 내거나, 폭소하거나, 혹은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치매일 거라고 상상을 못 한 게 여러모로 후회되기도 한다.
엄마가 우는 이유는 대부분 미안해서다.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항상 그렇다. 한번은 삼 남매의 어린 시절 얘길 하다가 '작은 누나가 엄마 때문에 고생해서 미안하다'며 운 적이 있다. 누나는 집에 없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누나가 집에 올 때마다 며칠씩 머무르는 게 엄마 나름대로는 신경이 쓰였나 보다. 나도 어쩔 줄을 몰라 곧바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상황을 금방 눈치채고는 '나 고생 안 한다'며 엄마를 위로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좋은 생각만 해요'라는 말도 건넸다.
가장 최근의 '미안해서'는 큰누나네 손녀들을 보러 여수 가는 차 안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좋아하는 이미자 메들리를 함께 들으며 가다가 '흑산도 아가씨'가 흘러나오는 그때쯤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눈물이 빨리 나오는지 전초전도 없다. 마치 아이들 눈물을 설명할 때의 그 '닭똥 같은 눈물'이 곧바로 주륵댔다. 설상가상으로 차 안에 휴지도 없어서, 엄마는 손등으로 눈물을 계속 훔쳐야만 했다.
이번 '미안해서'는 나에게도 향했다. 엄마는 '내가 미련하게 아파서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엄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쉽게 멈추질 않았다. 엄마의 훌쩍임 뒤로는 이미자의 '여로旅路'가 깔렸다. 나는 묵묵히 엄마 손을 잡았고, 엄마는 얼마간 밖을 보며 멍을 때렸다.
아빠는 속도 모르고 '울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하라'며 엄마를 타일렀다. 한참 동안 대꾸가 없던 엄마는 다음 곡이 흘러나올 때쯤 노래를 시작해, 이어 나오는 노래들을 모조리 따라 불렀다. 노랠 듣고 있자니 엄마 머릿속에서 이미자 노래 가사만큼은 아직 떠나지 않았나 싶다. 별게 다 위안이 된다.
요즘 엄마는 '엄마가 아픈가?' 하고 난데없이 묻는 일도 많아졌다. '엄마 아픈 건 맞지만 약 먹고 운동하고 노력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조목조목 말해주면서도, 엄마가 어디가 아프냐고, 지금 건강하게 걸어 다니고 밥 잘 먹지 않느냐고 말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설득과 논리가 아니라 위로와 응원인 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려나. 이다음에 엄마가 또 미안하다고 눈물을 보이면 그때는 어떤 말을 해 줘야 할까. 입이야 쉬이 안 떨어지겠지만, 그때도 마찬가지로, 묵묵히 엄마 손을 잡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