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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l 12. 2022

난 아직 엄마가 자주 울컥해

난데없이 한바탕 울어재낀 이야기

부스스 일어나 이불을 내팽개친다. 눈을 부비고 출근을 준비하려는데 아이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엄마 2021년 - 추억 보기'


요놈의 똑똑한 스마트폰이 엄마의 2021년 사진들을 모아서 영상을 하나 뚝딱 만들었단다. 마치 아이가 처음 그려낸 그림을 내미는 것처럼 알림창에 영상을 불쑥 내민다. 무심코 누른 영상 속엔 엄마 아빠와 놀러 갔던 곳곳이 담겨 있다. 거창의 넓은 공원부터 여수 큰누나네, 전라도 어디인가 싶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 숲 속까지.


엄마의 옛 모습들을 보면 항상 기억을 잘하던 엄마부터 이따금씩 중요한 내용을 까먹던 엄마가 차차 떠오르면서 이내 자책이 맘에 들어선다. 다음 순서는 마침내, 눈물이다. 이놈의 영상이 아침부터 불 지핀 눈물은 멎질 않았다.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운 건 아니지만 샤워를 하면서 따뜻한 물에 눈물을 얹어 보낸다. 내일모레 서른에 이게 무슨 주책인가 싶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 건 별 수 없잖아.


짧고 굵게 눈물짓고(거짓말이다) 로션을 바른 뒤에야 영상을 다시 제대로 들여다본다. 카메라 앞 엄마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매번 똑같다. 활짝 웃지는 못하지만 "엄마, 좀 웃어봐요"라는 말에 마지못해 짓는 그 표정. 곰곰이 생각하니 언젠가부터 엄마가 다양한 표정을 짓지 못했다는 - 혹은 다양한 감정 표현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 사실이 불쑥 다가선다. 끄윽. 오르는 눈물을 내려 누른다. 출근해야 하니까 이제 그만 울어야지…

아이폰 너 미워..

거참 요즘 드라마도 못 보겠는 게, 치매 노인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노인만 나왔다 하면 치매, 모자랄 것 없는 주인공에게 아픈 손가락인 치매 환자 부모님, 반전이랍시고 내세우는 것도 치매.. '아휴, 진부하다 진부해. 작가들 너무 게으르다'라고 생각하면서 금세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비밀이지만… '너 T야. 뚝 그쳐'라며 스스롤 다독이지만 다독일수록 울음소리를 키우는 아이 같은 나. 꼭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혼자 보는 게 편한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원래 이런 말 밖으로 자주 내뱉진 않는데, 오늘 회사에서도 "엄마 보고 싶다"는 혼잣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엄마, 나 어린애도 아닌데 아직도 엄마가 자주 울컥해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어서 울컥하는 걸까요? 아무렴, 뭐가 됐든 내일도 열심히 살아 볼게요. 이번달 말에 집에 가면, 아빠랑 소파에 앉아서 이 영상 같이 봐요. 그땐 실컷 웃어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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