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무 말을 않던 날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용돈 조금 보냈어요."
격무 중에 카톡을 보내 놓고서 퇴근길에 전화를 했다. 지난 주말에 안부 차 걸긴 했지만, 전화를 자주 할수록 효자라는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아지긴 할 테니까.
어김없이 힘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아빠.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말을 건네고 이번 주말 누나와 조카들을 보러 가기로 한 약속 이야기를 두서없이 주고받는다. 그런데 보통 전화를 걸면 "아들이야?" 하고 물어보는 엄마의 지방 방송이 들리질 않는다. 이상한 낌새에 바꿔 달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론 아빠가 떠넘기듯 수화기를 넘기는 편이긴 하지만.
"…"
치매에 걸리고도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던 “어이구 내 새끼~”라는 멘트가 오늘은 없다. 수화기 너머 시장 상인들 장사하는 소리밖에 들리질 않기에, 엄마한테 이런저런 말을 건네본다.
"엄마, 오늘 아빠 생일인 거 알아요?"
"…"
"모르나? 생일인데 축하한다고 해야지."
"…"
아빠도 아무 대답 없는 엄마 반응이 당황스러웠는지 "알겠다고 하라"며 엄마를 타박했다. 응, 어, 등의 추임새 비슷한 것만 늘어놓는 엄마.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십수 초를 흘려보낸 뒤에야 "알겠어요. 엄마, 아빠 바꿔 주세요"라고 말한다. 바꿔 달라는 말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스피커폰이라 아빠가 같이 듣고 홀랑 가져갔겠거니 상상할 뿐.
아빠와 전화를 마무리하고 정류장으로 터벅이며 걸었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러 고개를 쳐드는데, 어깨에 누구 손이라도 스치면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세상의 어느 버튼도 이렇게 약한 버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스에 발을 올렸다. 기분을 전환하고 싶다는 이유로 죄 없는 음악 어플 스크롤만 손가락을 뭉개며 문질렀다. 그 어느 노래로도 위로되지 않겠지만 뇌에 다른 정보를 집어넣고만 싶었다.
평소도 엄마 걱정이 많은 편이지만 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을 않던 엄마는 또 처음이라… 이번 주말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집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엄마랑 살고 싶다고 늘어놓기도 했을 텐데, 그런 생각까진 않는 내가 갑자기 어색하기도 했다. 타협을 한 건지, 현실적으로 변한 건지, 냉소하고 마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 주말엔 케이크를 사 들고 집으로 내려가야겠다. 엄마랑 아빠랑 둘러앉아 생일 축하 노래를 뭉개듯 대충 부르고 촛불도 끄는, 지극히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서 서글프다. 다른 건 까먹어도 노래만은 잊지 않는 엄마니까 그게 어려울 리는 없을 거야. 이럴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여전히 없대도 엄마 옆에 앉아 조심히 손을 포개 잡고 싶다.