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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Sep 12. 2022

엄마가 느려지지 않았으면

엄마와 걸을 때면 드는 생각들

연휴를 맞아 집에 갈 때면 엄마 상태 걱정이 가장 앞선다. 고약하게도 치매라는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엔 호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번엔 도어록 비밀번호를 곧잘 누르던 엄마가 이번엔 버벅거린다든가,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 문을 열려한다든가, 곧잘 하던 옛날 얘기마저 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면 이제는 익숙하다 싶다가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작은 누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조카들이 있는 여수 큰 누나네서 명절을 보낸다. 올 추석도 어김없이 여수에 집결했다. 통 웃질 않는 엄마도 손주들 재롱엔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는 걸 보면 힘들어도 여수까지 내려오는 게 훨씬 좋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며칠일 뿐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일 자체로 치명적인 일일 수 있는 치매 환자에겐, 무엇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만 있는 집엘 가면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아무래도 운동을 빙자한(?) 산책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아빠도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라 격한 운동을 할 수는 없으니. 거창 한가운데를 흐르는 위천 강변을 죽 걷거나 집 옆 작은 호수 둘레길을 몇 바퀴 도는 건 엄마아빠의 하루 루틴 중 하나다. 집에 들를 때면 나도 당연하게 그 루틴에 합류한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텔레비전만 들여다보는 것보단 환자에게 훨씬 나은 일이고, 엄마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을 수 있는 것도 산책할 때뿐이니까.


지나치게 빠른 엄마와 엄마를 눈에서 떼질 않는 아빠.


엄마는 아프기 전부터도 항상 빨랐다. 경상도 사람도 아닌데 성질이 급해서는 요리도 눈 깜짝하면 완성했고, 노래도, 피아노 반주도 매번 사람들보다 빨랐다. (따라 부르는 입장에선 굉장히 곤란한 일이지만.) 어릴 적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역 교회들이 모여서 운동회를 할 때면 엄마는 항상 단거리 주자로 나섰고 땅딸한 몸으로도 1등을 해내곤 했다. 어릴 땐 나도 좀 빨랐는데 아무래도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겠거니 생각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같이 걸을 때면 엄마의 민첩함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다리 길이로만 따지면 내가 1.5배는 길 것 같은데 경보 정도는 해야 엄마를 따라잡을 수 있다. 땅을 접어 걷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니 '사모님 축지법 쓰신다'는 농이 자연스레 나온다. 아빠는 옆에서 슬쩍 웃는다. 덕분에 걷는 동안 5분에 한 번씩은 앞서가는 엄마를 불러야 한다. "엄마?"는 기본형이고 응용형으로는 "사모님", "김옥분 여사?" 정도가 있다. 엄마는 부르는 뉘앙스만 듣고도 '같이 가자'는 말인 걸 아는지 뒤를 휙 돌아보고는 자리에 멀뚱 선 채로 말한다.


"천천히?"
"아니, 같이 가자고요."


엄마의 빠른 걸음은, 내게는 아직 엄마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하다. 집에 오면 좀 쉬고 싶고 서울에 올라갈 생각에 맘이 답답해 한 시간이라도 더 자고 싶지만 같이 걷자는 아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가 여직 그대로라는 걸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순간이 걸을 때인 이유다. 요즘 같이 선선한 날 같이 걸으면 더 그런 생각에 잠긴다. 저렇게나 빠른 엄마가 느려지지 않았으면. 혹 그러더라도 내가 손을 잡고 가든 업든 어떻게든 데리고 가겠지만 그냥 그렇게 되게 도와 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도를 오늘 밤엔 해볼 요량이다. 무정한 하나님도 양심이 있으면 들어주겠지, 퍽 울울한 간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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