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Oct 25. 2022

엄마, 지금은 어느 우주에 있어요?

우리 엄마도 먼 우주에 점프해 있는 거라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큰 스포일러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만, 아무 정보 없는 채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으시면 나중에 읽어도 좋아요.


자랑은 아니지만 나를 울린 영화는 손에 꼽는다. 분하게도 얼마 전 본 '인생은 아름다워(2022)'의 공업적 최루법(?)에 눈물을 흘렸고, 세월호 이야기를 다뤘던 '생일(2019)'에는 정말이지 무너진 채로 울어서 눈이 부은 채로 영화관을 나왔더랬다. 이제 더는 영화를 보고 우는 내가 부끄럽지는 않지만, 눈물이 통 없는 나에겐 '나를 울린 영화'들은 뇌리에 깊게 남아 있을 수밖에…


지난주 영화관에서 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말 그대로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답답하고 짜증나다가, 울다가 웃다가, 엉덩이가 간질거리다가... 감정이 눈밑까지 올라온 채로 내려가질 않아서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 중 반 이상 눈물이 고인 채로 영화를 봤고, 끝나고 나오니 마스크 위쪽이 눅눅히 젖어 있었다.


눈물의 이유를 말하자면 역시나 엄마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요즘 내 눈물의 9할 이상은 엄마 때문인데, 이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도 당연 그 때문이니, 9할의 타율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진 않았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감동받은 부분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을 향한 뭉근한 애정을 담은 접근법 때문일 것이리라 추측하고 있다. (정상 가족 관점이라는 걸 충분히 인정하면서 이야기하자면)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뒤흔드는 감정이라는 게 워낙에 작기가 힘들지 않은가. 더군다나 우리 엄마는 '아픈 엄마'. 인지 못 한 어느 순간부터 나의 눈물 버튼이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극 중 에블린(양자경)이 현재의 '못난 에블린'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 그러니까 에블린의 수많은 선택이 지금의 에블린을 형성했다고 표현하는 지점이 엄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누구든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지만. 우리 엄마가 불행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전혀 아니지만, 엄마가 했을 많은 선택이 아빠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였을 거란 생각은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던 중에, 그리고 보고 나와서도 엄마가 느지막이 본인을 위해 한 선택들이 머릿속을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대뜸 고졸 검정고시를 보고 싶다고 해서 두꺼운 검정고시 책을 주문해 줬던 기억, 기어이 합격한 엄마를 용기 내 안아 줬던 기억, 방송통신대에 다녀보고 싶대서 원서 접수와 등록을 도와줬던 기억, 그때는 몰랐지만 (또 그런 내가 너무 한스럽지만) 빨리 온 치매 탓에 수업을 듣는 일 자체가 버거워져서, 빠르게 입학을 포기한 일… 늦게사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지만 병을 이기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었을 테니까.


영화 속에서 다른 우주로 잠시 점프한 채로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에블린의 모습은, 마치 요즘 TV 앞 소파에 털썩 앉아 초점 없이 화면을 응시하는 우리 엄마 같았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는 있을까, 치매 환자의 머릿속을 쉽게 읽을 수 있다면 치매라는 건 해결되고도 남았겠지' 따위의 고뇌가 머리를 스친다. 엄마는 내가 하는 이런 고뇌의 연상을 할 수는 있는 걸까?



엄마가 아프지 않은 거라고 자위하고 싶지도 않고, 희한한 낙관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도 않지만, 이 영화의 상상력을 조금이나마 빌려 엄마를 위로하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점차 행동반경도, 말수도 줄어만 가는 엄마가 잠시 다른 우주에 점프해 있다고 생각하면, 또 그곳에서는 본인을 위한 선택들을 멋지게 해나가고 있으리라고 믿어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같아서 말이다.


이런 접근이 '나 편하려는 이기적 접근이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만, 이조차도 엄마를 한 번 더 이해하고 떠올려 보는 좋은 핑계가 되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엄마, 그 우주에서도 나는 엄마 속을 썩이나요? 그 우주에서도 서른 먹은 아들에게 '양치 잘 하라'는 잔소리는 잊지 않나요? 그보다 젊은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기로 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려나? 혹시나 엄마도 돌이 되어서 절경을 마주하고 있나요?


듣지 못할 답이지만 이렇게나 질문이 많이 생겨버렸다. 엄마, 지금은 어느 우주에 있어요? 거기에 나도 함께 있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도 같다.

이전 09화 수화기 너머가 잠잠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